좋은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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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좋은생각

[특집] 대추가 영어로 뭐예요?

“선생님이 이것도 몰라요?” 어쩌면 내가 가장 듣기 두려워하는 말이다. 아이들에게 빈틈을 보여선 안 된다는 생각은 완벽한 교사가 되어야 한다는 강박으로 이어져 때로는 내가 모르는 것도 아는 척 연기하게 했다.


“선생님, 대추가 영어로 뭐예요?”

“아, 대추? 대추는 우리나라에서 주로 나는 거라 영어로도 그냥 대추라고 하면 돼. 떡볶이는 ‘tteokbokki’, 태권도는 ‘taekwondo’라고 하잖아. 이것도 마찬가지야.”

 

훅 들어온 학생의 질문에 이렇게 둘러댄 날이 있었다. 누가 또 질문할까 봐 서둘러 교무실로 달려온 나는, 당장 인터넷 영어 사전에 대추를 검색해 보았다. 제발 영어로 된 단어가 없길 바라며. 그러나 야속하게도 ‘jujube’라는, 너무나도 분명한 영단어 짝이 있었다.

 

“선생님도 이 단어는 잘 모르겠네. 같이 찾아볼까?” 이 한마디면 될 것을. 나는 ‘모른다’는 그 한마디를 꺼내기 싫어 아는 척, 태연한 척 연기하느라 애쓰곤 했다.

 

스스로가 부끄럽고 한심했다. 그리고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그동안 나는 내 수업에서 아이들과 진심으로 소통하고 있었을까? 그저 빈틈없는 선생님이 되려고 애쓸 뿐, 있는 그대로 내 모습을 보이며 먼저 마음을 열고 아이들에게 다가간 적이 있긴 했나?’

 

그날 이후, 나는 모르는 것은 모른다고 인정하기로 했다. ‘전문성이 없어 보이면 어떡하지, 아이들이 실력 없는 교사라고 비난하면 어떡하지?’ 하는 걱정이 스쳤지만, 내 모습 그대로 아이들 앞에 당당히 서기로 했다. 어쩌면 내가 내보인 그 틈으로 아이들과 더 가까워질지도 모른다고 스스로를 설득하면서.

 

어느 날, 한 학생이 질문했다. 위치 에너지와 운동 에너지에 관한 물음이었다. 나는 용기 내어 내 틈을 드러냈다.

 

“사실 잘 모르겠어. 우리 같이 찾아볼까?”

“이거 중학교 과학 내용인데 몰라요?”

“응. 사실 선생님이 중학생 때 영어만 좋아하고 수학이랑 과학은 못했어.”

“진짜요? 대박. 선생님은 다 잘하는 줄 알았는데.”


멋진 설명을 기대했는지, 아이들은 실망한 듯도 하고 놀라 보이기도 했다.


“모든 과목을 잘하지 않아도 선생님이 될 수 있어. 선생님 중학생 때 과학 30점 맞은 적도 있다? 그래도 이렇게 열심히 해서 선생님 됐잖아. 너희도 간절히 원

하고 노력하면 할 수 있어.”

“와, 쌤 멋져요!”


빈틈을 내보였는데도 창피하거나 기분 나쁘지 않았다. 오히려 나의 빈틈이 아이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통로가 된 것 같아 행복했다.

 

그동안 나는 지식으로 단단히 무장하면 아이들의 신뢰를 얻을 수 있다고 믿었다. 그래서 내 빈틈을 메우려고, 때로는 가리려고 부단히 노력했다. 그러나 해를 거듭할수록, 아이들과 만나는 횟수가 늘수록, 아이들에게 필요한 교사는 완벽한 교사가 아님을 깨닫는다. 오히려 그런 완벽함이, 또는 완벽해 보이려는 노력이 아이들과 가까워지지 못하도록 방해한 것은 아니었을까.

 

빈틈을 인정하고 기꺼이 내보이는 용기, 어쩌면 사람과 사람이 연결되기 위해 꼭 필요한 것일지도 모른다.

 

이사론 님 | 전북 전주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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