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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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좋은생각

[동행의 기쁨] 나에서 우리로

“학교에 다닌 것 같아요.”

 

구범준 님(50세)은 ‘세상을 바꾸는 시간 15분(이하 세바시)’에서 보낸 10년을 되돌아보며 말했다. 세바시는 다양한 사람이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지식 강연 프로그램이다. 한 사람당 15분 내외로 스튜디오에서 강연을 하고 그것을 방송으로 제작한다.

 

“제가 신입 피디 시절에 선배가 이런 이야기를 했어요. 대학교 4년간 전공으로 배운 지식을 방송국에 와서 곶감 빼 먹듯 쓰며 일하다 보니 고갈되는 느낌이라고요. 세상은 쉬지 않고 변하는데, 나는 그 자리에 그대로인 듯하다고요. 그런데 저는 세바시를 만들면서 사람들의 이야기를 꾸준히 들으니 세상을 보는 지평이나 관점이 훨씬 넓어진 것 같아요. 넓어졌다는 건 그만큼 배웠다는 뜻이죠.”

 

일반적으로 유명인이 나오는 강연 프로그램과 달리 세바시에는 유명인뿐 아니라 사업가, 청년, 사회 운동가, 정신과 의사, 주부 등 여러 분야의 사람이 등장한다. 그는 세바시의 차별점을 이렇게 설명했다.

 

“강연 콘텐츠는 보통 ‘What(무엇)’을 강조해요. ‘누가’ 나옵니다, ‘무엇’을 말합니다, ‘어디’에서 멋지게 합니다 하는 식으로요. 그런데 우리는 ‘Why(왜)’를 강조합니다. ‘우리가 왜 세바시를 만들었을까요?’라고요. 더 나은 세상을 위해서죠.”

 

발전은 이야기로부터 시작된다. 그는 삶에서 변화를 겪은 사람들이 자신의 경험을 주변과 나눔으로써 세상이 긍정적으로 변한다고 믿는다.


세바시에는 거창한 강연자 소개도, 화려한 장면 효과도 없다. 첫 회부터 1,300회가 넘는 지금까지 카메라 앵글, 진행 방법 등이 동일하다.


누군가는 “바뀌어야 하지 않나? 사람들은 똑같은 걸 싫어해.”라고 조언하기도 했다. 반면 또 다른 누군가는 그 점을 장점으로 꼽았다. 그는 말했다.


“첫 회부터 지금까지 세바시의 방향성은 같아요. 세상에 선한 영향력을 끼치겠다는 마음이에요. 그 덕분에 세바시의 정체성을 확립할 수 있었습니다. 변하지 않아서 고마운 일이에요. 변한 게 있다면 그 안에 담긴 사람들의 이야기죠. 세상이 바뀌는 만큼 그 시대를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도 달라지는 거예요.”


강연은 누구나 온라인에서 무료로 볼 수 있다. 축약해 편집한 콘텐츠를 보여 주는 다른 강연과 달리 세바시는 전체 내용을 공개한다. 어떤 강연은 시간이 지나도 꾸준히 사람들에게 회자된다. 특히 아토피 피부염에 대한 강연이 그랬다.


아토피 피부염은 피부가 건조해지고 습진, 가려움증을 동반하는 질환이다. 때로 가려움은 일상생활에 지장을 줄 정도로 극심하다. 겪어 보지 않은 이들은 그 아픔을 가볍게 생각하기 십상이다.


아토피 피부염 환우 정원희 님이 치료 과정과 힘듦을 털어놓았고, 아토피 질환 후유증으로 시력을 잃은 조재헌 님도 자신의 진솔한 이야기를 전했다. 래퍼 씨클 역시 아토피 피부염을 앓으며 그 아픔을 음악으로 승화한 경험을 나누었다. 아토피 피부염을 앓는 사람들은 ‘나도 그랬다’며 댓글을 달고 정보를 공유했다. 그 관심은 일 년 가까이 이어지고 있다.


“아토피 피부염이 있는 사람들은 질환에 대해 제대로 물어볼 곳도 없었대요. 저희가 이야기장을 마련한 거죠. 그 고통을 몰랐던 사람들도 강연을 들은 후 관심 어린 눈길로 상대를 바라봅니다. 사람들의 인식이 조금은 바뀌었다고 생각해요.”


심리 기획자 이명수 님의 강연 ‘내 마음이 지옥일 때’도 참여자와 시청자에게 뜨거운 호응을 받았다. 이명수 님은 강연에서 말했다. “지옥에 빠지지 않고 사는 방법은 없습니다. 저도 그렇고요. 중요한 것은 그 지옥에서 잘 빠져나오는 것입니다.” 수많은 이가 그 말에 위안을 얻었다.


“이야기에는 두 가지 특성이 있어요. 단독성과 보편성이에요. 좋은 이야기는 듣는 사람에게 ‘다양한 삶이 있구나. 그 삶이 나와 무관하지 않구나.’를 깨닫게 해요. 자신과 똑같은 삶을 산 사람에게는 상대적으로 흥미를 덜 느낄 거예요. 우리는 보통 나와 다른 사람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요. 그 이야기가 내 안에서 나에게 조언하는 듯하거든요. ‘저 사람의 삶은 나와 다르지만 나도 저렇게 살아 봐야겠다.’ 하고요. 그렇게 공감하면 행동이 변해요.”


세바시의 슬로건은 ‘나로 시작해서 우리로 끝나는 이야기’다. 누군가가 털어놓은 개인적인 이야기는 다른 사람들로 하여금 여태 몰랐던 것에 관심을 갖게 한다. 이는 잘못 알고 있는 걸 바로잡는 일로 확장된다.


“백 년 전 사람들이 보기에 지금은 살기 좋아진 세상일 겁니다. 하지만 오백 년 뒤 사람들이 보면 어떨까요? 인권, 젠더, 빈곤 등 여러 문제가 있겠죠. 이러한 문제가 남은 한 더 나아질 여지가 있습니다. 우리는 각자의 삶에서도 오늘보다 내일 더 잘 살기를 원해요. ‘세상을 바꾸는 15분’ 앞에는 어쩌면 ‘나의’라는 말이 숨겨져 있는지도 몰라요. 내가 바라보는 세상, 나의 세상이 바뀌면 결국 우리가 속한 공동체도 더 살기 좋은 곳으로 바뀌지 않을까요?” 

 

글 _ 정정화 기자, 사진 _ 케이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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