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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좋은생각

[특집] 소금 같고 빛 같은

소금 공장 현장 사무실에서 작업반장을 기다린다. 공장 마당 한편에 쌓인 소금 자루들을 한참 바라본다. 부지런한 성격 덕에 이런저런 아르바이트를 해 봤지만 여덟 시간 동안 온전히 몸을 쓰는 일은 처음이다. “숙련공들 텃세를 어찌 감당하려고? 아서라.” 말리던 친구들 때문일까, 작업반장을 기다리는 내내 주눅이 든다.

 

야구 모자를 눌러쓴 사십 대 초반의 여자가 사무실로 들어온다. 경리가 일어나 작업반장에게 나를 소개한다. “오늘 처음 오셨어요.” 나는 허리 굽혀 인사를 건넨다. “안녕하세요.” “아, 예…….” 작업반장이 미묘한 표정으로 나를 훑어본다. 작업반장의 탄탄한 하체를 보니 마당의 소금 자루들이 떠오른다. ‘저 정도 체격은 되어야 이 일을 감당할 수 있나?’ 싶어 걱정이 앞선다.

 

오늘 아침, 출근을 서두른 내 모습을 돌아본다. 현장 일을 하겠다고 마음먹은 사람이 흰 운동화를 신고 오다니. 생각이 짧은 내가 바보 같기만 하다. 거기에다 소매가 꽃잎처럼 벌어진 크림색 니트라니. 거추장스러운 소매를 감추려 몇 번이고 욱여넣는다.

 

작업반장이 앞치마와 장갑, 토시를 책상에 툭 던진다. 누가 쓰던 건지 꼬질꼬질하다. 나는 머리를 질끈 묶고 앞치마를 입는다. 작업반장을 따라 마당을 가로질러 포장반으로 들어가니, 먼저 작업하고 있던 여자들이 나를 힐끔힐끔 본다. 아무도 내게 먼저 말 걸거나 인사하지 않는다. 무겁고 차가운 공기에 몸과 마음이 습기를 머금은 소금처럼 가라앉는다.

 

“마당에 있는 소금 자루를 죄다 이리로 옮겨 주세요.” 작업반장은 빈 수레만 내 앞에 두고 가 버린다. 허술한 자루들을 손끝으로 꾸드득 눌러 본다. ‘내가 해낼 수 있을까?’ 양팔을 벌려 자루를 들어 올린다. 한 포대, 두 포대…… 수레에 싣는다. 허리가 뻐근하고 손목이 시큰거린다. 자루에 묻은 흙먼지를 털어 낸다. 정오의 햇살이 고원의 흰 눈처럼 소금에 떨어진다.

 

반짝반짝한 소금 같고 빛 같은 사람이 되고 싶었다. 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만 이력서를 넣는 족족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떨어졌다. 오십, 그렇다고 나이 탓을 하며 주저앉을 수는 없었다. 내 앞의 문제를 받아들이고 해답을 찾아야 했다.

 

뒤돌아보니 어느새 젊은 날이 가 버리고 없다. 바닷물이 증발한 지층에서, 돌아오지 않을 파도를 기억하는 암염처럼 나는 오랜 시간 틀에 붙박였는지도 모른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다시 출발하는 수밖에. 이 한 줌의 소금처럼 어디엔가 꼭 쓰이기를 바라면서 말이다. 그곳이 산이든 바다든 부뚜막이든.

 

조봉경 님 | 경기도 용인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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