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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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좋은생각

[햇살 마루] 일일삼소

아침에 일어나서 되뇌는 말 가운데 하나가 ‘일일삼소(一日三笑)’다. 하루 동안 세 번쯤 누군가에게 웃음을 선물하는 것이다. 재미없는 말에도 세 번쯤은 웃어 주는 것이다. ‘일일삼소’라는 좌우명을 가진 뒤로 신선한 유머나 재치 문답을 탐구하고 기록해 두는 게 일상이 되었다.

 

외워서 하는 이야기엔 곧바로 ‘아재 개그’라는 도리질과 손사래가 날아온다. 때와 장소가 엇나간 아재 개그는 관계를 더 멀어지게 한다. 낡은 언어의 옷을 입고 논두렁에 서 있는 허수아비 꼴이 된다. 전기 충전소 옆 민속 주점의 물레방아처럼 헛바퀴만 돌리는 꼴이 된다. 허수아비는 외롭고 춥다. 물레방아는 턱받이를 해도 침이 질질 흐른다.

 

오늘의 일일삼소는 ‘풀 서비스’다. 교사로서 아이들에게 던질 유머를 장착한 날엔 발걸음이 가볍다. 교실 문을 열자마자 너스레를 떤다. “왜 이리 문이 안 열릴까?” “선생님 힘이 달리셔서 그래요. 우리가 열면 잘 열리는데요.” “마구 굴러다니는구나. 그러니까 문짝에 걸려서 안 열리지.” “뭐가 굴러다니는데요?” “너희 머리와 눈알! 선생님 기다리다가 목과 눈알이 다 빠졌구나.” 이쯤 되면 아이들이 책상을 두드리며 소리를 지른다.


이 정도 어수선해지면 서둘러 인사하고 수업을 한다. 시험에 출제될 확률 구십 퍼센트라면서 밑줄을 치게 하고 압축 수업에 잘 따라 주면 신선도 일 등급짜리 유머 문제가 보너스로 나갈 것이라고 귀띔한다. 수업을 얼렁뚱땅 눙치려던 몇 명이 책을 펼친다. 서로가 열심히 집중해서 공부하자고 격려하고 호령한다. 성공이다. 아직도 엎드린 아이를 일으켜 세운다. 눈꺼풀이 붙은 채 일어난다. “빠진 눈알을 다시 집어넣을 때는 깨끗이 씻어야지. 화장실에 가서 다시 넣고 오너라.”


어느새 한 시간 학습 목표에 다다랐다. 오늘 준비한 비장의 재치 문답을 꺼낸다. 우리말 ‘풀’과 영어의 ‘Full’을 뒤섞은 개그다.


“얘들아, 우리에 갇힌 소나 양을 너른 풀밭에 풀어 주는 걸 네 글자로 뭐라고 할까?” “또 사자성어예요?” “수업 다 끝났는데 교묘한 방법으로 또 공부하는 거니까, 양두구육입니다.” “괘씸한 답이지만, 참겠다. 또 다른 답?” “양껏 먹자?” “와! 대단한 접근이야. 양껏 무얼 먹지?” “풀?” “좋아. 풀이 들어가게.” “풀 죽이자?” “마음 착한 청소년이 ‘죽이자’가 뭐니?” “한풀이해? 살풀이춤?”


“거의 접근했어! 노트북 샀는데 구동이 잘 안 돼. 그럼 뭐 받지?” “서비스요. 아하! 풀 서비스!” “딩동댕! 자, 이제 오늘 수업을 오 분만 풀 서비스 할 테니까, 집중하자. 시험 문제도 마구 흘릴 거야.”


오늘 하루 일일삼소는 벌써 넘쳤다. 기분이 좋다. 아이들도 오늘은 아재 개그를 멈추라고 시위하지 않았다. “좋았어. 다음 문제 나간다. 요번에는 두 글자다.” “빨리 내세요.” 나는 목소리를 낮춰 성우 이완호의 ‘동물의 왕국’ 내레이션 흉내를 낸다. “일평생 풀 서비스만 하는 것은?”


아이들이 적극적으로 손을 든다. 한 명씩 맘껏 대답한다. 그중에 아부성 발언이 입에 붙은 아이가 ‘교사’라고 한마디 날렸다가 아재가 된다. 그다음 부반장이 ‘엄마’라고 말했다가 허수아비가 된다. 잇따라 ‘간디’도 나오고 ‘풀밭’도 나온다. 아이들이 풀밭이라고 대답한 친구에게 박수 세례를 보낸다. 때마침 종이 울린다. 나는 씩 웃으며 정답을 말한다.


“딱풀.”


아이들의 야유와 환호성을 생각하면서 몸을 돌린다. 복도 쪽 아이가 문을 열어 준다. “자동 열림 서비스입니다.”


일일삼소 중 웃음 하나는 완수했다. 오늘 수업이 세 시간이니까, 이걸로 쭉 밀고 나가자! 그러나 아이들은 벌써 쉬는 시간에 풀 서비스와 딱풀을 다 소문냈을 것이다. 절대 아는 체하면 안 된다고. 그러면 진도만 나간다고. 그러니까 나만 연기를 잘하면 된다. 처음인 양.


‘다 들어서 알고 있으면서도 풀 서비스 해 줘서 고마워. 나도 연기하느라 힘들었어.’


그럼 또 아이들이 책상을 치면서 야유를 보내겠지만, 일일삼소는 마쳤으니까 기분이 상쾌하다. 시끌벅적한 수업이 좋다. ‘허수아재’가 되어 물레방아를 돌려도, 껄껄껄 일일삼소다.


 

이정록 님 |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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