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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행의 기쁨] 발견하는 눈


- 다큐멘터리 작가·프로듀서 김옥영 님
 

 

 익숙한 대상을 자기만의 시각으로 해석하는 것. 다큐멘터리 작가이자 프로듀서 김옥영 님(69세)은 이를 ‘발견’이라 부른다. 사십여 년간 다큐멘터리에 몸담은 그녀는 우연한 계기로 이 세계에 입문했다. 원래 그녀는 시인이었다. 생활비를 벌기 위해 잡지 《MBC(엠비시) 가이드》에 칼럼을 기고하며 방송국 홍보실을 드나들었다. 하루는 그곳 텔레비전에서 KBS(케이비에스) 다큐멘터리 〈문학기행〉을 방영 중이었다. 한데 방송에 나오는 내용은 그녀가 보기에 크게 중요하지 않은 듯했다. 그녀는 무심코 말했다. “저건 내가 더 잘하겠는데?” 그때 같이 있던 한 방송 작가가 “마침 저 프로그램에서 작가 찾더라.”라며 그녀를 피디에게 소개해 주었다.


 얼마 후 피디로부터 연락이 왔다. 밤새 글 쓸 준비를 하고 오라는 것이었다. 
피디가 필름을 한 컷씩 잘라 그녀에게 보여 주면 장면마다 글을 썼다. 그렇게 하룻밤 사이에 원고 작성을 마쳤다. 다음 날 후반 작업을 한 영상을 본 그녀는 깜짝 놀랐다. “큰 스크린으로 편집본을 보는데, 낙엽 밟는 소리, 바람 소리가 들어가고, 내가 쓴 글이 내레이션으로 나왔어요. ‘이런 멋진 세계가 있나.’ 했죠.”


 그렇게 다큐멘터리 집필을 시작했다. 다큐멘터리는 글과 달랐다. 가령 ‘그
리움’을 표현할 때 대상이나 장면을 직접적으로 묘사할 수 있는 글과 달리, 다큐멘터리는 시청자로 하여금 그리운 감정을 느끼도록 이미지를 구성해야 했다.


 “그때 저희 집에는 텔레비전도 없었어요. 컷 개념도 모르고 시작했으니 무
모했죠. 컷과 신, 시퀀스가 무엇인지, 그것으로 어떻게 영상의 서사를 구축하는지 공부하기 시작했습니다. 홀로 영화제를 다니며 영상을 배웠죠.”

 
 오 년이 지날 무렵, 그녀는 스스로의 정
체성을 시인이 아닌 ‘다큐멘터리 작가’로 삼았다. 그녀가 생각하는 ‘다큐멘터리를 만들 때 필요한 것’은 ‘유희 정신’. “일할 때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는 재미있어야 한다는 점이에요. 저는 새로운 것을 좋아해요. 익숙한 대상도 다른 방식과 시각으로 다루는 거예요. 잘 아는 분야일수록 더 다양하게 시도할 수 있죠. 그래서 열심히 공부했어요.”


 그녀는 당시엔 낯설었던 재연 형식을 도
입하기도 하고, 스튜디오의 진행자가 옛 인물을 재연한 배우에게 과거 사실을 현재 일처럼 인터뷰하는 파격을 선보이기도 했다. KBS 〈다큐 인사이트-부드러운 혁명〉프로그램을 제작할 때다. 일본에 취재를 간 피디가 ‘휴머니튜드’에 대한 영상을 보여 주었다. 휴머니튜드는 치매 환자의 자유를 최대한 보장하고 인격적인 존중을 바탕으로 하는 돌봄 기법이다. 영상에는 환자가 이러한 돌봄을 받으며 점차 회복하는 모습이 담겼다. ‘이거다!’ 싶었던 그녀는 이를 다큐멘터리로 만들기 시작했다. 시청자에게 설득력 있게 다가가려면 우리나라 현장에서 입증해 보여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보건 복지부, 각 시의 담당자 등에 게 연락했다. 마침내 인천시의 적극적인 협조를 얻어 시립 치매 병원에서 두 달 동안 관찰 촬영을 했다. 결과는 놀라웠다. 환자들은 빠르게 회복했고, 긍정적인 태도로 지냈다. 이후 여러 지자체에서 문의를 하는 등 큰 화제가 됐다. 다큐멘터리는 세상에 던지는 질문이다. 그렇다면 방송을 본 시청자들의 반응이 곧 답이라고 할 수 있을 테다.

 
 어떤 다큐멘터리는 이렇듯 사람과 사회를 변화시키기도 한다. 반면 눈에 보이지 않는 변화도 있다. 그녀는 말했다. “‘재미있어요.’ ‘감동이에요.’라는 반응은 시청자에게 우리 방송이 가닿았다는 뜻이에요. 하지만 ‘감상만 남는 다큐멘터리가 과연 좋은가?’ 하고 고민합니다. 가장 큰 찬사는 ‘이 프로그램을 보고 생각이 바뀌었어요.’예요. 이것이 다큐멘터리의 궁극적인 목적이거든요. 눈에 보이는 변화만큼이나 중요하죠.”

 
 그녀의 시선이 닿는 곳은 사람에서부터 역사, 우주까지 다양하다. KBS 〈우주 극장〉은 무한대의 공간인 우주를 주제로 한 다큐멘터리다. 시작은 한 장의 우주 사진이었다. 그것을 보고 호기심이 생긴 것이다. 무릇 우주를 다룬 다큐멘터리라면 우주를 카메라에 담아야 할 터. 하지만 촬영 팀이 지구 너머로 나갈 방도가 있을 리 없다. 관점을 바꿔 우리가 발을 디딘 푸른 행성, 지구에서 우주의 흔적을 찾았다. 운석, 지층 등이 곳곳에 남아 있는 호주로 떠나 촬영했다. 사람들에게 우주를 보여 주는 것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

 
 “거대한 우주에 비해 우리의 삶, 욕심, 다툼은 너무나 작습니다. 그런데 우린 발밑만 봐요. 가끔 시선을 다른 곳에 던지면 우리 삶의 모습을 더 명확하게 볼 수 있어요.” 현실을 바탕으로 하는 다큐멘터리는 그 소재 역시 동시대인에게 공감과 울림을 줄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 어떻게 하면 익숙한 것을 새롭게 보는, ‘발견하는 눈’을 키울 수 있을까?

 
 “발견하는 일은 다큐멘터리를 만드는 사람뿐 아니라 모두에게 필요합니다. 유튜브, 에스엔에스는 알고리즘을 이용해 관심 있는 주제만 보여 주죠. 그러니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정보만 얻고, 사고가 편협해지기 쉬워요. 중요한 건 의심하는 시각입니다. 옳다고 여겨지는 것을 의심해 보세요. 저는 이슈가 생기면 여러 매체의 기사를 두루 읽어요. ‘무엇이 타당한가?’ 하고 질문할 때 발견이 생깁니다. 질문하는 사람이 발견하고, 발견하는 사람이 세상을 만듭니다.”

 

 

글 _ 정정화 기자, 사진 _ 케이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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