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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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좋은생각

[특집] 돈보다 귀한

 도시에서만 산 나는 시골에서 자란 남자를 만나 결혼했다. 사랑 앞에서 조건을 따지지 않는 내게 친구들은 걱정 어린 눈빛을 보냈다. 내게 주어진 1남 6녀의 외며느리 역할은 그 무게를 가늠할 수 없었다. 처음 해 보는 살림과 육아는 낯설었고, 가시밭길이 펼쳐졌다.

 

 한 달에 몇 번 시골집을 찾아 부모님을 뵙는 일은 자식 된 도리였으나 며느리인 나는 힘들기만 했다. 격자무늬 문살에 붙인 창호지에 구멍이라도 뚫려 있으면 바람이 들어와 코끝이 시렸다. 아이를 낳은 뒤에는 그곳에서 아이를 먹이고 씻기는 게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대문 옆 재래식 화장실, 불을 지피는 아궁이, 물 끓이는 무쇠솥 등 시골집에 내려갈 때에는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해야 했다. 아들과 손자를 만나 행복해하는 시부모님의 모습에 힘들다는 말도 할 수 없었다.

 

 어느 겨울날, 주방 수도관이 얼어서 물이 나오지 않았다. 급히 다른 곳에서 물을 길어 와 밥하고 설거지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추운 날씨에도 아버님은 방에만 보일러를 틀었다. 주방 바닥은 얼음장같이 차가워서 양말을 신어도 뼛속까지 냉기가 돌았다.

 

 그렇게 며칠을 지내고 돌아와 감기를 심하게 앓았다. 몸을 추스린 뒤에야 시부모님이 농사지은 곡식을 차곡차곡 넣어 준 가방을 풀었다. 찹쌀, 콩, 팥, 참깨가 들었고, 밑바닥에 봉투 하나가 얌전히 놓였다. ‘이건 뭐지?’ 열어 보니 만 원 짜리 서른 장이 있었다. 웬 돈인가 싶을 때 넷째 시누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너희 가고 부모님이 다투셨어. 엄마가 며느리 힘든데 주방에 보일러도 안 틀어 줬다고 아버지한테 막 화를 내셨대. 네가 발 비비며 일하는 모습 보고 마음이 많이 아프셨나 봐. 너한테 미안하다고 가방에 쌈짓돈 전부 넣어 뒀다는데 봤니? 네게 연락이 없어서 엄마가 걱정하신 모양이야.”

 

 그제야 어머님의 마음을 알았다, 하나뿐인 며느리를 아껴 주고 싶은데 그렇게 하지 못해서 속상했다는 걸. 경제권이 없는 어머님에게 삼십만 원은 큰돈이었다. 그날, 나는 돈보다 귀한 어머님의 마음을 받았다. 철없는 며느리는 그것도 모르고 시댁 오가는 일을 꺼렸다. 그다음부터는 시골집에 가는 것에 투정을 부리지 않았다.


 아이들이 자랄수록 시부모님에게 고마웠다. 도시에서 충족시키기 어려운 호기심을 시골에 내려가면 채울 수 있었다. 가마솥, 아궁이, 뒤뜰의 감나무, 개울, 외양간의 소 울음소리, 지저귀는 새소리…… 시골에서 마주하고 경험하는 것들은 아이들의 정서적 자양분이 되었다.


 “하늘나라에 계신 어머님, 아버님. 저희 행복하게 잘 살고 있어요. 가끔 시골 집이 그리워요. 아이들도 이제 청년이 되었답니다. 저희 앞으로도 서로 사랑하며 살게요. 보고 싶어요.”

 



윤성희 님 | 경남 창원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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