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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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좋은생각

[새벽 햇살] 새싹

수용자는 좁은 공간에서 반복되는 하루를 보낸다. 감성이 메마르기 쉬운 우리를 위해 수경 재배 프로그램이 열렸다. 자연과 교감하며 감수성을 기르는 시간이었다.


나는 고구마를 받았는데 이미 시들어서 말라비틀어졌다. 살아날 가망이 없는 듯한 고구마가 마치 내 모습 같았다. 


나는 고구마를 꼭 살리고 싶었다. 페트병을 반으로 잘라 물을 채운 뒤 고구마를 담갔다. 물 높이가 이 센티미터를 넘으면 자칫 썩을 수 있다는 주의를 들었기에 수시로 살폈다. 


관심과 사랑은 반드시 응답하는 것일까. 수경 재배를 한 지 보름째, 드디어 새싹이 모습을 드러냈다. 덩달아 내 가슴속에서도 뜨거운 소망이 꿈틀거렸다. 


그간 나는 ‘이제 늙었다. 너무 늦었다.’라는 생각에 자포자기하고 있었다. 만사 귀찮아하며 돌아누웠던 나를 새싹이 다시 일으켰다. 시든 고구마에서 새싹이 돋아나다니. 손자뻘의 아들을 둔 나의 지난날이 머릿속을 스쳤다. 


나는 결혼을 남들보다 이십 년 정도 늦게 한지라 아들과 나이 차가 많이 난다. 아들이 초등학교 삼 학년 때, 나는 처음으로 학교를 찾아갔다. 


교문에 들어서자 어디선가 아들이 달려왔다. 아들은 내 손목을 끌고 이곳저곳 돌아다녔다. 


“선생님, 우리 아빠예요.” 

“아빠, 선생님께 인사하세요.” 

“성준아, 은화야, 우리 아빠다!” 

“아빠, 우리 반 친구들이에요.” 


젊은 아빠들이 학교를 방문했을 때 홀로 느꼈을 외로움을 날리려는 듯 아들은 의기양양하게 외쳤다. 


“아빠, 아빠!” 


아들은 즐거워 보였고, 발걸음도 경쾌했다. 


나는 풍족하지 않아도, 그저 함께 있는 것만으로 행복해하는 아들의 작은 소망을 외면하고 불만에 가득 차 있었다. 젊은 날의 꿈을 이루지 못한 실패감으로 술을 마시곤 했다. 


아무리 길고 어두운 밤일지라도 그 끝은 언제나 밝은 새벽이라는 사실조차 패배 의식에 잊고 지냈다. 생명의 무한한 잠재력까지 술로 덮어 버렸는지도 모른다. 


그랬던 내가 낙담의 끝에서 만난 새싹 덕분에 생명의 존엄성을 새로이 깨달았다. 내 나이대의 다른 이들이 아름다운 추억에 젖으며 웃을 때, 나는 구겨서 버린 꿈을 다시 펼쳐 보기로 했다. 인생에서 너무 늦어 시작도 못 할 순간은 없는 것이다. 


나는 지금 이 시각을 삶의 전환기로 삼고 재충전하기로 했다. 인생 후반전을 위한 목표와 실천을 꼼꼼히 작성했다. 인문학책 읽기와 한문 공부 등으로 하루 계획을 세웠다. 


‘감사는 인생을 바꾼다.’ 이 말처럼 앞으로는 삶을 비교하고 원망하는 대신 세상과 이웃을 칭찬하기로 했다. 


날마다 고마운 일을 찾아 일기로 기록하려 한다. 나를 일으킨 새싹에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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