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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좋은생각

[동행의 기쁨] 스스로 존재하기

“어느 업체에 연락하지?” “견적은 얼마나 나올까?” 타일 교체, 난방 공사 등 집수리를 해야 할 때 사람들은 보통 이렇게 질문한다. 하지만 함승호 님(57세)이 운영하는 적정 기술 공방에 찾아오는 이들은 묻는다. “이걸 제가 직접 할 수 있을까요?”

 

함승호 님은 사십 대 초반까지 제조업과 유통업 등에 종사하며 치열하게 살았다. 그런 그에게 뇌졸중이 찾아왔다. 그는 일을 그만두고 시골로 가서 일 년 반 남짓 동안 재활 치료를 받았다.

 

“그 전에는 얼마를 버느냐, 사업을 얼마나 확장하느냐가 가장 중요했어요. 행복을 헤아리는 방법은 통장 잔고를 확인하는 거였습니다. 그런데 건강에 이상이 생기자 더는 이렇게 살면 안 되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는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졌다. ‘어떻게 하면 건강하게 살 수 있을까?’ 답을 찾는 여정의 시작은 ‘집’이었다. 나무, 볏짚 등으로 지은 ‘생태 주택’이라면 건강한 삶이 가능할 듯했다. 집수리, 난방 등 여러 생활 기술에도 좀 더 친환경적인 방법을 모색했다. 그렇게 ‘적정 기술’과 만났다.

 

적정 기술이란 비용과 노동력을 최소화하고 현지에서 구할 수 있는 소재를 이용해 접근성을 높인 대안 기술이다. 전구를 직접 갈아 끼우는 일에도 접목할 수 있다. “단지 편리하고 밝게 살려는 욕구에서 끝나는지, 아니면 LED(엘이디) 전구로 바꾸어 생태 보존이라는 가치와 연결하는지가 생활 기술과 적정기술을 가르는 차이예요. ‘어떻게 에너지 소비량을 줄일까? 자연에 부담을 덜줄까?’ 고민하는 게 적정 기술이죠.”

 

그는 외국의 사례를 찾아 건축을 공부하고, 시공 현장을 영상과 사진으로 남겼다. “그동안 제게 집은 ‘제공받는 것’이었어요. 집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도 한정적이었죠. 하지만 외국에서 다양한 소재와 아이디어로 집을 짓는 걸 보고 ‘이럴 수도 있구나!’ 깨달았어요. 생각의 전환이었죠. 그 기술을 우리에게 적용할 방법을 고민했어요.”

 

무조건 새로 짓는 것만이 답이 아니었다. 건강한 집은 결국 자연에 부담을 주지 않아야 하는데, 집을 새로 짓는 데에는 에너지가 어마어마하게 들기 때문이다. 기존의 자재를 최대한 오래 사용하되, 꼭 수리해야 할 부분에는 친환경 소재를 활용했다.

 

그는 영상과 사진을 온라인 카페에 올리고 공유했다. 정보가 필요한 사람은 누구든 볼 수 있었다. 여러 회원이 그 자료를 유용하게 썼다. 그 역시 카페에서 질문하고, 정보를 얻었다. 모두 대가 없는 나눔이었다. “러시아어로 된 자료를 구해서 공부하려는데, 전 러시아어를 몰라요. 그래서 사람들에게 도움을 구했습니다. 이삼 일 후에 누군가가 알음알음으로 러시아어를 아는 이를 수소문해 번역본을 보내 줬어요. 외국에 흩어진 자료를 모아 우리나라에 적용할 방법을 연구하는데, 혼자였으면 못했을 거예요. 짧은 시간에 지식을 습득한 건 재능을 아낌없이 나눈 사람들 덕분이에요. 다양한 분이 모여 발전을 거듭했죠.”

 

그는 이 활동을 통해 자립을 배웠다. 그에게 자립이란 ‘삶을 스스로 유지하는 것’이다. 직접 할 수 있는 일이 늘면 오롯이 삶을 꾸릴 수 있다. 그는 결국 ‘기술의 주체 되기’가 삶의 질과 태도를 좌우한다고 믿는다. 

 

그가 처음 워크숍을 열었을 때다. 집수리가 필요한 이웃이 자신의 집을 제공하면 그곳에서 여럿이 함께 기술을 시도하고, 새로운 방안을 마련해 시험했다. 이곳을 찾는 사람은 다양하다. 내 집을 손수 수리하고 싶은 이부터 조선소에서 삼 사십 년간 근무한 베테랑 기술자, 공학을 가르치는 교수까지. 많은 사람이 같은 관심사를 갖고 모이자 기술은 빠르게 발전했다.

 

한번은 숙련된 용접공이 실습하는 이들의 모습을 보고 “이건 이렇게 하면 쉽습니다.” 라며 거들었다. 그러자 어려웠던 일이 간단하게 해결됐다. 그렇게 축열식 벽난로를 귀농인들에게 보급하고, 연료를 기존의 6분의 1만 쓰고도 같은 효과를 내는 난방 기술을 개발하는 등의 활동을 했다.

 

공방을 유지하고 생활하는 비용은 주로 시공 일로 충당한다. 그럼에도 여전히 그의 일정 중 80퍼센트 이상은 워크숍이 차지한다. “이윤이 적어도 워크숍을 계속하는 이유는 ‘삶을 바꾼다’는 생각 때문이에요. 시장으로부터 단순히 서비스와 물건을 제공받던 사람들이 자기 삶을 스스로 책임지고 환경을 극복해 나가는 모습을 보면 얼마나 뿌듯한지 몰라요.”


지난해 공방을 찾은 사람 중 70퍼센트는 자신의 손으로 주거 환경을 개선하고 싶어 했다. “배우러 와서도 ‘제가 할 수 있을까요?’ 하고 걱정해요. 일단 엄두를 내야 해요. 저마다 배우는 속도는 다르지만 결국 능력을 갖추게 돼요. 가장 중요한 것은 용기를 내는 거예요.”


그는 일상에서 만나는 적정 기술로 ‘뽁뽁이’를 꼽았다. 겨울철 창문에 뽁뽁이를 붙이면 실내 온도를 2~3도 높이고, 난방비를 20퍼센트 줄일 수 있다. 또 구청이나 관공서에서 파쇄한 종이를 모아 물에 푼 뒤 풀을 부어 벽돌로 만든다. 이렇게 탄생한 종이 벽돌은 단열에 효과적이다. “‘어떻게 하면 연료를 덜 쓰면서 따뜻하게 지낼까?’라고 질문하면 주변에 많은 소재가 보여요. 변화된 생활을 그려 보고, 아이디어를 수집하고 발전시키는 게 중요해요.”

 

그의 목표는 적정 기술을 집수리뿐 아니라 생활 전반으로 확장하는 것이다. 그는 믿는다, 개인의 삶이 바뀌면 공동체도 변한다고. “에너지가 적게 드는 집을 만들어야 하는 이유는 우리가 자연과 연관되어 있기 때문이에요. 우리는 공동체의 일원이자 생태의 일부예요. 공동체와 생태의 문제를 해결하려면 자신의 자리에서부터 고민해야 해요. 모두가 연결되어 있어요.”


적정 기술은 그의 삶을 바꾸었다. 이제 그는 ‘내가 주체가 되어 삶을 꾸리고, 스스로 존재한다.’라고 느낄 때 행복하다.




글 _ 정정화 기자, 사진 _ 케이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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