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님 에세이] 햇살 같은 한마디
보육원에서 삼 년여를 지낸 햇살이는 말도 어느 정도 하고, 본인 취향과 성격이 형성되는 시기에 우리와 가족이 되었다. 결혼하고 육 년간 둘이서만 지내던 우리 부부는 아이와 생활하면서부터 매일이 긴장의 연속이었다. 이거먹이면 설사할까, 저거 입히면 감기 걸릴까…….
햇살이를 입양한 지 일주일쯤 지난 저녁, 잠자리에 누운 아내가 갑자기 눈물을 주르륵 흘렸다. 깜짝 놀라 왜 그러냐고 물으니 자기도 모르겠단다. 나는 잔뜩 긴장한 채 일주일을 보낸 초보 엄마의 심정을 다 알지 못했다. 해 줄 말이 없어 그저 바라만 보는데, 햇살이가 엄마 주위를 맴돌았다.
‘아…… 햇살이는 어른이 우는 모습을 처음 보겠구나.’ 사회 복지사와 자원봉사자 선생님들의 밝은 모습만 접하다가 갑자기 엄마가 우는 모습을 보니 당황스러운 듯했다. 햇살이는 엄마의 팔다리를 주무르더니 이내 고사리손으로 눈물을 닦아주었다. 아내는 더 눈물이 날 수밖에. 한참을 안절부절못하던 햇살이가 한마디 했다.
“엄마, 미안해요.”
‘너 때문에 우는 거 아니야, 햇살아. 엄마가 그냥 몸이 힘들어서 저절로 눈물이 나는 거야. 햇살이가 잘못해서 그런 게 아니야.’ 이렇게 말해 주고 싶었을 테지만, 입이 떨어지지 않는지 아내는 그저 햇살이를 껴안고 펑펑 울 뿐이었다.
도저히 그대로는 잠들 수 없을 듯해 다 같이 거실로 나갔다. 우리는 재미있는 예능 프로그램을 하나 본 뒤에야 겨우 진정하고 다시 잠들 수 있었다. 그렇게 첫 고비를 넘겼다. 나는 “앞으로 우리가 넘어야 할 산이 수백 개겠지만, 지금처럼 서로 위로하고 의지하면서 넘어가 보자.”라며 아내를 다독였다.
그로부터 오 년이 흘렀다. 수많은 산을 넘는 동안 나와 아내는 네 아이를 입양한 다둥이 부모가 되었다. 첫째 아들은 벌써 열일곱 살이다(열네 살에 세 번째로 입양 온 아들이 장남이 되었다). 지금 우리 가족은 가평의 전원주택에서 지낸다. 강아지 여섯 마리를 돌보며, 아이들 홈스쿨링까지 거뜬히 해내는 아내를 보니 감회가 새롭다.
강내우 님 | 성악가, 유튜브 ‘가평별곡’ 운영자
- [햇살마루] 소설과 주식과 맥주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 하루였다. 새벽에도 잠이 오지 않아 한참 깨어 있었다. 글은 거의 쓰지 않았다. 그래도 새벽 여섯 시 반에 일어났고, 바닥을 청소했고, 기타를 연습했고, 근력 운동을 했다. 감정이 하강 나선을 그리며 바닥으로 떨어지지 않게 하기 위해 그런 일들을 했다. 쓰고 있는 소설에서는 주인공 형사가 수상한 참고인을 만나러 다른 지역에 내려갔다. 참고인은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형사와의 만남을 피한다. 형사는 이 사내를 꼭 만나야 하는데……. 그다음에 어떻게 써야 할지 생각이 막혔다. 이런 때 진짜 형사라면 어떻게 하려나. 여태까지 쓴 원고 분량이 200자 원고지로 1,700매가 넘었다. 요즘 기준으로는 단행본 두 권이 충분히 나올 양이다. 앞으로 써야 할 분량도 300매는 넘을 것 같다. 아무래도 두 권으로 나눠야 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온갖 사변으로 가득한 두 권짜리 장편 소설을 선뜻 집어 들 사람이 몇이나 되려나. 이게 팔릴 책인가. 쓸수록 자신이 없어진다. 기분이 싱숭생숭해서 오전에는 일본 추리 소설을 한 권 읽었다. 피아니스트 탐정이 등장하는 시리즈라니, 책장을 펼칠 때에는 진지하게 들리지 않았는데 금세 푹 빠졌다. 앞뒤가 잘 맞아떨어지는 웰메이드 추리 소설이기도 하고, 음악 소설이자 인간 드라마이기도 했다. 주인공이 겪는 고난이 가슴 아팠고 그 노력이 감동적이었다. 나도 저렇게 노력해야 하는데. 아내도 요사이 몹시 우울해한다. 우울감에는 전염성이 있고, 아내에게 그걸 옮긴 사람은 나다. 한편으로는 그녀 역시 회사에서 쉽지 않은 상황에 놓였고, 부동산 투자 기회를 놓쳤다는 생각 때문에도 괴로워했다. 다른 사람들도 이렇게 힘든가? 나도 아내도 궁금했다. 이 우울감은 우리가 중년에 접어들었기 때문인가? 우리 부부에게 아이나 종교가 있었다면 상황이 달라졌을까? 아니면 여기에 보다 근본적인 외부 요인이 있을까? 한국 사회, 더 나아가 세계 전체가 지금 대부분의 구성원이 불행해지는 환경으로 변해 가는 건 아닐까? 일자리를 찾기 어렵고, 보람이 있는 일자리를 찾기는 더 어렵고, 노동으로 부자가 될 가능성도 희박해지는 세상이 시작된 것은 아닌가. 아내는 요즘 경제 공부를 열심히 한다.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서점 베스트셀러 목록도 경제와 투자 관련 서적이 점령하다시피 했다. 하지만 이 주식이나 부동산 시장이 과연 정상인지, 지금이라도 영혼까지 끌어 모아 뛰어들어야 하는 건지, 이러다 버블이 터져서 장기 불황이 오는 건 아닌지 속 시원히 대답해 주는 사람은 없다. 저녁에는 마트에서 사 온 닭 다리와 가래떡을 안주 삼아 맥주를 마셨다. 일산에 양조장이 있는 국내 수제 맥주 회사의 신제품이었다. 만사 심드렁한 나날이라고 생각하며 아무 생각 없이 한 모금 넘겼는데, 눈이 번쩍 뜨일 정도로 맛있었다. 어, 이거 뭐야……. 찾아보니 ‘인디아 페일 라거’라고 부르는 맥주 종류인데, 2000년대 들어 미국에서 개발된 새로운 장르란다. 라거맥주의 알코올 농도를 높이고 홉 풍미를 강화해서 인디아 페일에일 같은 향이 나게 했다고 한다. 다음 날에는 아내가 재택근무를 했다. 나는 평소 사용하던 책상에서 작업하지 않고 아내와 식탁에 앉아 글을 썼다. 노트북으로 글이 잘 써지지 않는 것 같아 기분 전환 삼아 공책을 꺼내 거기에 볼펜으로 썼다. 각자 일을 하면서 가끔 잡담을 나누기도 하는데, 내가 현재 구상 중인 논픽션 내용을 아내에게 설명했다. 무모하다면 퍽 무모한 프로젝트였다. 크게 성공할 수도 있지만 몇 부 팔리고 말 수도 있다. 아내는 그 구상을 듣고 약간 감탄한 듯 보였다. 그녀는 내가 찾은 주제를 높이 평가했다. “난 전부터 자기가 이상한 생각들을 하는 모습이 좋았어. 엄청나게 크고 얼토당토않은 꿈을 꾸고 그걸 추진하려는 태도가 멋있어 보였어. 요즘은 그런 생각 안 하는 줄 알았는데, 아니었네.” “이 구상, 안 풀릴 수도 있어. 모 아니면 도야.” “알아. 그래도 멋있어.” 저녁에 밖에 나가 달리기를 하고 돌아오는 길에 편의점에 들러 인디아 페일 라거맥주를 네 캔 사 왔다. 이 맥주는 앞으로 냉장고에 몇 캔씩 쟁여 놔야지 하고 샀는데, 밤에 다 마셔 버렸다. 안주로는 아구포를 먹었다. 아구포는 처음 먹어 봤는데, 쥐포와 거의 비슷한 맛이지만 좀 더 살집이 있었다. 내가 꾸는 꿈을 이해하고, 그런 꿈을 멋지다고 생각하는 여인과 함께 살고 있다니, 나는 얼마나 운이 좋은가 생각했다. 장강명 님 | 소설가 원고 응모 정기 구독
- [동행의 기쁨] 발견하는 눈
- 다큐멘터리 작가·프로듀서 김옥영 님 익숙한 대상을 자기만의 시각으로 해석하는 것. 다큐멘터리 작가이자 프로듀서 김옥영 님(69세)은 이를 ‘발견’이라 부른다. 사십여 년간 다큐멘터리에 몸담은 그녀는 우연한 계기로 이 세계에 입문했다. 원래 그녀는 시인이었다. 생활비를 벌기 위해 잡지 《MBC(엠비시) 가이드》에 칼럼을 기고하며 방송국 홍보실을 드나들었다. 하루는 그곳 텔레비전에서 KBS(케이비에스) 다큐멘터리 〈문학기행〉을 방영 중이었다. 한데 방송에 나오는 내용은 그녀가 보기에 크게 중요하지 않은 듯했다. 그녀는 무심코 말했다. “저건 내가 더 잘하겠는데?” 그때 같이 있던 한 방송 작가가 “마침 저 프로그램에서 작가 찾더라.”라며 그녀를 피디에게 소개해 주었다. 얼마 후 피디로부터 연락이 왔다. 밤새 글 쓸 준비를 하고 오라는 것이었다. 피디가 필름을 한 컷씩 잘라 그녀에게 보여 주면 장면마다 글을 썼다. 그렇게 하룻밤 사이에 원고 작성을 마쳤다. 다음 날 후반 작업을 한 영상을 본 그녀는 깜짝 놀랐다. “큰 스크린으로 편집본을 보는데, 낙엽 밟는 소리, 바람 소리가 들어가고, 내가 쓴 글이 내레이션으로 나왔어요. ‘이런 멋진 세계가 있나.’ 했죠.” 그렇게 다큐멘터리 집필을 시작했다. 다큐멘터리는 글과 달랐다. 가령 ‘그리움’을 표현할 때 대상이나 장면을 직접적으로 묘사할 수 있는 글과 달리, 다큐멘터리는 시청자로 하여금 그리운 감정을 느끼도록 이미지를 구성해야 했다. “그때 저희 집에는 텔레비전도 없었어요. 컷 개념도 모르고 시작했으니 무모했죠. 컷과 신, 시퀀스가 무엇인지, 그것으로 어떻게 영상의 서사를 구축하는지 공부하기 시작했습니다. 홀로 영화제를 다니며 영상을 배웠죠.” 오 년이 지날 무렵, 그녀는 스스로의 정체성을 시인이 아닌 ‘다큐멘터리 작가’로 삼았다. 그녀가 생각하는 ‘다큐멘터리를 만들 때 필요한 것’은 ‘유희 정신’. “일할 때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는 재미있어야 한다는 점이에요. 저는 새로운 것을 좋아해요. 익숙한 대상도 다른 방식과 시각으로 다루는 거예요. 잘 아는 분야일수록 더 다양하게 시도할 수 있죠. 그래서 열심히 공부했어요.” 그녀는 당시엔 낯설었던 재연 형식을 도입하기도 하고, 스튜디오의 진행자가 옛 인물을 재연한 배우에게 과거 사실을 현재 일처럼 인터뷰하는 파격을 선보이기도 했다. KBS 〈다큐 인사이트-부드러운 혁명〉프로그램을 제작할 때다. 일본에 취재를 간 피디가 ‘휴머니튜드’에 대한 영상을 보여 주었다. 휴머니튜드는 치매 환자의 자유를 최대한 보장하고 인격적인 존중을 바탕으로 하는 돌봄 기법이다. 영상에는 환자가 이러한 돌봄을 받으며 점차 회복하는 모습이 담겼다. ‘이거다!’ 싶었던 그녀는 이를 다큐멘터리로 만들기 시작했다. 시청자에게 설득력 있게 다가가려면 우리나라 현장에서 입증해 보여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보건 복지부, 각 시의 담당자 등에 게 연락했다. 마침내 인천시의 적극적인 협조를 얻어 시립 치매 병원에서 두 달 동안 관찰 촬영을 했다. 결과는 놀라웠다. 환자들은 빠르게 회복했고, 긍정적인 태도로 지냈다. 이후 여러 지자체에서 문의를 하는 등 큰 화제가 됐다. 다큐멘터리는 세상에 던지는 질문이다. 그렇다면 방송을 본 시청자들의 반응이 곧 답이라고 할 수 있을 테다. 어떤 다큐멘터리는 이렇듯 사람과 사회를 변화시키기도 한다. 반면 눈에 보이지 않는 변화도 있다. 그녀는 말했다. “‘재미있어요.’ ‘감동이에요.’라는 반응은 시청자에게 우리 방송이 가닿았다는 뜻이에요. 하지만 ‘감상만 남는 다큐멘터리가 과연 좋은가?’ 하고 고민합니다. 가장 큰 찬사는 ‘이 프로그램을 보고 생각이 바뀌었어요.’예요. 이것이 다큐멘터리의 궁극적인 목적이거든요. 눈에 보이는 변화만큼이나 중요하죠.” 그녀의 시선이 닿는 곳은 사람에서부터 역사, 우주까지 다양하다. KBS 〈우주 극장〉은 무한대의 공간인 우주를 주제로 한 다큐멘터리다. 시작은 한 장의 우주 사진이었다. 그것을 보고 호기심이 생긴 것이다. 무릇 우주를 다룬 다큐멘터리라면 우주를 카메라에 담아야 할 터. 하지만 촬영 팀이 지구 너머로 나갈 방도가 있을 리 없다. 관점을 바꿔 우리가 발을 디딘 푸른 행성, 지구에서 우주의 흔적을 찾았다. 운석, 지층 등이 곳곳에 남아 있는 호주로 떠나 촬영했다. 사람들에게 우주를 보여 주는 것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 “거대한 우주에 비해 우리의 삶, 욕심, 다툼은 너무나 작습니다. 그런데 우린 발밑만 봐요. 가끔 시선을 다른 곳에 던지면 우리 삶의 모습을 더 명확하게 볼 수 있어요.” 현실을 바탕으로 하는 다큐멘터리는 그 소재 역시 동시대인에게 공감과 울림을 줄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 어떻게 하면 익숙한 것을 새롭게 보는, ‘발견하는 눈’을 키울 수 있을까? “발견하는 일은 다큐멘터리를 만드는 사람뿐 아니라 모두에게 필요합니다. 유튜브, 에스엔에스는 알고리즘을 이용해 관심 있는 주제만 보여 주죠. 그러니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정보만 얻고, 사고가 편협해지기 쉬워요. 중요한 건 의심하는 시각입니다. 옳다고 여겨지는 것을 의심해 보세요. 저는 이슈가 생기면 여러 매체의 기사를 두루 읽어요. ‘무엇이 타당한가?’ 하고 질문할 때 발견이 생깁니다. 질문하는 사람이 발견하고, 발견하는 사람이 세상을 만듭니다.” 글 _ 정정화 기자, 사진 _ 케이이미지 원고 응모 정기 구독
- [특집] 돈보다 귀한
도시에서만 산 나는 시골에서 자란 남자를 만나 결혼했다. 사랑 앞에서 조건을 따지지 않는 내게 친구들은 걱정 어린 눈빛을 보냈다. 내게 주어진 1남 6녀의 외며느리 역할은 그 무게를 가늠할 수 없었다. 처음 해 보는 살림과 육아는 낯설었고, 가시밭길이 펼쳐졌다. 한 달에 몇 번 시골집을 찾아 부모님을 뵙는 일은 자식 된 도리였으나 며느리인 나는 힘들기만 했다. 격자무늬 문살에 붙인 창호지에 구멍이라도 뚫려 있으면 바람이 들어와 코끝이 시렸다. 아이를 낳은 뒤에는 그곳에서 아이를 먹이고 씻기는 게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대문 옆 재래식 화장실, 불을 지피는 아궁이, 물 끓이는 무쇠솥 등 시골집에 내려갈 때에는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해야 했다. 아들과 손자를 만나 행복해하는 시부모님의 모습에 힘들다는 말도 할 수 없었다. 어느 겨울날, 주방 수도관이 얼어서 물이 나오지 않았다. 급히 다른 곳에서 물을 길어 와 밥하고 설거지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추운 날씨에도 아버님은 방에만 보일러를 틀었다. 주방 바닥은 얼음장같이 차가워서 양말을 신어도 뼛속까지 냉기가 돌았다. 그렇게 며칠을 지내고 돌아와 감기를 심하게 앓았다. 몸을 추스린 뒤에야 시부모님이 농사지은 곡식을 차곡차곡 넣어 준 가방을 풀었다. 찹쌀, 콩, 팥, 참깨가 들었고, 밑바닥에 봉투 하나가 얌전히 놓였다. ‘이건 뭐지?’ 열어 보니 만 원 짜리 서른 장이 있었다. 웬 돈인가 싶을 때 넷째 시누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너희 가고 부모님이 다투셨어. 엄마가 며느리 힘든데 주방에 보일러도 안 틀어 줬다고 아버지한테 막 화를 내셨대. 네가 발 비비며 일하는 모습 보고 마음이 많이 아프셨나 봐. 너한테 미안하다고 가방에 쌈짓돈 전부 넣어 뒀다는데 봤니? 네게 연락이 없어서 엄마가 걱정하신 모양이야.” 그제야 어머님의 마음을 알았다, 하나뿐인 며느리를 아껴 주고 싶은데 그렇게 하지 못해서 속상했다는 걸. 경제권이 없는 어머님에게 삼십만 원은 큰돈이었다. 그날, 나는 돈보다 귀한 어머님의 마음을 받았다. 철없는 며느리는 그것도 모르고 시댁 오가는 일을 꺼렸다. 그다음부터는 시골집에 가는 것에 투정을 부리지 않았다. 아이들이 자랄수록 시부모님에게 고마웠다. 도시에서 충족시키기 어려운 호기심을 시골에 내려가면 채울 수 있었다. 가마솥, 아궁이, 뒤뜰의 감나무, 개울, 외양간의 소 울음소리, 지저귀는 새소리…… 시골에서 마주하고 경험하는 것들은 아이들의 정서적 자양분이 되었다. “하늘나라에 계신 어머님, 아버님. 저희 행복하게 잘 살고 있어요. 가끔 시골 집이 그리워요. 아이들도 이제 청년이 되었답니다. 저희 앞으로도 서로 사랑하며 살게요. 보고 싶어요.” 윤성희 님 | 경남 창원시 원고 응모 정기 구독
- [오늘의 만남] 선물
초등학교 육 학년인 그 아이는 길을 잃었다고 했다. 축구 선수로 활동하다가 부상을 당해 꿈을 포기해야 했던 아이는 말끝마다 이렇게 이야기했다. “선생님, 저 뭐 먹고 살아요?” 어른처럼 말하는 모습이 하도 귀여워 터져 나오려는 웃음을 억지로 참으며 진지하게 답했다. “그렇구나. 너는 먹고사는 게 걱정이구나. 음…… 그럼 일단 오늘 먹는 것부터 해결할까? 우리 짜장면 먹고 이야기하자.” 짜장면에 이어 후식으로 아이스크림을 먹을 때까지 밝았던 아이가 다시 어두워지며 이야기를 이어 나갔다. “영호는 국어를, 미소는 영어를 잘해요. 보라는 그림을 잘 그리고, 하늘이는 노래를 잘 불러요. 형태는…….” “신기하네. 너는 그런 거 어떻게 알았니?” 아이는 운동을 그만두고 한 달 동안 교실 구석에서 친구들을 지켜봤다고 했다. 길 잃은 아이는 제 길을 잘 걸어가는 친구들이 무척이나 부러웠을 것이다. 때론 친구들에게 그런 마음을 직접 이야기했단다. 그런데 친구들은 운동을 못하게 된 자기를 위로해 주지 않고 그저 고맙다는 말만 했다고 한다. 심지어 이야기를 나눈 후에 장난을 치거나 자기 고민까지 털어놓는 친구들도 있어 서운했다고. “많이 불편했니?” “서운하긴 했지만 불편하지는 않았어요.” 아이는 관찰력과 공감 능력이 뛰어났다. 그때부터 본격적인 상담이 시작되었다. 그 아이가 어느덧 이십 대 청년이 되었다. 지금은 외국의 한 대학교에서 상담사가 되기 위해 공부한다. 자신의 경험을 살려 운동을 포기한 사람들을 상담해 주고 싶단다. 공부하다 힘들면 상담 마지막 날 내가 해 준 말을 떠올린다고 했다. “상담사가 되고 싶다고? 고맙다고? 아니, 내게 고마워할 필요 없어. 그건 선물이야. 다친 네 다리가 너에게 준 선물. 있잖아, 좀 어렵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인생은 모두 선물이란다. 아프고 힘든 일도 나중에 너를 기쁘게 하는 선물이 될 거야. 이제 길을 찾았구나.” 문경보 님 | 문 청소년 연구소 소장 원고 응모 정기 구독
- [좋은님 에세이] 잘해 왔다
집을 리모델링하며 가구들을 처분했다. 가장 신경 쓰이는 건 거실 한편에 자리한 나무 장식장이었다. 어떻게 할지 고민하는데, 엄마가 내 방에 책장으로 놓는 게 어떠냐고 넌지시 물었다. 나보다 오랫동안 부모님과 함께한 장식장은 세월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내려앉아 상단만 남아 있었다. 어쩐지 그모습이 나와 닮아 보였다. 엄마가 유방암과 희소병인 골수 섬유증 진단을 받았을 때 나는 보호자를 자처했다. 일과 결혼은 급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엄마를 위해 뭔가를 할 수 있다는 사실이 고마울 뿐이었다. 하지만 최근 친구들에 비해 내가 뒤처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괜한 조바심으로 남과 비교하며 내 마음에 생채기를 냈다. 장식장을 버리자니 나를 무책임하게 버려두는 듯했다. 불확실한 현실에 뚜렷한 변화를 만들고 싶었다. 나는 장식장을 책장으로 고쳐 쓰기로 했다. 먼저 치수를 잰 뒤, 원래 있던 선반을 치워 책장이 들어갈 공간을 만들었다. 유리문 네 개를 떼고 젯소를 칠했다. 하얗게 바뀐 책장처럼 내 움츠린 마음도 조금씩 펴졌다. 이후 진회색 페인트를 칠하고 말리기를 세 차례 반복했다. 지난 사 년이 떠올랐다. 엄마는 길고 힘든 치료 과정을 잘 버텨 주었다. 여리기만 했던 나는 담대해졌고, 부모님의 책임감과 희생을 깨달았다. 그동안 나는 멈춰 있는 게 아니었다. 느리지만 성장하는 중이었다. 건조가 끝난 책장을 자세히 살펴보았다. 그제야 얼룩진 옆면과 살짝 틀어진 선반이 눈에 들어왔다. 결점이라기보다 책장의 일부분처럼 보였다. 방 한 쪽에 자리한 책장에서 안정감과 무게감이 느껴졌다. 인생에는 정해진 노선도, 속도도 없다. 나는 그 사실을 머리로만 이해했기에 위축되었다. 장식장을 고치면서 그 뜻을 온전히 마음에 새길 수 있었다. 어쩌면 나는 다시 오지 않을 소중한 순간을 지나고 있다. 이 시간은 앞으로 든든한 밑거름이 될 것이다. 책장의 먼지를 닦고 흐트러진 책을 다시 꽂았다. 그리고 엄마를 힘껏 안아 주었다. 오미형 님 | 충남 당진시 원고 응모 정기 구독
- [새벽 햇살] 새싹
수용자는 좁은 공간에서 반복되는 하루를 보낸다. 감성이 메마르기 쉬운 우리를 위해 수경 재배 프로그램이 열렸다. 자연과 교감하며 감수성을 기르는 시간이었다. 나는 고구마를 받았는데 이미 시들어서 말라비틀어졌다. 살아날 가망이 없는 듯한 고구마가 마치 내 모습 같았다.나는 고구마를 꼭 살리고 싶었다. 페트병을 반으로 잘라 물을 채운 뒤 고구마를 담갔다. 물 높이가 이 센티미터를 넘으면 자칫 썩을 수 있다는 주의를 들었기에 수시로 살폈다. 관심과 사랑은 반드시 응답하는 것일까. 수경 재배를 한 지 보름째, 드디어 새싹이 모습을 드러냈다. 덩달아 내 가슴속에서도 뜨거운 소망이 꿈틀거렸다. 그간 나는 ‘이제 늙었다. 너무 늦었다.’라는 생각에 자포자기하고 있었다. 만사 귀찮아하며 돌아누웠던 나를 새싹이 다시 일으켰다. 시든 고구마에서 새싹이 돋아나다니. 손자뻘의 아들을 둔 나의 지난날이 머릿속을 스쳤다. 나는 결혼을 남들보다 이십 년 정도 늦게 한지라 아들과 나이 차가 많이 난다. 아들이 초등학교 삼 학년 때, 나는 처음으로 학교를 찾아갔다. 교문에 들어서자 어디선가 아들이 달려왔다. 아들은 내 손목을 끌고 이곳저곳 돌아다녔다. “선생님, 우리 아빠예요.” “아빠, 선생님께 인사하세요.” “성준아, 은화야, 우리 아빠다!” “아빠, 우리 반 친구들이에요.” 젊은 아빠들이 학교를 방문했을 때 홀로 느꼈을 외로움을 날리려는 듯 아들은 의기양양하게 외쳤다. “아빠, 아빠!” 아들은 즐거워 보였고, 발걸음도 경쾌했다. 나는 풍족하지 않아도, 그저 함께 있는 것만으로 행복해하는 아들의 작은 소망을 외면하고 불만에 가득 차 있었다. 젊은 날의 꿈을 이루지 못한 실패감으로 술을 마시곤 했다. 아무리 길고 어두운 밤일지라도 그 끝은 언제나 밝은 새벽이라는 사실조차 패배 의식에 잊고 지냈다. 생명의 무한한 잠재력까지 술로 덮어 버렸는지도 모른다. 그랬던 내가 낙담의 끝에서 만난 새싹 덕분에 생명의 존엄성을 새로이 깨달았다. 내 나이대의 다른 이들이 아름다운 추억에 젖으며 웃을 때, 나는 구겨서 버린 꿈을 다시 펼쳐 보기로 했다. 인생에서 너무 늦어 시작도 못 할 순간은 없는 것이다. 나는 지금 이 시각을 삶의 전환기로 삼고 재충전하기로 했다. 인생 후반전을 위한 목표와 실천을 꼼꼼히 작성했다. 인문학책 읽기와 한문 공부 등으로 하루 계획을 세웠다. ‘감사는 인생을 바꾼다.’ 이 말처럼 앞으로는 삶을 비교하고 원망하는 대신 세상과 이웃을 칭찬하기로 했다. 날마다 고마운 일을 찾아 일기로 기록하려 한다. 나를 일으킨 새싹에 고맙다. 새벽 햇살 책 후원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