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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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좋은생각

[특집] 앞집 그녀

십 년간 중국 베이징에서 살다가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하던 일을 접고 귀국했다. 많은 중국인을 만났지만 특히 잊을 수 없는 사람이 있다. 앞집 샤오한 엄마다.

 

우리가 샤오한네 앞집으로 이사 간 때는 한국과 중국의 관계가 살얼음판 같은 시기였다. 교민들 사이에 흉흉한 소문이 퍼졌다. 그래서인지 앞집 여자는 나와 마주쳐도 눈길 한번 주지 않았다. 학교에 다녀오는 초등학생, 중학생 딸들도 나를 외면하고 현관문을 닫아 나를 무안하게 했다.

 

한국 학생들을 대상으로 입시 과외를 한 나는 아이들에게 드나들 적에 현관문을 살살 닫고 엘리베이터에서도 조용히 하라고 신신당부했다. 우리 가족은 겨우내 숨죽여 지냈다.

 

봄바람이 불어올 무렵이었다. 그날도 외출하려고 집을 나서는데 때마침 나오는 앞집 여자와 눈이 마주쳤다. “안녕하세요.” 내가 반갑게 인사하자 그녀도 마지못해 미소로 답했다. 같이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면서 나는 우리 학생들이 오가며 시끄럽게 해서 미안하다고 했다. 그녀는 괜찮다면서 내게 뜻밖의 말을 건넸다.

 

“대단해요. 가르치는 학생이 많은 걸 보니 능력이 있나 봐요. 부럽네요.” 움츠린 마음이 풀리는 듯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내가 무심코 물었다. “남편은 무슨 일을 하세요?” “그이는 작년에 세상을 떠났어요.” “정말요?”

 

나도 모르게 그녀의 손을 덥석 잡았다. 그녀는 눈시울을 붉혔다. 그녀의 남편은 암 수술을 하고 집으로 돌아왔으나 경과가 좋지 않아 다시 입원했고 결국 세상을 떠났다고 했다.

 

당황스러웠다. 그리고 미안했다. 앞집에서 큰일을 치른 것도 모르고 지냈다니. 아이들과 엄마가 그 많은 밤을 눈물로 보냈을 텐데 내가 무심했구나.사정도 모르고 앞집을 오해한 내 모습이 떠올라 부끄러웠다. 그동안 앞집 가족의 행동이 냉랭했던 이유는 힘들고 숨 막히는 일을 겪느라 지쳐서였다.

 

그녀와 헤어지면서 말했다. “주말에 같이 차 마셔요.” 그녀는 중국 전통 과자인 월병을 들고 우리 집에 왔다. 그렇게 우리는 맛있는 음식을 나누어 먹고, 서로 택배를 받아 주며, 기쁜 일과 슬픈 일을 나누는 이웃이 되었다. 게다가 그녀는 내게 더없이 좋은 중국어 선생님이었다.

 

하루는 내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이제 남편이 떠난 지 일 년이 지났으니 일을 해야 하지 않을까요?” 그녀는 아이가 어려서 회사 출근을 할 수 없다고 했다. 나는 한국 학생에게 중국어 과외를 하는 게 어떠냐고 물었다. 그러면서 내가 한국어를 알려 주겠다고 했다. 우리는 일주일에 두 번씩 만나 서로의 언어를 배웠다.

 

그녀는 내가 소개해 준 학생들을 가르치기 시작했고, 정식 강사 과정을 밟아 자격증까지 땄다. 코로나19로 모든 학원이 문을 닫았다. 그녀는 수입이 없는 나를 걱정하며 시장에 갈 적마다 우리 몫까지 장을 봐 주었다. 비쩍 마른 몸으로 두 집 찬거리를 자전거에 싣고 와서는 이마에 땀이 송송 맺힌 채로 문을 두드렸다. “얼마나 힘들어요.” 나를 걱정하며 나직하게 물어 오던 그녀의 정겨운 얼굴이 떠오른다.

 

문명자 님 | 경기도 고양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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