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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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좋은생각

[새벽햇살] 있는 그대로

나는 불행한 유년 시절을 보냈다. 아버지는 술을 마시면 평소에 꺼내지 못한 이야기를 울분과 함께 쏟아 냈다. 

 

어린 나이에 결혼한 어머니는 고된 시집살이도 자식에 대한 넘치는 사랑으로 견뎠다.

 

어머니의 사랑과 기대감은 무거웠다. 나는 그런 어머니를 실망시킬 수 없다는 생각에 말 잘 듣는 아들로 자랐다.

 

학교생활, 진로 문제를 시작으로 내 꿈이 어머니 뜻과 부딪히는 경우가 자주 생겼다. 그래도 순응하는 아들로 사는 게 효도라 여겼다.

 

그런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고 한 아이의 아빠가 되었다. 나는 아이에게 해 주고 싶은 게 많았다.

 

하나 행복은 오래가지 못했다. 또래와 달리 아이의 말이 느린 점을 대수롭지 않게 여겼지만, 전문가를 통해 아이가 자폐라는 검사 결과를 받았다. 하늘이 무너지는 듯했다.

 

나와 아내는 최선을 다해 아이를 돌보면 좋아질 거라 믿었다. 하지만 치료는 기대한 만큼 좋은 결과로 이어지지 않았다. 힘들어 울기도 하고, 다른 이들과 있을 때 자녀 이야기가 나오면 슬그머니 자리를 피했다.

 

전문가가 권한 부모 심리 치료도 힘들었다. 스스로 행복하지 않았다고 생각하는 유년 시절을 다시 마주하는 시간은 불편함을 넘어 두렵기까지 했다.

 

어머니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했던 크고 작은 거짓말, 내 의지가 아닌 어머니가 원하는 꿈을 향해 쏟아부은 시간들……. 일주일에 두 번 들여다보는 나의 민낯을 견디기 버거웠다. 치료비가 부담된다는 핑계로 편치 않은 상담을 그만두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운영하던 회사는 경영 악화로 부도났고, 나는 법적 문제에 휘말려 이곳에 들어왔다. 돌이킬 수 없는 현실을 받아들여야 했다.

 

그동안 아내와 나누지 못한 마음속 이야기를 편지로 주고받으며 서로 조금 더 애틋해졌다. 하루는 아내로부터 이런 편지를 받았다.

 

“아이 행동을 보고 당신 생각이 났어. 떡볶이를 먹고 국물만 남았는데 뚜껑을 닫길래 ‘설거지하려는데 왜 그래?’ 하고 물었더니, 남은 국물에 밥 말아 먹을 거라는 거야. 당신이 늘 먹고 난 김치 국물도 냉장고에 다시 넣잖아. 그 모습이 똑같았어. 사실 얼마 전에도 냉장고에서 김치 국물만 남은 통을 발견했거든. 그때는 잘 몰라서 그런가 보다, 하고 넘겼는데 그게 아니었어. 당신과 같은 생각으로 행동한 거야. ‘핏줄이 무섭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어. 내가 당신에게 바라는 건 하나뿐이야. 아이를 있는 그대로 사랑해 주면 좋겠어.”

 

아이를 존재 자체로 사랑해 주지 못하고 부끄러워했던 스스로가 너무 작게 느껴졌다. 과거를 마주하는 게 힘들어 아이에게 도움이 된다는 심리 치료조차 거부했던 못난 내 모습, 괴로웠던 그동안의 시간이 떠올라 가슴 아팠다.

 

문득 암과 오래 투병하다 세상을 떠난 어머니가 남긴 말이 생각났다.

 

“아들아. 너를 있는 그대로 사랑해 주지 못하고 내 틀에 맞춰 살게 해서 네가 힘들었겠구나. 미안하다.”

 

어머니는 힘든 시집살이에 대한 보상으로 아들이 본인 뜻대로 자라기를 바랐다. 나는 아들이 다른 아이들과 다르다는 이유로 창피해하고, 충분히 사랑해 주지 못했다.

 

아내의 편지를 통해 마주한 아들은 나와 닮은, 세상에 하나뿐인 아이다. 그래서 더 많이 사랑하려고 한다. 부족하면 부족한 대로, 넘치면 넘치는 대로. 있는 그대로 사랑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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