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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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좋은생각

[햇살 마루] 달밤의 면회

 

지지난달, 운동하다가 뜻하지 않은 골절 사고를 당해 삼 주 동안 병원 신세를 지고 말았다.

 

“삼 주나요?” 내가 놀란 표정을 짓자 담당 의사에게선 이런 답이 돌아왔다. “왼쪽 팔하고 왼쪽 다리가 같이 부러졌잖아요. 입원 기간만 삼 주인 거지, 재활까지 합치면 두 달은 족히 걸려요.”

 

나는 걱정이 앞섰다. 원고야 병실에 노트북을 갖다 놓고 쓴다 해도, 집안일은 그럴 수 없는 법.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때문에 집에 갇혀 있는 중학생 한 명과 초등학생 두 명의 밥과 빨래는 어쩌나? 직장에 다니는 아내 혼자 그 일을 감당하긴 어려울 것 같았다.

 

“당신한텐 미안한 말이지만…… 사실 아이들이 아빠가 해 주는 밥 먹기 싫대…….” 내가 입원실에 누워 걱정을 늘어놓자 아내가 심드렁한 목소리로 이야기했다.

 

“그리고 나도 맛있다곤 했지만…… 그게 참…….” 아내는 그 말을 하면서 풋, 하고 웃었다. 그러곤 “그러니까 걱정하지 말고 휴가다 생각하고 푹 쉬어.”라는 말을 덧붙였다. 나는 좀 삐친 마음이 되었지만, 다 나를 염려해서 하는 아내의 거짓말이라고 여겼다. 내 음식 솜씨가 뭐가 어때서…….

 

“그나저나 병실에도 보호자가 있어야 할 텐데.” 아내 말에 나는 손사래를 쳤다. “뭐 할 게 있다고. 오른팔과 오른쪽 다리는 말짱한데, 뭘.” 말은 그렇게 했지만 그게 그리 만만한 일이 아니었다. 식사 시간마다 조리사 아주머니들이 침대까지 식판을 직접 가져다주었지만 다 먹고 뒤처리는 각자의 몫이었다. 빈 식판을 한 손에 든 채 휠체어를 타고 다시 배식 차까지 가져가야 했는데, 몇 번이고 기우뚱 식판을 엎을 뻔했다.

 

“병원에도 매일 올 필요 없어. 그 시간에 잠이나 더 자. 영상 통화 하면되지, 뭐.” 나는 그게 내 진심이라고 생각했다. 아내한테 미안한 마음이 먼저였으니까.

 

하지만 입원 첫날부터 나는 좀 외로웠다. 코로나19로 면회객의 병동 출입이 제한되었지만, 병원 주차장 옆 등나무 벤치에선 만남이 가능했다. 어쨌든 그곳은 야외였으니까. 저녁을 먹고 바람이라도 쐴 겸 그곳으로 휠체어를 타고 나가 보니 띄엄띄엄 환자와 그 가족들이 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나는 멀거니 그들을 보다가 병실로 돌아왔다. 

 

애들은 오면 안 되지, 나는 혼자 생각했다. 가뜩이나 거리 두기 해야 하는데. 나는 괜스레 핸드폰에 저장된 아이들 사진을 넘겨 보았다. 맨날 밥 먹는 것 때문에 싸우기나 했지, 뭐. 이참에 아빠 소중한 것도 알고, 좋지, 뭐……. 

 

나는 일부러 영상 통화도 하지 않았다. 아내는 매일 두 번, 출근할 때와 퇴근할 때 잠깐잠깐 간식과 속옷을 챙겨 병원에 들렀다. 그때마다 나는 빼먹지 않고 물었다. “애들이 아빠 안 보고 싶대?”

 

그러면 아내는 늘 되물었다. “왜? 애들 보고 싶어? 한번 같이 올까?” “에이, 어딜 데려와? 코로나 때문에 안 돼.” “아니, 당신이 자꾸 물으니까.” 보고 싶긴 한데, 어디 그럴 수가 있나? 나는 아내가 부담스러울까 봐 속 마음을 드러내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아빠 밥이 먹기 싫다고 했다니…….

 

병원에 입원하고 맞은 첫 주말, 밤 아홉 시쯤 아내에게서 전화가 왔다. “잠깐 휠체어 타고 주차장으로 내려와 봐.” 나는 무슨 간식을 갖고 왔으려니 생각하고 갔다.

 

거기에 아이들이 있었다. 아이들은 아내의 차에 탄 채 유리창을 내리고 “아빠!” 하며 두 손을 흔들어 댔다. 나는 오 미터쯤 떨어진 곳에 휠체어를 멈춘 채 아이들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이게 드라이브스루 면회야.” 아내가 찡긋 웃으며 말했다.

 

나는 하마터면 눈물이 날 뻔했다. 우리 사이의 물리적 거리가 마음을 더 가깝게 만들어 주는 것 같았다. 나는 그러지 않아도 되는데 큰 목소리로 아이들에게 말을 걸었다. “아빠 없으니까 밥 먹기 힘들지? 조금만 참아!”

 

그러자 좀 전까지만 해도 환하게 웃던 아이들의 얼굴이 일순 무표정하게 바뀌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계속 깁스한 왼쪽 팔까지 함께 흔들며 “아빠가 떡볶이 또 해 줄게!”라고 소리쳤다. 

 

달이 환한 여름밤이었다.

 

이기호 님 |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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