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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행의 기쁨] 자리를 찾는 일 <정리 컨설턴트 정희숙 님>

빵 끈, 보자기, 쇼핑백, 빈 잼병, 죽 포장 용기. 정리 컨설턴트 정희숙 님(49세)이 집 이천오백여 채를 정리하고 꼽은, 어느 집에나 있는 물건이다. “이걸 버리지 않고 모아 두는 건 부자도 연예인도 마찬가지였어요. 특별한 이유는 없어요. 나중에 쓸 일이 있을 것 같다는 거죠. 다 똑같은 방식으로 하니까 희한해요. 우리나라 사람들은 쉽게 못 버려요.” 무조건 버리기만 하는 정리는 우리 정서에 안 맞는 부분이 있다고 한다. “정리가 버리기라는 것도 선입견이에요. 제가 더 알뜰해요. 쓰레기를 버리지 쓸 만한 건 안 치워요.” 물론 공간을 얻으려면 필요 없는 건 버려야 한다. “저는 좋은 선택을 할 수 있게끔 제안만 해요. 사람마다 자기 기준이 있거든요. 필요한 물건만 갖고 살 순 없어요. 안 써도 보기만 해도 좋은 게 있고, 갖고 있는 것만으로 만족스러운 게 있죠. 못 버리겠다면 두면 돼요. 그렇게 맞춰 가요.” 

 

그녀는 의뢰인을 처음 만나면 대화를 몇 시간씩 나눈다. “사연을 듣고 그 사람에 대해서 알려고 해요. 그래야 이해하고 진심으로 할 수 있어요.” 꼭 묻는 질문이 “왜 정리하려고 하세요?”다. “주로 가족 변화가 많아요. 자녀가 태어나거나, 입대하거나, 결혼하거나. 퇴직이나 사별, 이사, 리모델링도 있고요.”

 

주로 ‘더는 안 되겠다’ 싶을 때 그녀를 찾기에 극단적인 사례가 많다. 보다 못한 가족이나 친구가 대신 신청하는 경우도 있다. 처음 집을 보면 이해가 안 간다. 바닥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물건으로 가득하고, 십 년 동안 한 번도 청소하지 않은 집도 있었다. 그러나 얘기하다 보면 가정사를 깊이 알게 되고, 공감이 간다. 남편이 외도했는데 이혼할 용기가 없어서, 스트레스 풀 방법을 찾다 쇼핑 중독에 빠진다. 어릴 때 부유하게 살았던 사람이 형편이 어려워지자 물건에 집착한다. 저장 강박증, 우울증에 걸린다. “그런 얘기를 들으면 눈물이 나요. 자기 나름대로 찾은 살길인 거예요. 우울증, 무기력증이 오면 먼지가 안 보여요.”

 

그녀는 저서 《최고의 인테리어는 정리입니다》에 이렇게 썼다. “물건은 우리 마음과 비슷한 데가 있다. 쓰이지 못하고 집 안 여기저기에 박힌 물건들은 해결하지 못한 문제가 뭉쳐 마음 깊은 곳에 숨어 있는 것과 같다. 그렇기에 정리는 마음을 풀어내는 과정이다. 지저분한 침실이 안락한 꿈을 꿀 수 있는 편안한 공간으로 바뀐다면? 설거지거리가 넘치던 주방이 당장 요리하고 싶어지는 공간으로 바뀐다면? 우리 마음도 달라질 것이다.”

 

정리를 시작하면 물건을 남김없이 빼낸다. “별게 다 나와요. 서랍장 밑에 있던 볼펜도 의뢰인 물건이니까 꺼내요. 잘 안 드는 핸드백 안에 녹은 젤리, 립스틱이 들었어요. 결혼 예물을 찾아 준 적도 있어요. 의뢰인이 경계심을 갖기도 해요. 창피해하고, 자존심 상해하고, 우는 사람도 있어요. 그래도 성의 있게, 꼼꼼하게 하고, 깨끗해지는 게 보이면 안심해요. 끝나고 고맙다면서 문밖까지 배웅해 줄 땐 뿌듯하죠.”

 

이렇게까지 하는 이유가 있다. “사람들은 자신이 가진 걸 몰라요. 있는지도 모르는 건 내 것이 아니에요. 필요할 때 못 찾으니까요. 살면서 한 번은 내가 사 놓은 모든 물건을 봐야 한다고 생각해요. 인생의 재고 조사를 하는 거죠. 보면서 ‘왜 샀지?’ 하고 돌이키는 거예요.”

 

그녀의 정리는 효과가 유지된다는 특징이 있다. 비결은 ‘쉽게 만드는 것’이다. “물 마시는 곳에 컵이 있고, 요리하는 곳에 프라이팬과 양념이 있고. 사용 장소에 물건이 따라붙는 거예요. 옷은 다 걸어 놔요. 사용자별, 종류별로 분류해서요. 자리가 모자랄 때는 개서 바구니에 세워 둬요. 잘 보이고, 쉽게 찾아 꺼낼 수 있게요. 사람들이 유지를 못하는 건 찾다가 흐트러뜨려서예요. 얼른 나가야 하는데, ‘스카프 어딨어?’ 하면서 막 헤집어요. 근데 정리해 놓으면 딱 그 자리에 있거든요. 빽빽하게 두면 안 돼요. 다시 넣기 어렵거든요. 그러면 ‘에이.’ 하고 위에 얹어 놓게 돼요. 유지하려면 정리 시스템을 잘 구축해야 해요.”

 

정리가 안 되는 이유는 물건에 자리가 없어서다. “정리 못하는 집의 공통점은 물건이 섞이고 쌓여 있는 거예요. 잘 안 보이고 못 찾으니까 없는 줄 알고 또 사고, 쌓이고. 그러니 더 못 찾죠. 이걸 반복하면서 물건이 늘어나면 수납공간이 모자라 밖으로 나오고, 바닥으로 내려오고, 소파 같은 가구로 올라오죠. 그래서 식탁에서 밥 못 먹고 침대에서 못 자는 사람도 있어요. 집처럼 물건에도 주소를 붙여 줘야 해요. 제 일이 물건 자리 정해 주는 거예요.”

 

정리의 중심은 물건이 아니라 사람이다. “어떤 집은 애들 위한다고 장난감을 사 놨는데 정작 애들이 들어갈 공간이 없었어요. 안타깝죠. 이 방에서 누가 뭘 하는지가 중요해요. 서재라면 책을 편하게 읽을 수 있어야 해요. ‘의자 뺄 때 불편하진 않을까?’ 같은 식으로 사용자 중심으로 정리하는 거죠. 먼저 방의 목적을 정해야 해요. 침실이면 침대 위주, 서재면 책상 위주. 그걸 따지지 않고 무조건 넣으면 방을 봤을 때 서재인지 옷방인지 구분이 안 가죠. 누가 봐도 침실, 서재, 옷방인 걸 알게만 해도 잘한 거예요.” 목적에 맞게 공간을 꾸미면 의욕이 생긴다. “서재가 잘 조성되면 책을 읽고 싶기 마련이에요.”

 

그녀는 가족 모두에게 각자의 공간을 마련해 주어야 한다고 했다. “누군가가 공간을 독점한 집이 있어요. 온통 애들 물건이고 아빠를 위한 의자 하나 없는 곳도 봤고요. 자기만의 공간이 필요해요. 방을 다 내주라는 게 아니에요. 주방 한편, 책상 하나예요. 저도 제가 아끼는 책을 싱크대 한쪽에 놓고 제 공간으로 썼어요. 또 부부 공간, 가족 공간도 있겠죠. 거기에는 개인 물건을 두지 않고요. 그러면 가족 관계가 좋아져요.”

 

정리를 통해 과거나 미래가 아닌 현재를 살 수 있다. “재난이나 전쟁이 날까 봐 비상식량으로 생수 수백 개, 쌀 수십 포대를 쌓아 놓기도 하고, 방독면까지 준비한 곳도 있었어요. 약이 굉장히 많기도 해요. 불안한 거죠. 과하게 걱정해요. 과거가 더 많은 사람도 있어요. 자기가 전에는 옷 사이즈가 55였는데 지금은 88이래요. 그런데 옷장엔 작은 옷밖에 없어요. 다이어트할 거라고 다짐하면서요. 그 물건이 공간을 차지하면 거기 있을 게 다른 데로 밀려나거든요. 그만큼 좁아지죠. 정리는 선택이에요. 저는 현재를 기준으로 선택하길 권해요.”

 

정리를 마치고 나면 의뢰인들이 문자 메시지를 보낸다. 그녀는 잘 모아 둔다. “다 적으면서 중복된 말을 찾아봤어요. 행복, 변화, 전환점. 활력이 생기고, 집에 빨리 오고 싶고, 뭔가를 새로 시작할 의욕이 생겼다고 해요. 저도 이렇게 큰 힘이 있는 일인지 몰랐어요. 이 말들이 제게는 보물이에요.”

 

글 _ 이호성 기자, 사진 _ 최연창 153 포토 스튜디오 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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