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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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좋은생각

[특집] 나답게 만든 것



나의 콤플렉스는 가난했던 경험과 감성적인 성격이다. 어린 시절 경제적으로 어려워 가족과 떨어져 산 적이 있고, 어른이 되어서는 집안에 도움을 주느라 빚을 갚으며 산 시간이 길다.


가난은 두 글자지만, 그것이 주는 곤란함과 비루한 경험은 구체적이고 난데없었다. 성격까지 감성적이라서 남들보다 많은 것을 느끼며 더 상처받고 슬퍼했다. 예측하지 못한 곳에서 날아온 공을 여러 번 맞으면 공이 오지 않는 순간에도 무서운 것처럼, 불행은 나를 위해 준비된 것 같다는 어두운 생각을 하며 청춘을 보냈다.

 

변호사가 된 뒤 좋은 환경에서 성장한 동료들을 만났다. 나와는 인생의 출발선이 다른 사람들로 느껴졌다. 게다가 변호사 대부분은 이성적이고 논리적이었다. 나는 내 성격이 비이성적이라는 단점으로 여겨져 변호사라는 직업이 나와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다 어려운 사람들을 변론하는 국선 변호를 하게 되었다. 나는 내 가난의 경험과 감성적인 성격 덕에 피고인들이 많은 말을 하지 않아도 앞서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었다.

 

아르바이트인 줄 알고 보이스 피싱 일당에게 이용당한 남자의 국선 변호를 맡았다. 그는 이혼한 뒤 홀로 아이들을 키웠다. 그의 아버지는 전신불수로 누워 지냈다. 그의 어머니는 종일 아버지를 간병했는데, 경제적으로도 어려워서 많이 지쳐 있었다. 그는 그런 어머니에게 아이들을 맡기고 구치소로 들어왔다.

 

그는 내 앞에서 가슴을 치며 후회하고 반성했다.“ 딸이 곧 초등학교에 입학하는데, 가방 하나 못 사 주고.” 그는 딸 얘기를 하다 어깨를 들썩이며 울었다. 아빠가 먼 타국에 일하러 간 줄 아는 그의 딸은 어머니를 통해“ 아빠, 입학식에는 꼭 와 주세요.”라는 편지를 보내왔다고 했다. 나는 그를 대신해서 딸의 가방과 신주머니를 고르고 포장했다.


며칠 뒤 그로부터 편지가 왔다. 딸이 아빠 이름으로 보내진 분홍색 가방을 받고 기뻐했다는 소식을 어머니로부터 들었다고. 그는 또다시 가족과 헤어지는 일이 없도록 출소 후 반듯하게 살겠다고 했다.


홀로 미성년 자녀를 양육하다 아이들만 집에 두고 덜컥 구속되는 경우도 있다. 그럴 때면 나는 아이들에게 전화해서 어른이 필요한 일이 있으면 꼭 내게 연락하라고 했다.

 

피고인들로부터 작은 희망과 고마운 마음이 담긴 편지를 받으면서 내 지난 어려움과 감성적인 성격이 때로는 나를 더 좋은 변호사이게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콤플렉스라고 여긴 점들이 나를 가장 나답게 만들어 주었다.

 

 

최진희 님(가명) ㅣ 서울시 마포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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