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생각

장바구니0

이달의 좋은생각

[좋은님 에세이] 하나뿐인 결혼식



거실에 있는 아버지가 나를 부른다. 출근 전에 침대에 누워 있는 나를 휠체어에 옮기기 위해서다. 눈을 뜨고 대답해야 하는데 몸이 움직여지지 않는다. 눈꺼풀도 입술도 꿈쩍하지 않는다. 빠르게 뛰던 심장은 점차 느려지다가 멈춰 버린다.


내가 거의 매일 꾸는 꿈의 내용이다. 나는 근육이 굳어 가는 불치병을 앓는다. 어릴 때는 걸을 수 있었지만 점점 몸이 굳은 탓에 휠체어를 타게 되었다. 하반신이 굳은 다음엔 왼쪽 팔이 마비되었다. 이제 움직일 수 있는 건 얼굴과 오른팔이 전부다.

 

언제 심장이 굳어 버릴지 알 수 없다는 두려움 때문일까. 밤마다 움직이지 않는 몸에 갇히는 악몽을 꾸었다. 도와 달라고 아버지를 부르지만 입술은 떨어지지 않고 소리도 나오지 않는다. 그러다 잠에서 깨면 무사히 밤을 넘겼다는 안도감과, 오늘도 두려움에 떨며 하루를 살아야 한다는 절망이 동시에 밀려왔다.


하반신이 마비될 무렵, 어머니는 집을 나가서 연락을 끊었다. 그때부터 누나가 나를 돌봐 주었다. 아버지가 나를 휠체어에 태워 거실로 옮기면 누나는 준비해 둔 수건으로 내 얼굴과 손발을 닦고, 밥을 먹여 준다. 엄마 역할까지 하느라 늘 수척한 누나 때문에 마음이 아팠다.


어느 날 오랫동안 교제한 누나의 남자 친구가 집으로 찾아왔다. 아버지 앞에 무릎 꿇고 누나와의 결혼을 허락해 달라고 했을 때, 아버지와 나는 무척 기뻤다. 두 사람 다 적지 않은 나이이기에 결혼은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결혼식 날이 코앞으로 다가오자 자꾸 결혼식에 가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돈어른과 일가친척, 하객들이 모인 곳에 누나의 동생으로 나타나는 게 미안했다. 그날만큼은 누나가 나라는 존재를 잊고 활짝 웃으며 행복하길 바랐다.

 

결혼식 당일, 정신없이 바쁜 아버지에게 장애인 전용 택시를 타고 혼자 식장에 가겠다고 말했다. 그러곤 몰래 공원으로 향했다. 그곳에서 딱히 할 일이 없어 전동 휠체어를 앞으로 당겼다 뒤로 밀었다 했다. 그런데 저 멀리서 아버지가 뛰어오는 게 아닌가. 내가 결혼식장에 오지 않자 택시 회사에 전화를 걸어 내린 곳을 확인한 것이다.

 

나를 발견한 아버지는 굵은 눈물을 흘렸다. 이야기는 나중에 하고, 일단 결혼식장으로 가자고 했다. 누나는 나 없이 결혼식을 올리지 않겠다며 버티는 중이었다. 다음 예식이 예정되어 있어 마냥 기다릴 수 없다고 해도 눈물을 흘리며 요지부동이라고. 사연을 들은 하객들 중 일부도 떠나지 않고 나를 기다린다고 했다.

 

누나는 원래 식을 올리기로 한 화려한 홀이 아니라, 공사 때문에 잠시 닫아 둔 어수선한 홀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눈물에 화장이 번져 엉망인 얼굴로. 내가 도착하자 끝까지 자리를 지킨 하객들이 박수를 치기 시작했다.

 

그렇게 세상에 단 하나뿐인 결혼식이 열렸다. 주례 선생님이 가 버린 바람에 누나와 매형은 서로에게 쓴 편지로 결혼 서약을 대신했다. 결혼식이 끝나고 누나가 내 목을 끌어안으며 말했다.


“세상에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은 없어. 너와 같이 흔들리며 꽃을 피우고 열매 맺는 삶을 사는 것이 누나와 아버지 인생의 가장 큰 자랑이고 보람이야.”


그제야 내가 얼마나 어리석은 짓을 했는지 깨달았다. 누나의 말은 내 존재 자체가 도전이고, 살아 내는 매 순간이 값진 열매임을 알게 해 주었다. 언제 멈출지 모르는 심장 대신 내가 내 삶의 주인이 되기로 했다.

 

누나는 행복한 신혼 생활을 한다. 나는 아버지와 활동 보조사의 도움으로 하루하루를 살고 있다. 앞으로도 흔들리며 꽃을 피우고, 열매 맺는 인생을 살 것이다.

 

서현준 님 | 충남 논산시

 

 


고객문의

  • 정기구독02 - 337 - 0332
  • 다량문의02 - 330 - 03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