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생각

장바구니0

이달의 좋은생각

[오늘의 만남] 민낯으로

새해가 되면 나는 엄마와 민낯으로 셀프 카메라를 찍는다. 반드시 민낯이어야 한다. 나이 들면 자기 얼굴에 책임져야 한다더니 정말 그렇다. 이쁘고 안 이쁘고의 문제가 아니다. 모든 건 섬세한 피부 결을 타고 흐르는 얼굴형과 미소의 모양, 길거나 처지거나 각진 눈 모양이 말해 준다. 내가 일 년을 어떻게 살았는지.

 

그리고 우리 엄마의 얼굴. 아, 엄마 얼굴이 이렇게 생겼구나.볼 때마다 달라진다. 그냥 얼굴을 들여다보는 것과 달리 셀카는 보이지 않던 것들을 보게 만든다. 한번은 엄마에게 왜 그렇게 찡그리느냐고 물으니 난시가 심해져서 눈을 뜰 수 없다고 했다.

 

그래서 미간부터 눈가 주름이 점점 깊어지는구나, 안경을 바꿔야겠다.사진에서는 눈, 코, 입이 더 자세하게 보인다. 나는 새해가 되면 화장품을 한 아름 싸 준다. 엄마는 김치랑 반찬거리를, 딸은 화장품이랑 옷가지를 챙긴다. 여든이 된 엄마에게 맞는 클렌징 제품부터 보습제, 샴푸까지. 립스틱 하나만 다오.해서 분홍, 빨간빛 도는 걸로 하나씩 골라 주었다. 

 

맨얼굴에 바르고 좋아하는 모습에 촉촉 쿠션도 몇 개 가방에 넣었다. 선크림을 안 발랐다는 엄마에게 성분을 설명하면서 종류별로 챙겨 주고 꼭 바르라고 잔소리도 엄청 했다. 헤어지기 전 엄마의 뜬금없는 고백(?). 나 네 유튜브 매일 틀어 놓고 잔다.내가 운영하는 화장품 전문 유튜브 채널 디렉터 파이를 두고 하는 말이었다. 

 

왜? 무슨 말인지 어려울 텐데.” “그냥 너 보려고. 네 목소리 들어야 잠이 와. 거기선 늘 웃고 있으니까.쑥스러워서 피식 웃고 뒤돌아 나왔다. 엄마와 머리도 안 빗고 툭 찍은 사진 하나로 우리의 시간을 다시 본다.

 

그래, 나보다 나를 더 사랑해 주는 사람이 있었지. 그런데 왜 애먼 곳에서 찾으려고 애썼을까. 매해 찍은 엄마와 나의 셀카를 찾아보았다. 엄마의 얼굴이 내게 있었다. 쉰이 되고 주름은 늘었지만 나는 지금이 가장 예쁘다.

 

남의 시선이 아닌 있는 그대로의 내 얼굴과 엄마의 얼굴을 좋아하게 되었다. 엄마와 함께한 짧은 시간 덕에 나이 드는 것을 좀 더 좋아할 수 있을듯하다.

 

피현정 님 | 뷰티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고객문의

  • 정기구독02 - 337 - 0332
  • 다량문의02 - 330 - 03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