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생각 카테고리

[오늘의 만남] 민낯으로
2020.01.02   조회수 : 272    댓글 : 1개

새해가 되면 나는 엄마와 민낯으로 셀프 카메라를 찍는다. 반드시 민낯이어야 한다. 나이 들면 자기 얼굴에 책임져야 한다더니 정말 그렇다. 이쁘고 안 이쁘고의 문제가 아니다. 모든 건 섬세한 피부 결을 타고 흐르는 얼굴형과 미소의 모양, 길거나 처지거나 각진 눈 모양이 말해 준다. 내가 일 년을 어떻게 살았는지.

 

그리고 우리 엄마의 얼굴. 아, 엄마 얼굴이 이렇게 생겼구나.볼 때마다 달라진다. 그냥 얼굴을 들여다보는 것과 달리 셀카는 보이지 않던 것들을 보게 만든다. 한번은 엄마에게 왜 그렇게 찡그리느냐고 물으니 난시가 심해져서 눈을 뜰 수 없다고 했다.

 

그래서 미간부터 눈가 주름이 점점 깊어지는구나, 안경을 바꿔야겠다.사진에서는 눈, 코, 입이 더 자세하게 보인다. 나는 새해가 되면 화장품을 한 아름 싸 준다. 엄마는 김치랑 반찬거리를, 딸은 화장품이랑 옷가지를 챙긴다. 여든이 된 엄마에게 맞는 클렌징 제품부터 보습제, 샴푸까지. 립스틱 하나만 다오.해서 분홍, 빨간빛 도는 걸로 하나씩 골라 주었다. 

 

맨얼굴에 바르고 좋아하는 모습에 촉촉 쿠션도 몇 개 가방에 넣었다. 선크림을 안 발랐다는 엄마에게 성분을 설명하면서 종류별로 챙겨 주고 꼭 바르라고 잔소리도 엄청 했다. 헤어지기 전 엄마의 뜬금없는 고백(?). 나 네 유튜브 매일 틀어 놓고 잔다.내가 운영하는 화장품 전문 유튜브 채널 디렉터 파이를 두고 하는 말이었다. 

 

왜? 무슨 말인지 어려울 텐데.” “그냥 너 보려고. 네 목소리 들어야 잠이 와. 거기선 늘 웃고 있으니까.쑥스러워서 피식 웃고 뒤돌아 나왔다. 엄마와 머리도 안 빗고 툭 찍은 사진 하나로 우리의 시간을 다시 본다.

 

그래, 나보다 나를 더 사랑해 주는 사람이 있었지. 그런데 왜 애먼 곳에서 찾으려고 애썼을까. 매해 찍은 엄마와 나의 셀카를 찾아보았다. 엄마의 얼굴이 내게 있었다. 쉰이 되고 주름은 늘었지만 나는 지금이 가장 예쁘다.

 

남의 시선이 아닌 있는 그대로의 내 얼굴과 엄마의 얼굴을 좋아하게 되었다. 엄마와 함께한 짧은 시간 덕에 나이 드는 것을 좀 더 좋아할 수 있을듯하다.

 

피현정 님 | 뷰티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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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1)

심이덕이
2020.0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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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동이네요~~
저도 딸들과 맨언굴로 사진을 찍어놓아야 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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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좋은생각
[특집]결혼 선물
2020.01.02   조회수 : 295    댓글 : 0개
하필이면 결혼식 날 아침부터 소낙비가 내렸다. 친구들로부터 쉴 새 없이 전화가 걸려 왔다. 결혼식에 늦는다는 전화부터 급한 일이 생겨서 못 온다는 연락까지. 그 와중에 반가운 소식도 있었다. 불과 며칠 전까지만 해도 못 올 것 같다던 단짝 진숙이가식장 근처라고 연락한 것이다.전남 고흥에서 서울까지는 기차를 타도 다섯 시간이 넘게 걸렸다. 예식 시간에 맞추기 위해 새벽 첫차를 탔을 터다. 진숙이의 헤실헤실한 웃음을 떠올리니 옛일이 주마등처럼 스쳤다.초등학교 육 학년 때의 일이다. 같은 반 친구 생일 파티에 갔다가 평소 사이가 좋지않던 친구와 말싸움이 났다. 생일을 맞은 친구를 비롯해 대여섯 명이 그 아이 편을 드는 바람에 나는 졸지에 외톨이가 되고 말았다. 분하고 창피한 마음에 먼저 가 보겠다며 뛰쳐나왔다. 생일 파티를 시작하기 전이어서 배는 고픈 데다 밖에는 비가 주룩주룩 내리고 있었다.그때 어렴풋이 내 이름을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돌아보니 진숙이였다. 왜 나왔냐고 묻자 진숙이는 배시시 웃으며 말했다.“네 잘못도 아닌데 애들이 너한테만 뭐라고 하잖아! 그리고 여럿이 한 명한테 그러는 건 잘못된 거야.”아이들 눈치 싸움에 아무 계산 없이 순수하게 손을 내밀어 준 진숙이가 고마웠다.진숙이 손에도 우산은 없었다. 우리는 기왕 젖은 김에 버스를 타는 대신 집까지 걸어가기로 했다. 빗물 머금은 들판을 지나 축축해진 언덕을 넘었다. 어쩐 일인지 마음만큼은 뽀송뽀송했다. 비 오는 날 함께 걸을 누군가가 있다는 사실이 큰 위로가 됐다.그날 이후 진숙이와 나는 단짝이 되었다. 중학생 때도, 고등학생 때도 같은 방향을 보며 함께 걸었다.나는 서울에서 대학 생활을 했다. 집안 형편이 어려운 진숙이는 인근 소도시에 있는 회사에 취업했다. 처음으로 떨어져서 각자의 길을 걸었다. 우리는 한 달에 두어 번시간을 내서 만났다.내가 취업한 지 얼마 안 됐을 때, 진숙이는 전남 고흥으로 시집을 갔다. 농사짓는남편과 함께 시어머니를 모시고 산다고 했다. 나는 진숙이를 위해 몇 달 동안 모은 적금을 깨서 제주도로 신혼여행을 보내 주었다.진숙이는 아이 셋을 낳고, 나는 계속 서울에서 직장 생활 하느라 얼굴 보는 일이 점점 줄어들었다.거리도 워낙 멀거니와 아이들까지 있으니 전처럼 보고 싶을 때 바로만나기가 쉽지 않았다. 그저 전화 통화로 서로 안부를 묻고 시시콜콜한 일상 얘기를꺼내 놓는 수밖에 없었다. 어느 순간 사는 방식도, 관심사도 다르다는 게 피부로 느껴졌다.진숙이가 그 언젠가처럼 배시시 웃으며 신부 대기실 문을 열고 들어왔다. “해 줄 게이것밖에 없어, 미안해.”라면서 종이 가방을 수줍게 건넸다. 직접 농사지어 짜낸 들기름 두 병이었다. 삶에 쫓겨 자주 만나지 못했는데도 친구는 자신의 가장 소중한 것으로 내 결혼을 축하해 주었다.“그런 말이 어디 있어. 네가 와 준 것보다 더 좋은 결혼 선물이 어디 있다고.”우리는 오랜만에 한자리에 섰다. 친구라고 늘 같은 방향으로 걸을 필요는 없을 것이다. 가끔씩 오늘처럼 비 오는 날 만나 잠시라도 함께 한곳을 바라보면 되지 않을까.신부 대기실에 고소한 들기름 향이 은은하게 퍼졌다. p.p1 {margin: 0.0px 0.0px 0.0px 0.0px; font: 10.0px Helvetica} p.p2 {margin: 0.0px 0.0px 0.0px 0.0px; font: 8.0px Helvetica} span.s1 {font: 10.0px Times} 김경진 님 | 경기도 동두천시
이달의 좋은생각
[햇살마루]풀 짐을 진 아버지
2020.01.02   조회수 : 309    댓글 : 0개
며칠 전에 시골집에 다녀왔다. 아버지의 생신을 맞아 가족이 한자리에모였다. 아버지는 1939년생이다. 연로하지만 평생 농사일을 하여 몸은 단단하다. 시력이 많이 떨어져 여기저기 다니는 데에는 불편이 있다.나도 어느덧 중년이, 둘째 아이가 성년이 되고 보니 아버지가 지금 내 나이 즈음했을 때의 일이 더러 생각난다. 최근에 우연하게도 내 대학교 입학식 사진에서 아버지를 발견하고 다소놀랐다. 사진 속 아버지는 새 양복을 차려입고 갈색 구두를 신고 가르마를탔는데 그 풍채가 무척 당당하고 꼿꼿했다. 마치 둘레가 큰 나무처럼, 바위처럼, 전방을 주시하면서. 등이 구부정하고 혈색이 좋지 않은 나와는 딴판이었다.그도 그럴 것이 아버지는늘 지게를 졌다. 나는 아버지가 저녁무렵에 풀 짐을 지고 집으로 돌아오는 풍경을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하고있다. “아버지는 풀 짐을 지고 오시네/암소는 풀 짐 진 아버지보다 앞서 집으로 돌아오네/ 아버지는 암소에게물을 먹이고/ 아버지는 암소에게 풀을 먹이네/ 암소의 워낭 소리가 잔잔하게 들려오네/ 초저녁의 물결 위로 흘러오네/ 아버지의 어둑어둑한 하늘속으로 들어가네.” 내가 쓴 시 <아버지와 암소>다. 소를 앞세워 집으로 돌아오면 아버지는소에게 물을 먹이고, 베어 온 풀을 먹였다. 물을 마시고 풀을 먹는 소의 턱밑으로 늘어진 방울이 잘그랑거리는 소리가 참으로 평화스럽게 들렸다. 세상에 그처럼 평온한 소리도 없을 것이라는 생각을 할 정도였다. 시골 동네 사람들이 아버지를 두고 말하길 법 없이도 살 양반이라고 한다. 내가 봐도 아버지에겐 법이 필요하지 않겠다 싶다. 거짓말할 줄 모르고, 남을 속일 줄도 모르고, 돈을 빌릴 줄도 모르고, 신세를 끼치는 일을하지 않으니 구태여 무슨 법이 필요하겠는가. 어미 소로부터 갓 태어나는 송아지를 받아 낸 분이니 생명을 해치는 일도 할 줄 모른다. 집에서 기른 병아리나 토끼가 죽은 날에 내가 울고 있으면 아버지는 나를 데리고 산기슭으로 가서 그것들을 나무 아래에 묻어 주었다. 자전거 뒤에 나를 태워 이십 리 떨어진 김천 시장에 가서 하얀 토끼를 사 준 분도 아버지였다.말은 없었으나 내게 깊은 신뢰를 보여 주었다.아버지를 생각하면 내가 아버지로서 하고 있는 일을 돌아보게 된다. 나는 모자란 게 너무 많다.어쨌든 이제 아버지는 나이가 들었고, 잠이 많아졌다. 틈만 나면 모로 p.p1 {margin: 0.0px 0.0px 0.0px 0.0px; font: 10.0px Helvetica} p.p2 {margin: 0.0px 0.0px 0.0px 0.0px; font: 9.0px Times} span.s1 {font: 10.0px Times} 누워 눈을 붙이고 잠에 빠져든다. 나에 대해 궁금한 게 많을 텐데 그 궁금증도 잠시 밀쳐 두고서. “아버지는 잠이 많아지네/ 시든 풀 같은 잠을 덮네/ 아버지는 일만 가지의 일을 했지/ 그래서 많고 많아라, 아버지를 잠들게 하는 것은/ 누운 아버지는 늙은 오이 같네/ 아버지는 연고를 바르고 또 잠이 들었네/ 늙은 아버지는 목침 하나를 덩그러니 놓아두고/ 잠 속으로 아주 갈지도 몰라/ 아버지는 세상을 위해 일만 가지의 일을 했지/ 그럼, 그렇고 말고!/ 아버지는 느티나무 그늘이 늙을 때까지 잠잘 만하지.” 아버지를 바라보면서 쓴 시 <아버지의 잠>이다. 자꾸 잠이 많아지는 걸보면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겨울날 새벽이면 잠자는 가족을 위해 아궁이에 장작을 더 때고, 농사철새벽이면 들에 가 일을 하고서야 아침을 먹은 아버지였다. 동네에 소도둑이 들었을 때 밤새 소를 지키고, 장마가 들면 밤을 새워 논의 물고랑을 살폈다. 한시라도 집에 들어앉아 있지 않던 아버지였다.농사일이 없는 겨울철에는 산에 가서 나무를 해서 팔거나, 막노동을 하러 공사판에 나갔다.약국조차 다닌 적 없는 아버지가 입원한 일은 가족 모두에게 충격을 줄 정도였다. 이제 아버지는 기운이 훨씬 더 떨어졌다. 하루하루가 다르다.쟁기를 지고 들일을 하러 가는 아버지는 옛 기억 속에만 있다. 둘레가큰 나무처럼, 바위처럼 당당하게 꼿꼿하게 서 있던 아버지는 어디로 간 것일까. 풀 짐을 가득 진 내 아버지는 어디로 간 것일까.문태준 님 | 시인 p.p1 {margin: 0.0px 0.0px 0.0px 0.0px; font: 10.0px Helvetica} span.s1 {font: 10.0px Times}
이달의 좋은생각
[오늘의 만남] 엉뚱 공작소
2019.12.06   조회수 : 636    댓글 : 1개
“윙.” 수업이 끝난 시간이지만 교내는 학생들의 드릴 소리로 가득하다.책걸상 대신 작업대가 있고, 교실 뒤편에는 공구가 다양하게 걸렸다. 수납장엔 목재와 전선이 들었다. 여느 목공소 부럽지 않다.사실 이곳은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사용하지 않는 실과실이었다. 교사들은 남는 교실을 어떻게 활용하면 좋을지 학생들에게 물었다. 학생들은 이공간을 직접 바꾸어 보겠다며 여러 의견을 냈다. 회의와 토론을 거친 끝에필요한 물건을 손수 만드는 목공실로 탈바꿈하기로 했다.공사 역시 학생들 손을 거쳤다. 꼬박 일 년이 걸렸다. 이름은 엉뚱 공작소. 엉뚱한 생각에날개를 달아 주고자 붙인 이름이다. 담당 선생님이 조명 회사 이벤트에 응모하여 LED(엘이디) 조명을 협찬받기도 했다. 전구를 교체하고 레일 등을달았더니 제법 분위기가 났다.지난가을, 공작소의 첫 활동이 시작되었다. 사 층 연결 통로에 있는 장식장과 게시판을 철거했다. 그런 다음 벽에 나무판자를 대고 책상과 의자를만들었다. 아늑한 간이 쉼터가 탄생했다. 여기서 방과 후 학교를 기다리는학생들이 책을 읽거나 보드게임을 한다.아이들은 선생님과 벽화를 그리고 탁자와 의자를 조립해 다목적실을만들기도 했다. 고학년 학생들이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숙제도 하고,영화도 보는 공간이다. 쓰레기통, 의자는 물론 간이 무대에 필요한 물건도직접 만들었다.지난해에는 쉼터마다 평상을 제작했다. 선생님들에게도필요한 물건을 주문받았다.“선생님, 졸업하기 싫어요. 중학교엔 공작소가 없잖아요.”“중학교, 고등학교에도 우리 학교처럼 공작소가 있으면 좋겠어요.”졸업을 앞둔 6학년 학생의 귀여운 투정에 웃음이 났다.“교장 선생님, 이 층 쉼터 앞 화장실 실내화 보관함을 이렇게 만들면 어떨까요?”작은 머리핀부터 화분 받침대, 조명 기구, 가구 등 무엇이든 척척 만드는엉뚱 공작소에서 아이들은 꿈과 행복을 키워 간다.유혜경 님 | 광주 마지초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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