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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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좋은생각

[좋은님 에세이] 브이아이피 손님

고향을 떠나 대전에서 자취한 대학생 시절어머니에게서 전화가 왔다. “네 생일마다 케이크 가져온 614호 할머니 기억나지동생분이랑 연락이 닿았는데 요즘 대전에 계시다네한번 가 볼래?”

 

어릴 적 나는 610호에 사는 외동딸이었다어머니가 늦게 오는 날이면 614호 할머니 집으로 갔다할머니는 결혼도 하지 않고 혼자 살았다아마 할머니에겐 내가 브이아이피(VIP) 손님이었던 듯하다할머니는 내 생일이면 케이크를 손수 만들어 왔다어머니는 보답으로 명절마다 선물을 건넸다어머니가 미용실을 개업해 이사 가면서 할머니와 헤어졌다.

 

여기가 심세영네 맞습니까?” 그해 내 생일날할머니가 미용실로 찾아왔다. “어떻게 찾아오셨어요바쁘게 이사 와서 연락도 못 드렸네요.” 어머니가 환히 웃으며 할머니 손을 꼭 잡았다. “심세영 씨 생일이라 물어서 왔습니다불편하게 해 드린 것은 아닌지…….” 할머니는 나에게 늘 높임말을 썼다나는 할머니를 꼭 안아 주었다할머니는 빵집 케이크를 건네며 말했다.

 

직접 만든 것보다 사는 게 더 맛있어서요.” 우리는 웃으며 할머니에게 괜찮다고 했다할머니는 짧은 안부만 묻고 돌아갔다이후 할머니를 보지 못했다·고등학교를 다니며 가슴으로만 할머니를 기억할 뿐바쁜 입시 생활에 연락도 못했다온 가족이 할머니가 있다는 노인 병원으로 갔다검게 염색하던 머리가 하얗게 된 것을 빼면 기억 속 할머니와 똑같았다.

 

내 손을 꼭 잡고 이야기 나누던 할머니는 한결같이 높임말로 물었다. “한번 안아 봐도 되겠습니까?”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할머니를 안았다할머니에게 나는 여전히 브이아이피였다.

 

할머니는 나에게 이웃의 정을 가르쳐 주었다내 가슴을 따뜻하게 해 준 할머니를 평생 잊지 못할 것이다쑥스러워 못한 말을 다시 만나면 전하고 싶다. “할머니고맙습니다.”

 

심세영 님 | 대구시 서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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