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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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좋은생각

[오늘의 만남] 나무 아래서

우리 집 앞 텃밭에는 단감나무가 한 그루 있다해가 갈수록 나무가 자라 밭에 드리우는 그늘이 점점 넓어졌다빈틈없이 땅을 쓸 욕심에 그늘진 데까지 이것저것 심어 봤지만 번번이 수확에 실패했다나무 그늘 아래에서 놀기 좋아하는 우리 집 세 아이가 수시로 밭을 밟고 땅을 파헤치기 때문이다

 

몇 번 주의를 주고 야단쳐도 그때뿐놀다 보면 어느새 또 그곳을 밟는다. “너희 너무하는 거 아니야박하가 다 밟혀서 남아나질 않잖아조심하라고!” “엄마우리도 땅이 필요해마음대로 놀 수 있는 땅 좀 줘.” 듣고 보니 맞는 말이었다어차피 그늘진 자리라 심을 것도 마땅치 않았다아이들에게 주어도 나쁘지 않을 듯싶었다.

 

단감나무를 기준으로 다섯 발자국 정도의 땅을 아이들에게 맡겼다기대가 있다면 그 자리만 파헤치고 다른 밭은 건드리지 말기를 바라는 정도였다아이들은 자기들만의 밭을 만든다며 바쁘게 움직였다.이윽고 단감나무 아래 빈 땅이 몰라보게 아름다워졌다

 

나로서는 상상해 본 적 없는 다채로운 모습이었다작은 대야와 빈 통을 이용해 연못을 만들고 그 안에 올챙이와 다슬기를 잡아다 키우는가 하면산에서 캐 온 화살나무도 번듯하게 옮겨심기했다.언젠가는 달팽이를 키운다며 나무둥치 옆으로 뽕나무 카펫을 깔아 달팽이 여러 마리를 데려오기도 하고나뭇가지에 굵은 칡넝쿨을 매어 그네까지 타고 놀았다.

 

최근 가장 신선했던 건 나무 아래 도서관이다그늘이 깊은 명당에 나무 의자를 가져다 놓고 골판지로 멋들어진 간판까지 만들어 매달았다의자 옆엔 도서관 관장인 큰아이가 가장 좋아하는 책 세 권을 엄선해 진열했다글자를 못 읽는 이용자를 위해 책 읽어 주는 시간도 마련했단다대나무로 만든 종을 흔드는 소리가 그 시간을 알리는 신호라고한데 나무 아래 도서관은 단 하루 만에 문을 닫고 말았다.관장이 아끼는 책에 새들이 똥칠을 해 놓은 것이다큰아이는 물티슈로 책 구석구석에 묻은 새똥을 닦아 내며 아무래도 나무 아래 도서관은 좋은 생각이 아니었다고 한탄했다

 

이제 그곳엔 어떤 모습이 펼쳐질까지켜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정청라 님 농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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