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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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좋은생각

[특집] 조용한 생일

선생님지금 가까운 종합 병원으로 가셔야겠습니다간 수치가 이천을 넘었습니다.”

 

가벼운 마음으로 검사했던 터라 전화로 알려 온 결과는 그야말로 청천벽력이었다이천이라는 숫자의 의미도 몰랐다나중에 알아보니 정상 수치는 사십 이하라고 했다입원 사흘째에 간 이식 얘기가 나왔다의사는 자식들을 불러 검사하자고 재촉했다이런 날벼락이 있나이식하지 않는 길이 있을까 하고 서울의 한 병원으로 옮겼다.

 

그곳에서 천사 같은 의사를 만났다그는 잔뜩 긴장한 내 손을 가만히 잡으며 시간이 걸리겠지만 한번 해 보자고 말했다회진 때마다 손을 잡아 주며 밥 많이 먹고 운동 열심히 하라고만 했다혈액 검사 결과를 물으면 수치의 오르내림에 일희일비하지 말고 체력 관리하며 기다리자고 격려했다따뜻한 말과 스킨십의 힘이 이렇게 큰 줄 몰랐다보름이 지나도록 차도가 없었다황달 수치가 꿈쩍도 않는 모양이었다발이 부어 넉넉하던 슬리퍼를 신을 수 없게 되고하루가 다르게 온 몸이 노래졌다.

 

드디어 의사 입에서 이식 얘기가 나왔다그동안 정리한 내 생각을 말했다한 달만 있으면 만 칠십이 된다사회적으로 가정적으로 그리고 개인적으로 자식의 간까지 받아 더 살아야 할 이유가 없다내과 치료가 불가능해지면 말해 달라그동안 과분한 진료를 받았다미련 없이 고향으로 내려가겠다의사는 선선히 수긍하며 장기 기증을 기다려 보자고 했다의미 없는 위로였다주위에 간 기증을 신청한 지 오래된 환우가 여럿 있었다탁 놓아 버리고 나니 오히려 마음이 편안했다덜 고생하다 가면 좋겠다는 바람뿐이었다.

 

2016년 8월 8간호사가 난데없이 금식을 통보했다어쩌면 오늘 수술이 있을지 모른다면서나와 아내는 어안이 벙벙했다부랴부랴 검사 몇 가지를 받고제모도 했다연유도 모른 채 얼결에 수술실로 실려 갔다눈을 떴을 때는 새벽이었다회복실중환자실무균실을 거쳐 일반실로 옮겨졌다그리고 한 달이 채 되지 않아 퇴원했다나중에 들은 바는 본디 내게 온 간이 아니었는데 이식받을 이의 체력에 문제가 있어 내가 수혜자가 됐단다누가 주었는지 또 누가 받지 못했는지 알 길이 없었다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생명의 은인이다주치의를 비롯한 병원 의료진 또한 생과 사의 갈림길에 선 나를 돌려세워 주었다다시 태어난 것이다그래서 8월 8일은 제2의 생일이 되었다첫 번째 생일을 한 달 정도 앞둔 날이다

 

2의 생일은 조용하다미역국도 케이크도 요란한 박수도 없다나 혼자 기억하기 때문이다나는 그날 그들을 생각한다기증한 이와 넘겨준 이 그리고 따뜻한 의료진을적어도 그들에게 누가 되는 삶은 살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한다그 병동에는 나보다 더 절실한 이가 많았고난 그런 행운을 받을 만큼 잘 살아오지 못했음을 상기한다나로 하여 주위가 얼마나 밝아지고몇 사람이 더 따뜻해졌는지 조용히 되돌아본다.

 

김영국 님 부산시 수영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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