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생각 카테고리

좋은생각 7월호를 소개합니다
2019.06.07   조회수 : 2,907    댓글 : 0개

 그때 알았다.

한 사람의 이해, 한 사람의 사랑,

한 사람의 위로가

때론 세상 전부의 지지와 같은 것이라고.”

 

소설가 조우리 님이 좋은생각7월 호에

풀어놓은 이야기처럼,

좋은생각도 그 하나의 책이 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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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좋은생각
[나의 글쓰기] 중년 백수, <열하일기>를 만나다
2020.01.31   조회수 : 454    댓글 : 1개
2020년이라니, 어릴 적 공상 과학 영화에서나 종종 접한 해다. ‘과연 그런 시대가 오기나 할까. 그 전에 지구가 멸망하지 않을까.’ 싶었는데 이렇게 멀쩡하게 살아서 심드렁하게 올해를 보내고 있다. 살 만큼 살았다는 뜻이리라.특별한 감회는 없지만 살아온 날 대부분을 책과 함께 보냈다는 사실은 놀랍고 신기하다. 내 인생은 읽기와 쓰기 그리고 말하기로 가득하다.동서양의 고전에서는 하나같이 이런 삶이야말로 지복(至福, 더없는 행복)이라고 말한다. 맞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보다 좋은 삶은 상상하기 어렵다. 나는 대체 어떻게 이런 복을 누리게 되었을까?결정적인 변곡점이 있었다. 삼십 대 중반에 박사 학위를 받고 취업하려 분투했다. 마흔 즈음 결국 교수가 되기를 포기하고 제도권 밖에서 살아가기로 작정했다. 백수가 된 것이다. 먹고살기도 막막했지만 그보다 답답한 건 네트워크가 없다는 사실이었다. 공부를 어떻게 혼자 한단 말인가. 그래서 시작한 것이 지식인 공동체다. ‘수유+너머’를 거쳐 현재는 ‘감이당’이 나의 현장이다.2002년 느닷없는 인연으로 잡지를 만들게 되었다. 나에게 창간호 특집 《열하일기》가 할당되었다. 이전까지만 해도 《열하일기》와 인연이 없었다. 무슨 기대나 감흥이 있을 리 만무했다. 순전히 의무감으로 읽기 시작했다.처음엔 솔직히 그저 그랬다. 하지만 글을 써야 하니 두 번, 세 번 읽을 수밖에.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스펀지에 물 스며들 듯이 점점 빠져들었다.《열하일기》는 천하의 명문장으로 쓰였지만 그렇다고 ‘스펙터클’ 한 여행기는 아니다. 매력이 뭐냐고 묻는다면 글쎄다, 전체적으로 그 리듬과 울림이 감응을 일으킨다고 해야 하나. 분명 이전에 읽은 어떤 책과도 달랐다. 책과 사상, 문체와 수사학에 대한 나의 전제를 송두리째 무너뜨렸다.얼마 후 한 출판사에서 기획한 ‘고전 리라이팅(다시 쓰기) 시리즈’에 합류하면서 《열하일기》와의 인연이 이어졌다. 타이밍이 절묘했다. 이쯤 되면 운명이라고 해도 좋으리라. 읽고 또 읽으면서 누구를만나든 《열하일기》에 대해 떠들어 댔다.그때 온몸으로 실감했다. 세상의 모든 이야기와 천지 만물이 《열하일기》로 통할 수 있음을. 그해 겨울 원고를 완성했고, 그것이 《열하일기, 웃음과 역설의 유쾌한 시공간》이라는 제목으로 세상에 나왔다.이 책은 내 인생을 180도 바꾸었다. 일단 역마살이 심하게 들었다. 《열하일기》 속 여정을 수없이 왕래했을 뿐 아니라, 이 책으로 얻은 명성(?) 덕분에 미국 코넬 대학에서 한 학기 동안 초빙 교수로 지내는 일까지 벌어졌다. 마흔이 되도록 비행기를 타 보지 않은 나에게는 그야말로 기적 같은 일이었다.더 중요한 것은 그때 이후 비로소 내 인생의 지평선을 확보하게 되었다는 점이다. 이전에는 전문가로서 고전 문헌을 연구했다면, 이제는 삶을 위한 글쓰기로 방향을 바꾸었다. 그때부터 나는 ‘고전 평론가’라는 소명을 스스로에게 부여했다. 고전 평론이란 고전의 지혜를 현대인의 삶과 대각선으로 연결하는 작업이다. 고전은 내 인식의 토대이자 일상의 현장이면서 밥벌이의 원천이 되었다.이후 《임꺽정》, 《동의보감》, 《서유기》도 만났다. 중년 백수에서 고전 평론가로 인생 역전한 셈이다. 또 책 이십여 권을 냈다. 그 책들이 나를 더 넓은 세상으로 나아가게 하고, 수많은 벗을 만나게 해 주었다. 그 복을 많은 이와 나누기 위해 지난해 글쓰기에 대한 책까지 출간했다.이 모든 것의 출발에 연암 박지원의 《열하일기》가 있다. 연암이 열하로 가는 대장정에 동참한 해가 바로 경자년(1780년)이다. 내가 태어난 해 역시 경자년(1960년)이다. 경자년에 태어나 경자년(2020년)을 맞이했으니, 바야흐로 육십갑자를 한 바퀴 돈 셈이다.그래서? 서두에서 말했듯이 그것 자체는 별 의미 없다. 하지만 연암과의 특별한 인연을 환기해 준다는 것만으로도 2020년은 충분히 설렌다.“땡스, 연암!”고미숙 님 | 고전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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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둘째의 질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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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좋은생각
[오늘의 만남] 혼자가 아니다
2020.01.31   조회수 : 380    댓글 : 0개
우리 지역에는 일인 가구가 많다. 이들은 일상생활 유지가 녹록지 않아 사회적 관계마저 흔들리는 아픔을 겪고 있다. 이들을 위해 ‘가치 키움 프로그램’의 문을 열었다. ‘같이’라는 가치를 심기 위해 싱글 남성 여섯 명을 초대했다.노년에 가까운 세월을 자신의 생각대로 살아온 그들. ‘서로 말은 나눌까, 자존심을 내세워 다투지는 않을까, 여러 활동에 의욕은 보일까?’ 모임을 거듭할수록 걱정은 기대로 변했다. 경계가 허물어지면서 급속도로 가까워졌다. 일상을 있는 그대로 나누면서 서로를 칭찬하고 위로했으며, 함께 식사하는 자리에서는 웃음이 찬거리가 되었다.모임이 끝날 무렵, 나는 다른 업무로 인해 참가자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식사 자리에서 먼저 일어났다. 내가 떠나고 그간의 관계가 깨질 정도로 심한 다툼이 일어났다는 것을 며칠 뒤에 알았다.남은 시간은 이 주. 나들이를 다녀오면 그다음이 마지막 모임이었다. 역시 개인적인 성향, 폐쇄적인 생활은 나아질 수 없는 걸까? 그래도 설득은 해 봐야지 싶어 한 명씩 찾아갔다. 두 명이 상처를 입었고, 그중 한 명은 회복이 어려워 보였다.결국 그는 나들이 때 나타나지 않았다. 누군가와 함께하는 잠시의 여행은 그들에게 쉽지 않았다. 즐거워야 할 공기가 미지근했다. 이 모임도 이렇게 식어 버리겠구나. 힘이 빠졌다.그런데 말 몇 마디가 나의 의지를 회복시켰다. “박 팀장, 조 형 무슨 일 있다 하던가?” “경치 좋구먼. 조 사장도 바람 쐬면 좋아했을 건데.” “평소 그 형님이 회 얘기를 많이 했는데, 없어서 아쉽네요.”나들이를 마친 후 그에게 이들의 마음을 전달하며 마지막 모임에 꼭 나와 달라고 부탁했다.그는 참석했지만 모임 내내 조용했다.‘온 것만으로도 고마워해야지.’ 실망감을 감추려는데 그가 내 눈을 번쩍 뜨이게 했다.“공 사장, 마음 풉시다. 내가 미안하오.” “아닙니다, 조 사장님. 그런 거 아닙니다.” 둘은 모두가 보는 앞에서 수차례 악수를 나누었다. 함께한 시간이 상처를 아물게 한 듯했다.공식적인 모임은 끝났지만 이들의 이야기는 지금도 계속된다. 이제는 혼자가 아니다.박지택 님 | 반여 종합 사회 복지관 사회 복지사
이달의 좋은생각
[좋은님 에세이] 하나뿐인 결혼식
2020.01.31   조회수 : 415    댓글 : 0개
거실에 있는 아버지가 나를 부른다. 출근 전에 침대에 누워 있는 나를 휠체어에 옮기기 위해서다. 눈을 뜨고 대답해야 하는데 몸이 움직여지지 않는다. 눈꺼풀도 입술도 꿈쩍하지 않는다. 빠르게 뛰던 심장은 점차 느려지다가 멈춰 버린다.내가 거의 매일 꾸는 꿈의 내용이다. 나는 근육이 굳어 가는 불치병을 앓는다. 어릴 때는 걸을 수 있었지만 점점 몸이 굳은 탓에 휠체어를 타게 되었다.하반신이 굳은 다음엔 왼쪽 팔이 마비되었다. 이제 움직일 수 있는 건 얼굴과 오른팔이 전부다.언제 심장이 굳어 버릴지 알 수 없다는 두려움 때문일까. 밤마다 움직이지 않는 몸에 갇히는 악몽을 꾸었다. 도와 달라고 아버지를 부르지만 입술은 떨어지지 않고 소리도 나오지 않는다. 그러다 잠에서 깨면 무사히 밤을 넘겼다는 안도감과, 오늘도 두려움에 떨며 하루를 살아야 한다는 절망이 동시에 밀려왔다.하반신이 마비될 무렵, 어머니는 집을 나가서 연락을 끊었다. 그때부터 누나가 나를 돌봐 주었다.아버지가 나를 휠체어에 태워 거실로 옮기면 누나는 준비해 둔 수건으로 내 얼굴과 손발을 닦고, 밥을 먹여 준다. 엄마 역할까지 하느라 늘 수척한 누나 때문에 마음이 아팠다.어느 날 오랫동안 교제한 누나의 남자 친구가 집으로 찾아왔다. 아버지 앞에 무릎 꿇고 누나와의 결혼을 허락해 달라고 했을 때, 아버지와 나는 무척 기뻤다.두 사람 다 적지 않은 나이이기에 결혼은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결혼식 날이 코앞으로 다가오자 자꾸 결혼식에 가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돈어른과 일가친척, 하객들이 모인 곳에 누나의 동생으로 나타나는 게 미안했다.그날만큼은 누나가 나라는 존재를 잊고 활짝 웃으며 행복하길 바랐다.결혼식 당일, 정신없이 바쁜 아버지에게 장애인 전용 택시를 타고 혼자 식장에 가겠다고 말했다. 그러곤 몰래 공원으로 향했다.그곳에서 딱히 할 일이 없어 전동 휠체어를 앞으로 당겼다 뒤로 밀었다 했다. 그런데 저 멀리서 아버지가 뛰어오는 게 아닌가. 내가 결혼식장에 오지 않자 택시 회사에 전화를 걸어 내린 곳을 확인한 것이다.나를 발견한 아버지는 굵은 눈물을 흘렸다. 이야기는 나중에 하고, 일단 결혼식장으로 가자고 했다.누나는 나 없이 결혼식을 올리지 않겠다며 버티는 중이었다. 다음 예식이 예정되어 있어 마냥 기다릴 수 없다고 해도 눈물을 흘리며 요지부동이라고. 사연을 들은 하객들 중 일부도 떠나지 않고 나를 기다린다고 했다.누나는 원래 식을 올리기로 한 화려한 홀이 아니라, 공사 때문에 잠시 닫아 둔 어수선한 홀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눈물에 화장이 번져 엉망인 얼굴로.내가 도착하자 끝까지 자리를 지킨 하객들이 박수를 치기 시작했다.그렇게 세상에 단 하나뿐인 결혼식이 열렸다. 주례 선생님이 가 버린 바람에 누나와 매형은 서로에게 쓴 편지로 결혼 서약을 대신했다.결혼식이 끝나고 누나가 내 목을 끌어안으며 말했다.“세상에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은 없어. 너와 같이 흔들리며 꽃을 피우고 열매 맺는 삶을 사는 것이 누나와 아버지 인생의 가장 큰 자랑이고 보람이야.”그제야 내가 얼마나 어리석은 짓을 했는지 깨달았다.누나의 말은 내 존재 자체가 도전이고, 살아 내는 매 순간이 값진 열매임을 알게 해 주었다.언제 멈출지 모르는 심장 대신 내가 내 삶의 주인이 되기로 했다.누나는 행복한 신혼 생활을 한다. 나는 아버지와 활동 보조사의 도움으로 하루하루를 살고 있다.앞으로도 흔들리며 꽃을 피우고, 열매 맺는 인생을 살 것이다.서현준 님 | 충남 논산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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