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생각

장바구니0

이달의 좋은생각

[좋은님 에세이] 나물 할머니

아이가 두 돌 무렵 친정 엄마가 입원했다. 엄마 성격이 깐깐하기도 했으나 간병인을 둘 형편도 아니었다. 할 수 없이 내가 오전 열 시부터 오후 여섯 시까지, 미혼인 언니가 저녁부터 다음 날 아침까지 엄마를 돌보기로 했다. 

 

병원은 우리 집에서 한 시간 거리. 아이와 지하철을 타고 오간 지 육 개월 즈음이었다. 아이가 감기 기운이 있는지 오전부터 칭얼댔다. “장모님도 웬만하면 간병인을 쓰시지, 고집도 참. 애도 당신도 고생이잖아.” 남편은 소홀해지는 살림과 육아에 화를 내며 출근했다. 엄마도 미안한지 투정 아닌 투정을 부렸다. “이제 혼자서 움직이는데 귀찮게 자꾸 오고 그려!” “알았어, 내일부터 안 올 테니까 언니한테 병 수발 다 들라고 해!”

 

불편한 마음으로 지하철에 몸을 실었다. 오후의 지하철은 한산했다. 영등포역에서 한 할머니가 짐수레를 끌고 우리 옆자리에 앉았다. “아기가 참 예쁘네, 몇 살이누?” 백발의 고운 할머니는 박꽃처럼 환하게 웃었다. “아……. 이제 두 돌 지났어요.” 엄마 때문에 지친 나는 건성으로 답했다. “근데 뭔 일 있어? 애기 엄마 얼굴이 슬퍼 보이네.” “친정 엄마가 아프셔서 병원에 다녀오는 길이에요.” 참았던 눈물이 그렁그렁 맺혔다.

 

“나는 영등포에서 나물을 팔아. 오늘은 날도 덥고 해서 일찍 파장했어. 돈 안 받을 테니 집에 가서 청양 고추 숭숭 썰어 넣고 된장찌개 끓여 먹어.” 할머니가 건넨 봉지에는 호박과 청양 고추 한 움큼이 들었다. 낡은 수레에 가득한, 팔지 못한 채소들이 눈에 밟혀 한사코 거절했으나 할머니는 막무가내였다.

 

얼마라도 드리려고 고민하는 찰나, 옆에 앉은 아주머니가 말했다. “할머니, 호박잎 맛있어 보이는데 얼마예요? 우리 영감이 좋아하는데 잘됐네.” 그러자 맞은편 아주머니도 얘기했다. “그 청양 고추랑 오이 섞어서 이천 원어치만 주세요.” 그렇게 반짝 장이 섰고 할머니의 채소는 금세 동났다. “내가 오늘 복 있는 애기 엄마 만나서 횡재했네. 참말로 고마워.”

 

그로부터 석 달 후 엄마는 건강히 퇴원했다. 나는 지금도 할머니 말대로 내가 복덩이여서 친정 엄마도 고비를 잘 넘기고, 우리 가족도 화목하게 산다고 믿는다. “할머니, 고맙습니다. 건강히 지내세요.”

 

김택현 님 | 경기도 시흥시



고객문의

  • 정기구독02 - 337 - 0332
  • 다량문의02 - 330 - 03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