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생각 카테고리

[햇살마루] 각자의 산사, 하나의 연등
2018.08.08   조회수 : 1,826    댓글 : 2개

혼자 통영에 간 적이 있다.

게스트 하우스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다음 날엔 언제나 그랬듯 무작정 걸었다. 나는 심각하게 방향 감각이 부족해 모르는 길에선 모든 걸 운에 맡기는 편이다. 그 길이 나를 데려가는 곳의 유의미함 정도는 그저 내 운의 능력이거나 한계인 셈이다. 걷다 보니 산이 나왔고 등산로가 시작됐다. 등산로는 두 갈래로 나뉘었는데 주사위를 던지는 마음으로 나는 오른쪽을 택했다. 삼십 분 정도 산길을 오르니 아주 작은 산사가 나타났다. 약수라도 마실 겸 절 안으로 들어가자 허공에 둥둥 떠 있는 색색의 연등이 보였다. 늦봄의 초파일 무렵 내걸린 뒤 미처 수거 되지 않은 연등들이었을 것이다. 연등에는 가족 건강이나 시험 합격, 사랑과 결혼의 결실 같은 누군가의 염원이 연의 꼬리 같은 종이에 적혀 매달려 있었다. 나는 바람의 방향대로 하늑거리는 그 염원들을 올려다보는 게 좋았다. 

 

대웅전으로 옮겨 가자 중년 여성 두 명이 목탁 소리에 맞춰 절하는 모습이 보였다. 대웅전 바깥에 서서 나는, 절대자 앞에서 가장 낮은 자세로 엎드려 절하는 사람들의 염원에 대해 생각했다. 아마도 다른 누군가를 위한 간절한 마음이 배어 있을 염원…….

 

절을 나와 다시 걸었다. 산길을 내려오면서 불현듯 가슴 한쪽이 아파 왔다. 내 삶이란 게 고작 안온한 실내에서 건너다본 창밖의 풍경에 지나지 않다는 생각 때문이었을 것이다. 소설가로 살며 그 풍경을 최대한 섬세하게 그리고 예의를 갖춘 문장으로 표현하려고 애써 왔지만 어쩌면 그 문장은 본질적으로 표면만을 훑은 가짜 심연인지도 몰랐다. 나의 염원은 연등이 된 적 없었고, 내가 다른 한 사람을 위해 기도한 기억은 너무도 먼 과거에 멈춰 있었다. 나는 다치고 싶지 않았고, 다치지 않기 위해 세상과 사람들에게 거리를 두며 살아왔다는 걸 부정할 수 없었다. 낯선 도시의 작은 산사에서 나는 녹슬었으나 거짓은 없는 거울을 들여다본 셈이다.

 

K(케이)시에 다녀오고 두 계절이 지난 뒤 H(에이치)를 알게 됐다. H는 아침에 일어나서, 그리고 잠들기 전에 내게 안부 메시지를 보내왔다. 무엇을 먹는지, 어디에서 누구를 만나는지 알려 주고 내 끼니를 묻기도 했다. 나는 살아 있다는 것에 대해 자주 생각했고 하루에 한 번 이상은 큰 소리로 웃었다. H에게 편지를 쓰고 싶어졌다. 그 바람이 너무 간절해서 소설을 위한 문장은 도무지 떠올릴 수 없을 정도였다. 이제는 오롯이 H의 것이 된, H만을 위해 쓴 문장은 삭제한 그 편지를 H의 허락을 받아 이 지면에 남긴다.


어느 해 가을엔가

가 본 적 없는 산길을 혼자 걸었습니다. 

 

걷다 보니 작은 산사가 나왔죠.

그토록 작은 산사에도 

물빛 허공엔 연등이 내걸려 있었습니다. 


누군가,

너무도 구체적인 삶을 사는 사람, 

사람들의 염원이 담긴 

해지고 때 탄 연등들 

수없이 물려주고 물려받은 

아기의 배내옷처럼 

생명의 빛 

 

내 몫의 지구가 회전을 하여

하늘과 땅의 위치가 뒤바뀐다면 

연등은 물 위를 떠다니는 

꽃잎처럼 보일까요. 

이 세계의 유일한 실재 

 

내 염원은 한 번도

연등이 되어 보지 못했습니다. 

세상의 표면만을 앓은 대가인 듯 

 

행복인지 불행인지

왜 웃고 우는지 

그런 것을 곰곰이 헤아리지 않고도 

내 몫의 지구는 무탈하게 생활했고 

나는 그 안에서 

내가 감당할 수 있을 만큼만 

물이 되는 하늘에 발을 담그곤 했습니다. 

희생을 각오하는 절박한 염원이란 늘 이기적이었고 


아침과 밤마다 인사를 해 주고

늘 끼니를 묻는 

친구의 현현, 

자주 위아래 구분 없이 굴러다니는 내 방 앞에

도달한 선물 


늘 당신의 행복을 빕니다. 비록

가장 아프게 무너지는 순간이 

길 위에 있더라도 

언젠가는 도달할 

각자의 산사 

하나의 연등


다가올 모든 순간에 대해

낮은 자세로 

나는 당신의 행복을 빕니다. 


조해진 님 |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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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2)

세냥맘
2018.08.10
삭제
좋은글에 감동받았어요. 
미화
2018.09.03
삭제
역시 소설가는 다른가봐여 ^^ 좋은글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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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좋은생각
[오늘의 만남] 이별 후애(後愛)
2018.10.10   조회수 : 552    댓글 : 3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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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0.10   조회수 : 399    댓글 : 0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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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좋은생각
[햇살마루] 그 많은 노심초사 덕에
2018.10.10   조회수 : 304    댓글 : 0개
한창 꽃이 핀 시절에는 날이 추웠다. 아카시아꽃이 추운 날씨를 못 견디고너무 빨리 져 버린 통에 꿀벌 치는 사람들이 울상이었다. 봄 같지 않은 봄 때문에 즐겁지가 않았다. 짧은 장마 끝에 타는 가뭄이 너무 길었다. 한낮엔 맨 흙바닥에 발을 댈 수 없을 정도로 세상천지가 펄펄 끓었다. 여름은 너무 여름 같아괴로웠다. 일망무제로 높고 넓어진 가을 하늘을 기대했건만 장마 같은 장대비가 하루가 멀다 하고 퍼붓는 통에 온 집 안이 눅눅했다. 눅눅한 방바닥에 개미들이 떼 지어 출몰했다. 개미를 쓸어 내며 울고 싶어졌다. 날씨만 놓고 보면 올해는 그리고 아직까지는 그리 행복하지 못한 날들이 이어진 것 같다.그칠 것 같지 않던 비가 뚝 그친 어느 날을 틈타 기습적으로 김장 무씨를 넣고 김장 배추 모종을 했다. 씨와 모종들은 비가 너무 안 와도, 너무 많이 와도안 되는지라 비가 오기를 기다리는 건지,안 오기를 바라는 건지 알 수 없는 날이 이어졌다. 그리고 비는 어김없이 장대비로 쏟아졌다. 무씨는 썩을 수도 있고 배추 모종은 그 뿌리가 일어나서 해 나는 어느 날엔다 말라 버릴 수도 있을 것이다.그러나 나의 우려와는 다르게 비 그친 어느 날 무씨는 딱 내가 심은 그만큼씩 돋아나고 배추 모종은 가늘디가는 실뿌리를 착근하게 땅에 내리고 그 어떤 시련에도 굴하지 않을 품새로 늠름하다. 왈칵 눈물이 날 지경이다.시골에 이사 와서 작은 텃밭을 일구고 씨앗을 땅에 넣을 때마다 사실은 그런 비슷한 노심초사를 했다. 이 작은 씨앗에서, 지금은 어떤 형태도 상상할 수없는 조그만 먼지 혹은 부스러기 같은 물체에서 어떻게 그 풍성한 초록 잎이,그 장대한 줄기가, 그 튼실한 열매가 생겨날쏘냐, 긴가민가해진 것이다. 의심이라면 의심이고 불안이라면 불안인 그런 심사는 그 조그만 씨앗들에서 싹이 터흙 위로 삐죽삐죽 올라와 줄 때에야 눈 녹듯 사라진다. 그동안에 나는 오늘은싹이 텄나, 안 텄나, 자고 일어나면 밭으로 내달렸음은 물론이다. 그러나 모든씨앗은 딱 내가 뿌린 만큼 올라왔다. 올라와서 벌레나 새한테 제 몸을 내준 것말고는 언제나 나의 씨앗들은 난 만큼 정확하게 커 주었다. 그러고는 햇빛과바람과 물의 힘만으로도 내게 천둥 같은 기쁨을 안겨다 주었다. 내가 보탠 것은 오직 노심초사뿐이었는데도.시장에 가서 깜짝 놀랐다. 지난한 봄과 여름을 생각하면 시장에 흠집 하나없는 노오란 배, 윤기 흐르는 붉은 사과, 탱글탱글한 포도가 어떻게 나올 수 있단 말인가 싶어서다. 나는 지레 포기했다. 올해는 과일 같은 것은 먹어 볼 수 없을 거라고. 그러나 시장에는 작년이나, 재작년이나 똑같이 과일 장수는 과일을팔고 채소 장수는 채소를 팔았다. 농부들은 어떻게 저 채소들을, 저 과일들을시장에 내놓을 수 있었을까.나는 이따금 학교에서 쏟아져 나오는 아이들을 보고 놀란다. 아, 저 많은 아이를, 저 아이들만큼이나 많은 부모가 기르고 있구나, 부모가 아니더라도 누군가가 기르고 있겠구나. 그리고 나도, 내 동무도, 지금의 어른도, 그 어른의 어른도 다 그렇게 누군가의 수고로 길러져서 아이가 어른이 되었구나. 새삼스러워져서 아이고 소리가 절로 나올 때가 있다. 자연 다큐멘터리에 나오는 코끼리도, 원숭이도 그 어미 혹은 가족들의 극진한 보살핌을 받고 어른이 된다. 그어미들의 노심초사의 나날이 아기 코끼리, 아기 원숭이를 어른으로 만드는 것이다.시장에 나온 저 채소, 저 과일 하나하나가 다 농부의 노심초사에 다름 아님을 알겠다. 내가 농사를 지어 보니 알겠다. 예전에 우리 어머니는 내가 말썽을부리면 나중에 꼭 너 같은 자식을 낳아 봐야 당신 속을 알 거라는 말씀을 노상했다. 그때는 그 말이 듣기 싫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내 아이가 속을 상하게 하면 나도 모르게 우리 어머니의 그 말씀이 내 입에서도 나왔다. 어머니 말씀대로 예전의 나처럼 속을 썩이는 자식을 키워 보니 알겠다. 세상에 그 어떤 것도절로 크는 건 없다는 것을. 그리하여 이 세상에 모든 생명이 끊임없이 이어진다는 것은, 결국 어디선가 그리고 누군가의 끊임없는 노심초사 덕분이라는 것을.누군가의 노심초사가 아닌들 이 가을에 저 아름다운 과일들을 어떻게 맛볼 것이며 저 아이들의 해맑은 웃음소리를 어디 가서 들을 것인가. 사정이 그러하니 과일 사는 사람은 흠집 난 과일이라도 너무 타박하지 말고, 어린 사람은 어른의 잔소리에도 좀 너그러워지기를 바라는 게 그리 무리한 바람은 아닐것이다.공선옥 님 | 소설가
이달의 좋은생각
[오늘의 만남] 행운
2018.09.07   조회수 : 1,822    댓글 : 1개
늘 반항아라는 꼬리표가 붙었던 학창 시절.나는 부모님,선생님,친구까지 그 누구도 만족시키지 못하는 아이였다.어릴 적부터 깊어진 부모님과의 갈등의 골은 회복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선생님들의 평가도 한결같았다. “길들여지지 않으려 하고,딱히 하고 싶어 하는 것도 없는 아이.”방황을 거듭하다 일본 지휘자‘오자와 세이지’가 오케스트라와 합창을 암보(악보를 외워 기억함)로 지휘하는 영상을 보았다.가슴이 뛰었다.인생에서 처음 하고 싶은 것이 생겼다.자존감이 낮은 시기였던 탓에 내가 감히 지휘자가 될 거라는 생각은 못 했다.단지 관련 전공으로 대학을 다닐 수만 있다면 행복할듯했다.그러나 클래식 음악 작곡가인 아버지는 여자아이에게 지휘는 어울리지 않는다며 크게 반대했고,갈등은 더욱 심해졌다.나는 서러움이 북받쳐 집을 나가고야 말았다.얼마간 친구에게 신세 지다 돌아오니 부모님은 비로소 나를 속박하길 포기한 듯했다.도전이라도 해 보자는 생각에 몰래 대학 입시를 준비했다. ‘떨어지더라도 어차피 아무도 모르겠지.’이런 생각에 알 수 없는 자신감이 솟아올랐다.화성법(작곡 또는 지휘과 입시에서 중점적으로 평가하는 과목 중 하나)책을 펴며 가슴이 벅차올랐고 난생처음 느껴 보는 설렘에 푹 빠졌다.스스로 나의 길을 찾고 무언가를 시작했다는 사실은 더할 나위 없는 희열을 맛보게 해 주었다.스무 살,내 인생의 전환점은 그렇게 불현듯 찾아왔다.음악가 부모님에게서 태어나 지휘자로 살아간다는 것.같은 분야에 있는 부모님으로부터 좋은 영향을 받으며 무리 없이 성취를 이루는 것으로 보이기 쉽다.나 역시 주변에 나름 긍정적이고 열심히 사는 캐릭터로 알려져 있으니 늘 든든한 지지가 함께하는 사람으로 보이리라.하지만 부모님은 소위‘엘리트 학생’을 접하는 분들이고,당신들의 가르침과 지식을 스펀지처럼 빨아들이는 훌륭한 제자들과 나를 비교할 수밖에 없었다.소심했던 나는 스펀지는커녕 부모님의 힐난과 비교에 늘 상처받았다.그러던 내가 무언가에 정신없이 빠져들어 설렘을 느낀 것,그로 인해 커다란 전환점을 맞은 건 정말이지 내 인생의 가장 큰 행운이 아닐까.진솔 님|대구MBC(엠비시)교향악단 전임 지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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