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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살마루] 각자의 산사, 하나의 연등
2018.08.08   조회수 : 1,992    댓글 : 2개

혼자 통영에 간 적이 있다.

게스트 하우스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다음 날엔 언제나 그랬듯 무작정 걸었다. 나는 심각하게 방향 감각이 부족해 모르는 길에선 모든 걸 운에 맡기는 편이다. 그 길이 나를 데려가는 곳의 유의미함 정도는 그저 내 운의 능력이거나 한계인 셈이다. 걷다 보니 산이 나왔고 등산로가 시작됐다. 등산로는 두 갈래로 나뉘었는데 주사위를 던지는 마음으로 나는 오른쪽을 택했다. 삼십 분 정도 산길을 오르니 아주 작은 산사가 나타났다. 약수라도 마실 겸 절 안으로 들어가자 허공에 둥둥 떠 있는 색색의 연등이 보였다. 늦봄의 초파일 무렵 내걸린 뒤 미처 수거 되지 않은 연등들이었을 것이다. 연등에는 가족 건강이나 시험 합격, 사랑과 결혼의 결실 같은 누군가의 염원이 연의 꼬리 같은 종이에 적혀 매달려 있었다. 나는 바람의 방향대로 하늑거리는 그 염원들을 올려다보는 게 좋았다. 

 

대웅전으로 옮겨 가자 중년 여성 두 명이 목탁 소리에 맞춰 절하는 모습이 보였다. 대웅전 바깥에 서서 나는, 절대자 앞에서 가장 낮은 자세로 엎드려 절하는 사람들의 염원에 대해 생각했다. 아마도 다른 누군가를 위한 간절한 마음이 배어 있을 염원…….

 

절을 나와 다시 걸었다. 산길을 내려오면서 불현듯 가슴 한쪽이 아파 왔다. 내 삶이란 게 고작 안온한 실내에서 건너다본 창밖의 풍경에 지나지 않다는 생각 때문이었을 것이다. 소설가로 살며 그 풍경을 최대한 섬세하게 그리고 예의를 갖춘 문장으로 표현하려고 애써 왔지만 어쩌면 그 문장은 본질적으로 표면만을 훑은 가짜 심연인지도 몰랐다. 나의 염원은 연등이 된 적 없었고, 내가 다른 한 사람을 위해 기도한 기억은 너무도 먼 과거에 멈춰 있었다. 나는 다치고 싶지 않았고, 다치지 않기 위해 세상과 사람들에게 거리를 두며 살아왔다는 걸 부정할 수 없었다. 낯선 도시의 작은 산사에서 나는 녹슬었으나 거짓은 없는 거울을 들여다본 셈이다.

 

K(케이)시에 다녀오고 두 계절이 지난 뒤 H(에이치)를 알게 됐다. H는 아침에 일어나서, 그리고 잠들기 전에 내게 안부 메시지를 보내왔다. 무엇을 먹는지, 어디에서 누구를 만나는지 알려 주고 내 끼니를 묻기도 했다. 나는 살아 있다는 것에 대해 자주 생각했고 하루에 한 번 이상은 큰 소리로 웃었다. H에게 편지를 쓰고 싶어졌다. 그 바람이 너무 간절해서 소설을 위한 문장은 도무지 떠올릴 수 없을 정도였다. 이제는 오롯이 H의 것이 된, H만을 위해 쓴 문장은 삭제한 그 편지를 H의 허락을 받아 이 지면에 남긴다.


어느 해 가을엔가

가 본 적 없는 산길을 혼자 걸었습니다. 

 

걷다 보니 작은 산사가 나왔죠.

그토록 작은 산사에도 

물빛 허공엔 연등이 내걸려 있었습니다. 


누군가,

너무도 구체적인 삶을 사는 사람, 

사람들의 염원이 담긴 

해지고 때 탄 연등들 

수없이 물려주고 물려받은 

아기의 배내옷처럼 

생명의 빛 

 

내 몫의 지구가 회전을 하여

하늘과 땅의 위치가 뒤바뀐다면 

연등은 물 위를 떠다니는 

꽃잎처럼 보일까요. 

이 세계의 유일한 실재 

 

내 염원은 한 번도

연등이 되어 보지 못했습니다. 

세상의 표면만을 앓은 대가인 듯 

 

행복인지 불행인지

왜 웃고 우는지 

그런 것을 곰곰이 헤아리지 않고도 

내 몫의 지구는 무탈하게 생활했고 

나는 그 안에서 

내가 감당할 수 있을 만큼만 

물이 되는 하늘에 발을 담그곤 했습니다. 

희생을 각오하는 절박한 염원이란 늘 이기적이었고 


아침과 밤마다 인사를 해 주고

늘 끼니를 묻는 

친구의 현현, 

자주 위아래 구분 없이 굴러다니는 내 방 앞에

도달한 선물 


늘 당신의 행복을 빕니다. 비록

가장 아프게 무너지는 순간이 

길 위에 있더라도 

언젠가는 도달할 

각자의 산사 

하나의 연등


다가올 모든 순간에 대해

낮은 자세로 

나는 당신의 행복을 빕니다. 


조해진 님 |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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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2)

세냥맘
2018.08.10
삭제
좋은글에 감동받았어요. 
미화
2018.09.03
삭제
역시 소설가는 다른가봐여 ^^ 좋은글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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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좋은생각
[오늘의 만남] 모든 아이는 영재다
2019.02.11   조회수 : 438    댓글 : 0개
웃는 모습이 귀여워 볼을 비비고 싶어지는 소녀 장사 시윤이. 열 살 안시윤양은 〈영재 발굴단〉의 올해 첫 주인공이었다. 시윤이와의 인연은 삼 년 전에시작됐다. 2016년 여름, 또래보다 힘센 아이가 있다는 제보를 받고 시윤이를찾았다. 당시 일곱 살인 시윤이는 10킬로그램짜리 쌀가마니를 번쩍 들고, 4학년 오빠들을 제압하는 등 놀라운 힘을 보여 줬다. 딸의 재능을 어떻게 키워 줄지 고민하던 부모님은 방송을 계기로 ‘역도’를 떠올렸고, 삼 년이 지나 시윤이는 실제로 역도에 도전하게 됐다.사실 시윤이는 태어날 때부터 귀가 잘 들리지 않았다. 청신경 수가 적다고한다. 그렇다 보니 말하는 것도 조금 어눌하다. 그래도 시윤이는 투정 한마디하지 않는다. 언어 치료도, 역도 연습도 열심이다. 제작진은 그런 시윤이를 ‘기적의 아이’라 부르며 응원한다.“귀는 조금 안 들리지만, 대신 역도를 잘할 수 있는 힘을 주셔서 고마워요.”시윤이가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열 살짜리 아이의 생각이 어떻게 이리 깊을수 있을까? 방송을 통해 시청자와 나누고 싶은 것은 시윤이와 같은 아이들의고운 심성이다. 어른들에게 희망과 위로를 주는 아이들의 밝음, 맑음 그리고열정.제작진은 “세상 모든 아이는 영재다.”라는 말을 믿는다. 그 말을 믿고 힘이되어 주는 어른이 옆에 있느냐 없느냐의 차이가 다른 상황을 만들 뿐이라고생각한다.시윤이 부모님은 넉넉하지 않은 형편에도 끝없는 격려와 사랑으로 시윤이를건강하게 키워 내고 있다. 아이가 영재라서 사랑스럽고 특별한 것은 아니다. 아이를 향한 믿음이 있을 때 아이는 아름답고 훌륭하게 자란다.시윤이가 영재인 이유는 부모님이 이 단순한 비법을 매일같이 실천한 덕이아닐까?아이들이 행복하게 성장하기 위해서는 “모든 아이는 영재다.”라는 믿음이필요하다. 지금 이 순간, 작게는 가정부터 크게는 학교와 사회까지, 아이들이숨 쉬는 곳곳에서 어른들은 어떤 시선으로 아이들을 보고 있을까?한재신 님 | SBS 〈영재 발굴단〉 피디
이달의 좋은생각
[좋은님 에세이] 이 손인데
2019.02.11   조회수 : 480    댓글 : 3개
“우리 반에 자전거, 스마트폰 둘 다 없는사람은 저뿐이에요. 둘 중 하나는 갖고 싶어요.”중학생이 된 아들이 부쩍 졸랐다. 안쓰러워서 스마트폰을 사 주었다.처음엔 “정해진 시간에만 하고 게임이나채팅은 절제할게요.”라며 자신만만했다. 한데 일주일도 지나지 않아 틈만 나면 품고 다녔다. 주의를 주며 다짐받곤 했지만 그때뿐, 이런저런 눈치를 보며 스마트폰을가까이했다.걱정을 털어놓자 한 동료 선생님이 아들 이야기를 했다. 중학생 아들이 집에와서 스마트폰으로 친구들과 뭔가를 주고받는 것이 그렇게 궁금할 수 없었단다. 그래서 아들의 잠금 해제 패턴을 알아내려 훔쳐보았으나 빠르고 복잡해번번이 실패했다고.그러다 기회가 왔다. 아들이 새로 바꾼 스마트폰은 지문 인식이 되는 것. 선생님은 기발한 생각을 떠올렸다. 아들이 잘 때 몰래 지문을 이용하기로 했다.아들이 잠든 것을 확인한 뒤, 스마트폰을 켜고 아들의 오른쪽 엄지손가락을 갖다 댔다. 한데 반응이 없었다. 반대쪽인가 싶어 왼쪽 엄지도 대 봤지만 마찬가지였다. 양손을 번갈아 가며 대는데, 어렴풋이 깬 아들이 약지를 들며 웃는 게 아닌가.“이 손인데.” 선생님은 그때 지문 등록을 엄지가 아닌 다른 손가락으로도 할 수 있는 걸 알았다. 결국 “아들 믿어 보세요.”라는 말을 들으며 방에서 나왔다고. 헛웃음이 나면서도 아들의 말에 믿음이 갔단다.“부모님들, 아이 한번 믿어 봅시다.”진성수 님 | 대구시 수성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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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충주 버스 정류장
2019.02.11   조회수 : 497    댓글 : 1개
초등학교 동창인 그에게서 불쑥 연락이 왔다. 마침 남자 친구와 헤어져 기분이 울적한터였다. 나는 언제 한번 충주에 놀러 오라고 했다. 그가 사는 곳은 울산. 버스로 다섯 시간넘게 걸리는 충주까지 오리라곤 생각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는 기다렸다는 듯 약속을 잡았다.그를 만나는 날, 어른이 된 모습을 상상하며 설레었다. 자취방 앞 버스 정류장에서 그에게 어디냐고 문자 메시지를 보냈다. “맞은편 정류장.”이라는 답장에 고개를 들어 보니 4차선 도로 건너편에 한 남자가 서 있었다.체인이 주렁주렁 달린 바지, 하얀 해골 장식이 박힌 가방. 게다가 모자에도 해골이 그려져 있었다.‘설마 저 사람은 아니겠지?’ 주위를 둘러보는데 그가 호탕하게 웃으며손을 흔들었다.“내가 그쪽으로 갈까?”기차 화통을 삶아 먹은 듯한 소리에 버스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일제히 우리를쳐다보았다. 빨리 그곳을 빠져나가는 게나을 듯해 서둘러 횡단보도로 향했다. 길을 사이에 두고 어색하게 서 있는데 비가내리기 시작했다. 나는 우산을 가져오지않아 손으로 가렸다.그가 가방에서 우산을 꺼내 들었다. 노란 바탕에 주황색 꽃무늬가 선명한, 덩치에 비해 작은 우산이었다. 나도 모르게 웃음이 터졌다. 그는 머리를 긁적이며 수줍게 미소 지었다.우리는 칠 년 연애 끝에 결혼했다. 일 년이 지날 무렵 위기가 찾아왔다. 직장을 그만두고 시작한 사업은 잘되지 않았고, 부족한 생활비에 이런저런 고민이 겹쳐 서로를 원망하는 일이 잦았다.그날도 서로 큰소리를 내며 싸웠다. 한데 남편이 먼저 충주 여행을 제안했다. 예전에 살았던 집에도 가 보고, 연애 시절도 떠올려 보자는 것이다. 아직 덜 풀린 마음으로 남편을따라나섰다가 또 크게 다투고 말았다. 나는 숙소에 도착하자마자 혼자 밖으로 나왔다. 딱히 갈 곳이 없어 예전 동네로 발걸음을 옮겼다. 남편과 좋았던 시절을 떠올리며 걷는데 그에게서 문자 메시지가 왔다.“왼쪽을 봐.” 건너편을 보니 그가 버스 정류장에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내가 그쪽으로 갈까?” 고개를 끄덕였다. 내 앞에 선 그가 뒤에 감춘 무언가를 꺼냈다. 그때의 꽃무늬우산이었다. 사람들은 맑은 날씨에 우산을 펼쳐 든 우리를 힐끔거렸다.“창피하니까 얼른 접어.” 우산을 든 그가 먼저 미안하다고 사과했다. 여행을 떠날 때부터 화해할 생각으로 우산을 챙겼을 모습이 떠올라 웃음이 났다.그때부터 크게 다툰 뒤에는 마치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그 장소를 찾았다. 서로를 위해다섯 시간 거리를 오가고, 퇴근 후에 잠깐 보는 얼굴에도 더없이 행복했던 그 시절. 힘든순간 함께 추억할 장소가 있는 것만으로 보물이 생긴 듯 뿌듯하다. 결혼이란 이렇듯 추억의 장소를 하나씩 늘려 가는 게 아닐까?최수정 님 | 인천시 서구
이달의 좋은생각
[햇살마루] 사춘기잖아
2019.02.11   조회수 : 427    댓글 : 0개
어느 날 네이버 지식인에서 흥미로운 문의를 발견했다. 내용은 이러했다.“우연히 사이코패스에 대한 글을 읽었는데 제 이야기인 것 같아서 너무 무서워요. 일단 저는 무슨 잘못을 해도 양심이 없어요. 다 주변 사람을 탓해요. 내가 잘못하는 건 남들이 먼저 잘못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극도로 자기중심적이고요. 남들이 저 때문에 힘들어도 상관 안 해요.고맙다거나 미안하다는 말도 하기 싫어요. 그 말을 해야 하는 것 때문에 오히려 화가 나요. 그리고 공감 능력 진짜 없어요. 누가 아프거나 힘든 일을 겪는다 해도 안타깝거나 관심이 가지도 않고요. 이런 제 자신이 무서워요. 어릴 적부터 제 성격이 이상한 건 알았지만 설마 했는데. 어떡하죠, 저?”“나도 그럴 때 있는데.” “다 그런 거 아닌가.” “아마 님은 아닐 거예요.” 하는 식으로어물어물 이어진 수많은 댓글은 정곡을찌르는 누군가의 한마디로 깔끔하게 마무리되었다.“사춘기잖아!”당시 중학교 2학년 딸아이를 키우는 엄마로서 이 답글은 굉장한 위로가 되었다.또 이런 일도 생각난다. 딸은 뜬금없이 이렇게 선언했다.“우리 학교에서 제일 행복한 아이는 나야. 난 자신 있어.”불평투성이 중 2에게 기대하지 않은 고백을 들은 나는 내심 들떴다.“그래? 뭐가 그렇게 행복한데?”“우리 집! 십 년이나 살았는데 질리지 않아. 다른 동네로 이사 가지 않으면 좋겠어. 그리고 이번에 산 패딩 점퍼! 완전 성공했어. 디자인도 맘에 들고 왕 따스워. 난 식생활에도 크게 만족하고 있어. 의식주 다 좋으니까 내가 제일 행복한거지. 그러니까 내가 행복한 건 아빠의 월급 덕분이네.”녀석은 뜨악해진 내 표정 따윈 살피지 않고 당당하게 사라졌다.공들여 가르친 정신적 가치는 어디로 가고 황금만능주의가 웬 말인가. 한탄하는 나에게 현명한 친구는 중요한 점을 짚어 주었다.“좋은 집에 살고, 좋은 옷 입고, 맛있는 거 먹어도 불행한 아이가 널린 세상이잖아. 본인은 그렇게 말해도, 행복한 데에는 실은 다른 이유가 있는 거야. 어리니까 그렇게 말한 거지.”결국 나는 그날 내 딸이 무엇 때문에 행복을 느꼈는지 알아내는 데 실패했다. 단지 그들의 언어 소통이란 것이 이런 식으로 매우 오해를 불러일으키기 쉬운 방식이란 것만 다시 확인했을 뿐이다.어린 그들의 종잡을 수 없는 행복과 불행을 가르는 것이 과연 무엇인지 우리는 쉽게 판정할 수 없다. 그들이 하는 말을 믿을 수도, 안 믿을 수도 없다. 사춘기 아이들 앞에서 어른은 완전히 길을 잃은 기분이 된다.하지만 저 네이버 지식인에 글을 올린 주체는 분명 사춘기 아이다. 그는 “사춘기잖아!”라는 간결한 댓글에 ‘좋아요’를 남기고 사라졌다. 그들도 자기 마음을 고뇌하고 질문하고 있다는 증거다.어른도 아이도 모두 고뇌하지만, 서로 이해에 도달하는 행복한 결말은 흔치않다. 오히려 올챙이 시절의 기억은 모두 까먹고 ‘나 어릴 땐 안 그랬는데 쟤는왜?’ 하는 괘씸한 마음에 사로잡히기 일쑤다.그들의 말과 행동은 어른의 오해를 사기에 충분하다. 그들은 때론 이기적이고, 충동적이고, 무책임하고, 고마움을 모르며, 가장 좋은 소식조차 가장 기분나쁜 방식으로 전하는 재주가 있다.이런 어쩔 줄 모르는 상황에 처했을 때 쓸 수 있는 어른의 좋은 대사를 가르쳐 준 분은 바로 우리 할머니였다.“그거 다 애 때 하는 일이여. 다 그럭허고 크는 거여.”할머니의 이 말은 스스로를 주체하지 못한 어린 내 마음에 알 수 없는 위로가 되었다. 어른이 되어서도 똑같이 위로를 준다.할머니의 이 말에는 아이 자신도 알 수 없는 감정의 격동을 그 자체로 이해해 주라는 당부 그리고 지금 방황하더라도 언젠가 제 몫을 하는 사람으로 자랄 거라는 믿음이 담겨 있었다.이제는 내가 할머니에게 받은 것을내 아이에게 베풀 때다. 간절하나 무력한어른의 마음과 묵묵한 기다림의 미학을 이처럼 짤막하게 요약해 준 할머니의지혜가 오늘 불현듯 무척 소중하다.심윤경 님 | 소설가
이달의 좋은생각
[오늘의 만남] 사람 덕분에
2019.01.08   조회수 : 1,138    댓글 : 1개
벌써 스무 해 전 일이다. 악기점 전속 피아노 조율사로 일하던 나는 일거리가 없을 때 종종 악기 파는 일을 맡곤 했다. ‘다른 일도 아니고 영업이라니…….말주변이 없어 어떻게 손님과 마주하지?’ 걱정과 달리 일은 그다지 어렵지 않았다. 가끔 사람 때문에 힘들면 세상 어딜 가나 마찬가지라 여겼다.혼자 여유롭게 구경하길 원하는 사람과 말 붙여 주길 바라는 사람을 재빠르게 구별해야 했다. 말 잘하는 능력이 없으니 오직 진정성으로 다가갔다. 결과가 나쁘지 않았기에 ‘그래, 내가 사람 파악은 좀 잘하지.’라며 슬며시 자만하기도 했다.지금 나는 다시 사람 만나는 일을 직업으로 한다. 마을에 공간을 하나 얻어집에 쌓아 둔 책으로 ‘서재 도서관’을 만든 지 햇수로 오 년. 그동안 참 많은 사람을 만났다. 첫인상이 좋다, 나쁘다, 무뚝뚝하다, 친절하다, 따뜻하다, 차갑다……. 얼굴을 아는 이와 모르는 이가 무심코 던지는 말에 마음이 흔들리고때론 부서지기도 했다. 그럴 적마다 ‘첫인상이 별로야.’라며 잘 알지도 못하는누군가를 쉽게 판단한 나를 되돌아보았다.일부러 찾아와야 하는 곳이라 발걸음 해 주는 사람을 그저 반갑게 맞을 수밖에 없다. 이곳에 오래 있으면서 한 사람 한 사람의 숨은 매력, 좋은 면, 내가배워야 할 모습을 차츰 알아 갔다. 해를 거듭할수록 ‘사람에 대해 함부로 얘기할 수 없구나.’ 하고 느꼈다. 사람 보는 눈만은 정확하다고 자신한 지난날의 내모습이 부끄러웠다.서가에 꽂힌 다양한 책처럼 나이와 생김새, 성격도 제각각인 사람들이 찾아온다. 그들에게서 “할 줄 아는 건 별로 없지만 손이 필요하면 언제든 얘기해요.뭐든 보태고 싶어요.”라는 말을 수없이 듣는다. 곰곰이 보지 않아 알아채지 못했을 뿐 누구에게나 이런 선의가 있는 걸까? 수고로운 일과 서로의 고된 일상을 기꺼이 나누려는 사람들을 보며 생각했다. 사람은 본능적으로 누군가에게도움이 되고 싶어 하고, 그럴 때 기쁨을 느끼는 존재일지도 모른다고. 이곳에서는 사람 ‘덕분에’ 울고 웃는 일이 많다. 이곳을 떠올리면 마음이 절로 따듯해지는 이유다.박소영 님 | 서재 도서관 책 읽는 베짱이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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