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생각 카테고리

[특집] 어려운 자리
2018.07.09   조회수 : 2,627    댓글 : 7개

눈을 뜨자마자 ‘망했다’고 생각했다. 휴대 전화를 확인하니 “그냥 나오지 마.”라는 문자메시지가 와 있었다. ‘가지 말까, 그래도 갈까.’ 고민하다 튕겨지듯 나와 택시에 올랐다. 학동역에서 일산까지 가야 했다. 일산이라는 표지판이 눈에 들어올 즈음 기사 아저씨가 어디쯤에서 내리겠느냐고 물었다. 다시 집으로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냥 서울로 돌아가 주세요.” “예?” “서울이요.” 왈칵 눈물이 났다. 택시 기사는 비상등을 켜고 차를 세웠다.

“무슨 일 있어요?”

몸을 돌려 나를 바라보는 눈빛이 따뜻했다. 나는 감정을 추스르며 사정을 이야기했다.

 

“전 영화 팀 막내인데, 첫 작품이라 일도 잘 못하고 매일 집에 가라는 말만 들어요. 새벽 다섯 시에 가야 했는데 휴대 전화 전원이 꺼져서 알람을 듣지 못하고 푹 잤어요. 마지막 연락이 오지 말라는 거였어요. 지금 가 봤자 돌아가라고 할 거예요. 진짜 열심히 했고, 잘해서 성공하고 싶었는데……. 제가 다 망쳤어요.”

 

기사는 말없이 내 얘기를 듣더니 입을 열었다.

“학생, 성공하고 싶어? 그러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려 줄까?”

눈이 번쩍 뜨였다. 눈물도 멈췄다.

“어려운 자리에 가야 해. 돈을 갚지 못해도 빌려준 친구를 만나고, 어떻게 될지 훤히 보이지만 가시방석에 앉는 거야. 피하는 게 쉬운 거 같지? 그 순간엔 그래도, 지나면 ‘그때 피하지 말아야 했는데.’ 하는 후회가 들 거야. 힘든 걸 하는 순간 많은 게 달라지거든.”

 

고개를 숙인 채 생각해 봤다. 피하는 것과 부딪히는 것.

“나도 예전에 회사를 다녔거든. 그때 사람들 참 많이 혼냈어. 근데 철칙이 있었지. 먼저 나한테 오는 걸음걸이를 봐. 뭐 잘못한 게 있으면 천천히 오더라고. 아까 자리에서 일어났는데 이제 온다는 건 내내 고민했다는 거야. 그런 사람한테는 아무 말 안 하고 가만히 쳐다만 봤지. 할 말이 뭐가 있겠어. 잘못은 본인이 제일 잘 알 텐데.”

 

피식 헛웃음이 났다. 내가 그랬다. 머뭇거리지 않았으면 이미 도착할 시간이다. 세상에서 가장 천천히 가고 싶었다.

“한 소리 듣고 딱 그래. 죄송합니다. 시정하겠습니다. 다음에 잘하겠습니다. 그러면 상대도 미칠 노릇이지. 죄송하다고 다음에 잘한다는데 뭐라 그럴 거야.”

“저를 워낙 미워하셔서.”

 “일 못하는데 그럼 좋겠어? 근데 오늘 안 가면 그 사람들은 영영 못 보는 거야. 오늘 가서 ‘죄송합니다.’ 하면 이번에 잘린다 해도 다음은 있지.”

 

나는 택시에서 내리자마자 팀 오빠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는 다짜고짜 어디냐고 물었다. 보는 사람도 없는데 고개를 조아리며 연신 “죄송해요. 다 왔어요.” 하고 굽실거렸다.

빨리 오라는 고함을 들으며 내달렸다.

 

나는 그날 잘리지 않았지만, 종일 가시방석에 앉은 기분이었다. 하지만 마지막일 줄 안 그날은 조금 더 힘들었던 하루로 무사히 지나갔다.

이제 나는 막내가 아니다. 우습지만 나도 누군가에게 무서운 상사가 되었다. 이따금씩 택시에서 급히 뛰어내리는 막내들을, 그날의 나를 만난다. 그러면 나는 ‘저 친구들도 좋은 기사님을 만났나 보네.’ 하고 생각한다.

 

백성혜 님 | 서울시 강남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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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7)

이꽃개울
2018.07.13
삭제
우리는 절에가야 혹은 교회에 가야 신성의마음이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건 완전 착각입니다
지금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그자리가 아름다운 신성이 피어나는곳이죠
좋은 인연을 만나셨네요~~ 
아름다운 세상입니다~~
양원종
2018.07.16
포탈 기사 읽고 댓글만 달다보니 점차 자극적이고  가학적인 글을 쓰는 저를 발견하고 마음 정화 차원서 좋은생각 3년 구독신청 했습니다. 
신청하려 오지 않았다면 이런 좋은 글 접했겠습니까?
 유일한 스트레스 해소 차원이 TV 어린이 만화보는 것이라 크게 스트레스  받는 편은 아니나 정서적으로 감화 감동할 일들이 적어 삶이 막해 지네요. 좋은 생각에 빠져 아름다운 세상 만드는데 일조 했야 겠네요. 
이미경
2018.07.18
삭제
정기구독 하려고 찾아보다가  읽게되었어요.
마음이 따뜻해지고 차분해지네요.^^
좋은글 잘읽었습니다^^
박도군
2018.07.21
삭제
방금 엘레베이터를 타고 문득 생각이 나서 검색하구
들어와 가입후 이글을 읽었습니다 
무슨 선물을 해줄까 고민을 하다가 중고등학교때 서점에서 구입해서 보던 기억이...
아직도 책이 나오는거 보니 역시 이책을 선물 해야겠다는 좋은생각인듯 해요
소화이야기
2018.07.23
잔잔한 감사가 느껴지는 따스한 글이네요.
잘 읽었습니다~^^
숲처럼
2018.08.10
삭제
좋은 글 감사합니다
녹챠
2018.09.09
직장생활은 다 비슷한 것 같아요. 누구나 막내시절이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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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좋은생각
[오늘의 만남] 행운
2018.09.07   조회수 : 945    댓글 : 1개
늘 반항아라는 꼬리표가 붙었던 학창 시절.나는 부모님,선생님,친구까지 그 누구도 만족시키지 못하는 아이였다.어릴 적부터 깊어진 부모님과의 갈등의 골은 회복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선생님들의 평가도 한결같았다. “길들여지지 않으려 하고,딱히 하고 싶어 하는 것도 없는 아이.”방황을 거듭하다 일본 지휘자‘오자와 세이지’가 오케스트라와 합창을 암보(악보를 외워 기억함)로 지휘하는 영상을 보았다.가슴이 뛰었다.인생에서 처음 하고 싶은 것이 생겼다.자존감이 낮은 시기였던 탓에 내가 감히 지휘자가 될 거라는 생각은 못 했다.단지 관련 전공으로 대학을 다닐 수만 있다면 행복할듯했다.그러나 클래식 음악 작곡가인 아버지는 여자아이에게 지휘는 어울리지 않는다며 크게 반대했고,갈등은 더욱 심해졌다.나는 서러움이 북받쳐 집을 나가고야 말았다.얼마간 친구에게 신세 지다 돌아오니 부모님은 비로소 나를 속박하길 포기한 듯했다.도전이라도 해 보자는 생각에 몰래 대학 입시를 준비했다. ‘떨어지더라도 어차피 아무도 모르겠지.’이런 생각에 알 수 없는 자신감이 솟아올랐다.화성법(작곡 또는 지휘과 입시에서 중점적으로 평가하는 과목 중 하나)책을 펴며 가슴이 벅차올랐고 난생처음 느껴 보는 설렘에 푹 빠졌다.스스로 나의 길을 찾고 무언가를 시작했다는 사실은 더할 나위 없는 희열을 맛보게 해 주었다.스무 살,내 인생의 전환점은 그렇게 불현듯 찾아왔다.음악가 부모님에게서 태어나 지휘자로 살아간다는 것.같은 분야에 있는 부모님으로부터 좋은 영향을 받으며 무리 없이 성취를 이루는 것으로 보이기 쉽다.나 역시 주변에 나름 긍정적이고 열심히 사는 캐릭터로 알려져 있으니 늘 든든한 지지가 함께하는 사람으로 보이리라.하지만 부모님은 소위‘엘리트 학생’을 접하는 분들이고,당신들의 가르침과 지식을 스펀지처럼 빨아들이는 훌륭한 제자들과 나를 비교할 수밖에 없었다.소심했던 나는 스펀지는커녕 부모님의 힐난과 비교에 늘 상처받았다.그러던 내가 무언가에 정신없이 빠져들어 설렘을 느낀 것,그로 인해 커다란 전환점을 맞은 건 정말이지 내 인생의 가장 큰 행운이 아닐까.진솔 님|대구MBC(엠비시)교향악단 전임 지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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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님 에세이] 빚
2018.09.07   조회수 : 777    댓글 : 1개
“허허,이제 용돈 보내는 재미 없이 무슨 낙으로 사노.”첫 월급으로 부모님에게 내의를 선물했다.아버지는 취업한 나를 대견해했다.고교 시절 집 떠나 자취할 때부터 부모님에게 생활비를 받았다.날짜나 액수가 정해진 건 아니었다.돈이 떨어져 전화하면 기다렸다는 듯 보내 주었다.농사일은 고정 수입이 없는 걸 아는지라 받을 적마다 죄송했다.어려운 형편에 대학까지 보내 준 부모님에게 늘 빚진 마음이었다.빨리 졸업해서 그 신세를 면하고 싶었다.직장을 얻자 부모님에게 손 벌릴 일은 없겠다 싶었다.하지만 막상 결혼하려니 전셋집 얻느라 도움 받아야 했다.몇 번의 이사 끝에 어렵게 집을 장만했다.부모님은 아들의 새집에 기쁜 마음으로 다녀갔다.며칠 후 전화가 왔다. “아범아,돈 보냈다.아직 빚이 많이 남았제?”대출금이 큰 걸 알고 마음이 쓰였단다.부모님 돈이 은행 빚보다 더 무거웠다.얼른 부모님 빚부터 갚으리라 다짐하고 열심히 살았다.그러나 쉽지 않았다.돈이 조금 모인다 싶으면 은행 이자가 먼저 빠져 나갔다.그러다 둘째가 태어났다.늘어난 살림살이에 더 넓은 집으로 옮기면서 칠 년이 흘렀다.부모님은 오랜만에 들른 아들 내외를 반갑게 맞았다.팔순을 앞둔 아버지는 그새 더 수척해졌다.칠칠찮은 아들 탓인 듯해 죄인이 된 기분이었다.저녁상을 물리고 부모님과 마주 앉았다.나는 아버지 앞으로 통장을 내밀었다. “이게 뭐고?” “저 이제 빚 없어요.다 갚았어요.”한사코 돌려주려는 부모님과 실랑이한 끝에 애써 건네고 고향 집을 나섰다.마음이 홀가분했다.배명섭 님|대구시 수성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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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아빠의 청춘
2018.09.07   조회수 : 1,412    댓글 : 6개
부모님은 내가 대학교1학년 때 이혼했다.우리 사 남매에게는 받아들이기 힘든 일이었다.일가친척이 모이는 명절이면 엄마의 빈자리는 더욱 컸다.친척들은 우리 눈치를 살피며‘이혼’이나‘엄마’라는 말을 조심스러워했다.우리 때문인가 싶어 마음이 불편했다.가족이 티브이를 보다가도‘이혼’이라는 단어만 나오면 괜히 서로 멋쩍어 슬쩍 채널을 돌리곤 했다.아빠의 어깨도 한 뼘쯤 더 처져 보였다.어느 명절,친척들과 노래방에 갔다.가족별로 노래하는데,첫째 작은아버지가 작은어머니와 노래를 불렀다.그리고 둘째 작은아버지 내외도 마이크를 잡았다.부부끼리 부르기로 정한 것도 아니었는데.사촌들이 어리다 보니 부모님과 함께 부를 만한 노래가 없었다.우리 집 차례가 왔다.“나는 뭘 불러야 하나.”아빠는 혼자 부르기 어색한 듯 책을 뒤적거렸다.“아빠,제가 부를게요!”그때 큰오빠가 벌떡 일어서더니 기기에 번호를 눌렀다.우리 남매들은 어릴 적부터 워낙 숫기가 없었다.어디 나가 노래 부르는 건 쥐구멍에 들어가는 것보다 어려운 일이었다.큰오빠의 갑작스러운 행동에 모두가 어리둥절했다.‘뭘 부르려고 그러나.’온 가족이 화면에 시선을 집중했다.제목이 크게 떴다.〈아빠의 청춘〉.아빠는 놀란 눈치였다.전주가 흐르고 아빠를 위한 큰아들의 노랫소리가 울려 퍼졌다.“이 세상에 부모 마음 다 같은 마음.아들딸이 잘되라고 행복하라고.”후렴에서 큰오빠의 목소리는 더욱 힘이 들어갔다.“원더풀,원더풀,아빠의 청춘.브라보!브라보!아빠의 인생.”2절이 시작하자 아빠는 큰오빠의 어깨에 손을 얹고 함께 불렀다.노래가 끝나고 온 가족의 박수가 이어졌다.나는 눈물이 나는 걸 간신히 참았다.그간 아빠를 보며 마음이 무척 아픈 터였다.그 뒤로〈아빠의 청춘〉은 우리의 애창곡이 되었다.가족이 모이면 어김없이 이 노래를 부른다.그날 이후,서로 표현하지 못했던 무거운 마음이 조금씩 가벼워진 듯했다.아빠의 미안함도,아빠가 힘을 내길 바라는 우리 마음도 그 노래로 전해졌다.언제나‘청춘’처럼,건강하게‘원더풀’할 아빠의 삶을 응원한다.김소연 님|경기도 남양주시
이달의 좋은생각
[햇살마루] 버스커 버스커
2018.09.07   조회수 : 1,481    댓글 : 1개
주말에 종종 산에 오른다.산이 가깝고 많다.불암산은 집에서5분 거리고 수락산은10분 거리다.베란다에서 내다보면 사패산과 도봉산과 북한산이 한눈에 들어온다.산에 안 오를 수가 없다.나는 노원구 중계동에서20년째 산다.산에 갈 때마다 놀란다.참 많은 사람이 산을 오른다.매번 놀라면서 매번 새롭다.그 또한 산행의 매력이다.알록달록한 등산복을 입고 스틱을 짚고 산에 오르는 사람들은 어쩐지 엊그제 지하철이나 버스 정류장에서 마주한 지친 사람들과는 사뭇 달라 보인다.다른 사람들인가?아닐 텐데,지하철을 타고 버스를 기다린 그 사람들이 맞을 텐데 훨씬 웃음이 많고 목소리가 활기차다.산에 오르면 누구나 좀 달라지는 걸까.나도 그런 면이 없지 않다.여간해서는 누군가에게 말을 걸지 않는 나도 산에서라면 예외다.빤한 걸 일부러 묻고 빤한 대답을 들으며 즐거워한다. “비봉까지 얼마나 남았어요?” “거의 다 왔어요,힘내세요.”말하자면 이런 질문과 대답인데,오르고 올라도 비봉이 멀기만 한때가 있다.속은 셈인데도 자꾸 웃음만 나온다.없는 오지랖을 피운 적도 있다.본격적인 등산로가 시작되기 전까지 펼쳐지는 완만한 산책로.그곳에는 계곡물이 있고 공중화장실도 있고 때로는 찰옥수수와 쑥떡을 파는 이들이 있다.도봉 서원터에서 천축사 가는 길로 접어들어7분쯤 걸었던가.그곳에 허름한 옷을 걸친 소프라노 색소폰‘버스커(거리에서 노래나 연주를 하는 예술가)’가 있었다.뉴욕 양키스 모자를 쓰긴 했어도 꽤나 나이 들어 보이는 남자분이었다.그에게 가당찮은 오지랖을 떨었다.그를 그날 처음 본 것은 아니었다.천축사 방향으로 오를 때 가끔 보았다.그는 모자를 푹 눌러쓰고 무슨 곡인가를 하염없이 연주했다.거의 외국곡이었는데 내가 어쩌다 노래방에서 부르는〈내 사랑 내 곁에〉라든가〈천년의 사랑〉같은 곡이 나오면 발걸음을 멈추고 끝까지 들었다.그러다 하루는 그에게 다가갔다.답답해서 그랬다.그의 발치에 놓인 색소폰 케이스가 그야말로 발치에 놓여 있기 때문이었다.뚜껑 열린 케이스에는 등산객이 던져 준 천 원짜리 두 장과 몇 개의 동전이 있었다. ‘사람들은 여기까지 다가와서 돈을 건네지 않아요.좀 더 사람들이 다니는 쪽으로 케이스를 내어 놓아야겠어요.’물론 나는 그렇게 말하지 않았다.그에게 목례로만 양해를 구하고 색소폰 케이스를 행인들 쪽으로 좀 더 가까이 옮겼다.아니나 다를까,옮기자마자 두 행인이 색소폰 케이스에 돈을 넣었다.나는 그를 향해 보란 듯 미소 지었다.깊게 눌러쓴 모자 그늘 속에서 그의 눈도 웃고 있었다.생각보다 나이가 많은 분이었다.두어 달쯤 뒤에 다시 천축사에 올랐다.그는 여전히 그 자리에서 고개를 숙이고 연주에 열중했다.나는 연주보다는 색소폰 케이스에 먼저 눈이 갔다.그럴 수밖에 없었다.색소폰 케이스가 다시 그의 발치에 놓여 있었으니까.그는 나를 아랑곳하지 않고 케니 지의〈러빙 유〉를 연주했다.케이스 안은 동전 몇 닢으로 다시 초라해져 있었다.나로선 어찌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색소폰 케이스를 다시 행인들 쪽으로 밀어 놓을 만큼 나의 오지랖은 왕성하지 못했다.그는 연주를 멈추지 않은 채 흘끗 나를 바라보았고 나는 쥐고 있는 몇 푼의 돈을 그의 색소폰 케이스에 슬그머니 떨어뜨렸다.그는 그날과 똑같은 눈웃음을 나에게 지어 주었다.〈러빙 유〉는 맑은 계곡물소리와 어우러졌다.내 거동을 누군가 유심히 살피고 있었다는 사실을 나는 노년의 버스커 곁을 물러나고서야 알았다.소나무 그늘 바위에 앉아〈러빙 유〉에 귀를 기울이던 중년 여성 등산객이 나에게 말을 건넸기 때문이다.“색소폰 케이스를 행인들 가까이 내놓았죠?”“어떻게 아셨죠?”내가 물었다.“저도 그런 사람 중 하나니까요.그게 훨씬 나아 보여서.”“그런데 어째서 저분은 다시 발치로 끌어다 놓았을까요.”“저도 그게 알고 싶어 이곳에서 자주 연주를 들어요.그리고 이젠 왠지 알 것 같기도 하고요.”“왜일까요?”“연주자에게서 그 이유를 들었던 것도 아니고,다만 제 생각일 뿐이니까,음,굳이 말씀드리기가…….”“자주 와서 들으면 저에게도 생각과 느낌 같은 게 생기겠군요.”내가 말했다.“보세요,오늘 연주도 흐트러짐이 없어요.전혀 흔들리지 않아요.”그녀가 말했다.구효서 님|소설가
이달의 좋은생각
[오늘의 만남] 산울림 법칙
2018.08.08   조회수 : 2,358    댓글 : 3개
나의 애장품 중 하나는 휴지처럼 돌돌 말린 먼지 청소용 테이프다. 그걸 들고 어찌나 찍찍거리고 다녔는지, 아랫집 아주머니가 올라와 쥐라도 있는 건 아닌지 묻기도 했다.그렇다. 나의 취미이자 특기는 청소. 대학 시절부터 시작해 꽤 오랜 기간 혼자 자취할 때도 내 집은 언제나 손님 방문 오 분 전 상황이었다.결혼 후 집에 놀러 온 친구들은 마치 모델 하우스 같다며 놀라워했다. 청소예찬론자인 나는 그저 칭찬으로 받아들이며, ‘이렇게 깔끔하게 사니 얼마나좋아? 우리 남편은 복도 많지!’라는 생각에 의심이 없었다.그런데 어느 날, 싫은 소리 잘 안 하는 남편이 속에서 뭔가 욱하고 올라온 모양이다.“우리 집인데 내가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건 없어?”나도 마음이 상해 말도 안 되는 억지를 썼다. 한데 돌아앉아 생각하니 청소는 깔끔한 걸 좋아하는 내가 선택한 즐거운 행위였다. 그럼에도 신나게 청소하다가 동참하지 않는 남편을 발견하면 짜증이 쑥 올라왔다. ‘혼자 사는 집도 아닌데 왜 나만 이러고 있나?’ 여지없이 얼굴과 말투에 마음이 묻어났다.“내가 청소부야? 같이 안 할 거면 저리 좀 비켜!”그뿐인가, 남편이 청소 수준을 맞춰 주기를 기대하며 한두 마디씩 들이밀곤했다.“아침에 일어나면 이불 정리는 해야지?”“샤워하고 나면 욕실 물기 정리는 기본 아닌가?”“현관에 들어오기 전에 신발은 탁탁 털면 좋겠지?”내 얼굴에 묻은 밥풀을 나만 몰랐다. 청소는 좋은 거라며 나만의 취향을 남편에게 강요한 건 아닐까? 혹은 가족이니까 당연히 이해할 거란 근거 없는 자신감이 지나치진 않았나? 스스로에게 종종 묻는다.세상의 변하지 않는 이치 중 ‘산울림 법칙’이 있다. “웬수야!” 하고 소리 지르면 반드시 “웬수야!” 하고, “사랑해!” 하면 “사랑해!” 하고 돌아온다. 내가 자주듣는 말은 무엇인가?박혜은 님 | 굿 커뮤니케이션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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