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생각 카테고리

좋은생각 8월호를 소개합니다
2018.07.09   조회수 : 9,067    댓글 : 3개

좋은님과 함께한 26!

그저 기쁘고 고맙습니다.

 

스물여섯 살 생일을 맞은

좋은생각8월 호가 활짝 웃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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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3)

김봄
2018.0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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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세 8월호!활짝 웃음   축하드립니다.
저의 딸이 스물 여섯에 8월 생일 이네요.
"나를  흔드는 한마디"에 눈반짝였습니다!
이정숙
2018.0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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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출발합니다.
이상범
2018.07.12
삭제
26-가장 예쁜 나이!무엇이든 잘하고 싶은나이ㅡ그 나이 저를 뒤돌아 봅니다.더 잘 뛰어 봅시다.평생지기 (좋은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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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님 에세이] 열등감
2019.09.05   조회수 : 573    댓글 : 1개
열다섯 살에 아버지 사업이 부도를 맞고 집안이 무너졌다. 사춘기에 이리저리 도망 다니며 판잣집에 살게 된 나는 점점 모나기 시작했다. 당시 나를 초라하게 만든 건 가난만이 아니다. 나는 목소리와 발음이 그리 좋지 않았다. 혀가 보통 사람보다 짧고 구강에 마비 현상이 있었다. 말과 행동이 느리고 발음이 어눌하다는 이유로 따돌림을 받았다. 학창 시절 내내 ‘꺼벙이’라는 별명이 꼬리표처럼 따라다녔다. 선생님을 제외하고는 누구도 나를 이름으로 불러 주지 않았다. 집도 학교도 기쁨이나 행복을 느낄 수 있는 공간이 아니었다.그러다 가슴 뛰는 일이 찾아왔다. 고등학교 2학년이었다. 땀 흘리며 운동하길 좋아하는 다른 친구들과 달리 나는 음악 시간을 가장 기다렸다. 하루는 음악 선생님이 비디오 하나를 틀어 주었다. “다들 집중해서 보도록!” 캄캄한 음악실에서 텔레비전 화면만 밝게 빛났다. 아이들은 꾸벅꾸벅 졸기 시작했다. 그 사이에서 나는 화면에 빨려 들어갈 듯 호기심 어린 눈으로 오페라 〈라 트라비아타〉를 감상했다.여주인공 비올레타가 노래하는 순간,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감동이 일렁였다. ‘저게 내가 하고 싶은 거야! 내가 부르고 싶은 노래라고!’ 그날 음악으로 전율을 느끼고 내 꿈을 확신했다. 하교 후 집으로 달려가 어머니에게 음악 공부를 하고 싶다고 말했다. 하지만 끝내 허락받지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어려운 환경에서도 형이 이미 비싼 성악 레슨을 받고 있었다.나는 자구책을 찾았다. 형이 연습하는 소리를 따라 하기로 결심한 것. 주변사람들이 이상하게 쳐다보거나, 정류장을 지나친 적도 많았다. 원리도 모르고 흉내만 냈다. 흉내를 잘 내기 위해 듣고, 관찰하고, 따라 하고, 연습했다. 그 밖에 다른 도리가 없었다. 두 달이 지나자 내 목소리에도 바이브레이션(소리의 떨림)이 생겼다. 제법 성악가다운 목소리를 갖게 된 것이다.그때의 연습 덕분인지 나는 지금도 무엇이든 금세 따라 하고 집중력 있게 잘 배운다. 진득하니 혼자 연습하는 것도 남보다 자신 있다. 열등감이 만들어 준 강점이다.김진수 님 | 지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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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님 에세이] 운동화 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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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재주가 없는 나는 운동화 끈도 잘 묶지 못한다. 겨우 리본 모양으로 매듭지어도 금세 풀린다. 이 사소한 일이 왜 그리 어려운지. 언젠가부터 운동화 끈이 풀리든 말든 상관하지 않는다. 걷다가 멈춰 묶기를 반복하다 지쳐 버린 것이다. 포기하니 편했지만 남들이 칠칠치 못하다고 할까 봐 조금 걱정되었다.며칠 전, 버스에서 꾸벅꾸벅 졸다 엉뚱한 곳에 내렸다. 길치인 데다 생전 처음 보는 곳에 똑 떨어지니 우왕좌왕했다. 결국 한 아주머니에게 길을 물었다. “저기 은행 보이지예? 거기서 왼쪽으로 꺾으면 금방이라!” 고맙다고 인사하고 돌아서려는데 아주머니의 다정한 목소리가 들렸다.“학생, 운동화 끈 풀렸으예.” 그 말이 좋아서, 나는 잠시 서 있었다. 길이야 내가 물어본 것이지만 남의 운동화 끈까지 걱정해 주는 이는 얼마나 될까? 생각지 못한 친절을 덤으로 받은듯해 가슴이 따뜻해졌다. 그 후로도 종종 운동화 끈 풀렸다고 알려 주는 이를 만났다.하루는 여름 소나기가 쏟아졌다. 횡단보도 앞에서 신호를 기다리던 나는 속수무책으로 비를 맞았다. 그때 마트에서 장을 보고 오는 아주머니가 말없이 내 머리 위로 우산을 씌워 주었다. “고맙습니다.” “어디까지 가예?” “저 횡단보도 건너서 직진이요.” “내랑은 반대네! 그래도 저까지 씌워 줄게예.”짐이 한 아름인데도 우산을 받쳐 준 그 마음을 잊을 수 없다. 헤어져야 할 길목에서 우산 없이 뛰어가는 나를 걱정 어린 눈길로 바라본 것도. 운동화 끈이 풀렸다고 알려 주고, 우산을 내주는 타인의 소소한 친절. 운동화 끈을 묶을 때마다 그 마음들이 떠오른다.박소연 님 ㅣ 서울시 서대문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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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그 뜨거운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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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린 바람이 코끝을 스친다. 쉼 없이 흔들리는 유칼립투스를 한참 보고 있노라니 눈물이 뚝뚝 떨어진다. 주체할 수 없이 흐르는 이 눈물의 의미는 뭘까?내가 서 있는 곳은 호주 칼바리. 지도에서도 찾기 힘든 작은 해안 마을이다. 이곳에서홀로 두려움과 외로움을 견뎠을 아빠의 마음을 헤아려 본다.엄마는 내가 돌이 되기도 전에 아빠와 이혼했다. 우리 집에서는 아빠에 대한 어떤 말도금지되었다. 엄마의 마음속에는 배신감과 증오가 응어리져 있었다.열두 살, 학교를 마치고 집을 향해 걷는데 누군가가 떨리는 목소리로 내 이름을 불렀다.듣자마자 ‘올 것이 왔구나.’ 싶어 전율을 느꼈다.고개를 돌려 보니 깡마른 몸에 그리 크지 않은 키 그리고 까만 피부의 남자가 서 있었다.오랫동안 상상한 아빠와의 재회. 우리는 근처 빵집에 마주 앉아 어색한 첫 대면을 했다. 아빠는 그동안 호주 광산에서 일했고 한 달 전 한국에 들어왔다고 했다.엄마는 저녁 여섯 시가 넘어 퇴근했기에 하굣길에 아빠를 만나 한두 시간을 보내는 것은 그리어려운 일이 아니었다.그렇게 두 달이 지났을 때, 더는 엄마를 속일 수 없어 털어놓았다. 엄마는 “아빠는 우리 가족이 아니고, 절대 만나고 싶지 않다.”라며 울음을 터뜨렸다. 그 말은 비수가 되어 내 가슴에 꽂혔다. 내가 아빠를 계속 만나면 엄마와 살 수 없다고도 했다.지금껏 엄마 혼자서 얼마나 힘들게 나를 키웠는지 잘 알기에 그 말을 거역할 수 없었다. 아빠는 모든 상황을 당연하게 받아들였고, 우리는 또다시 헤어졌다. 아빠와의 시간이 추억이 될 즈음, 아빠 친구로부터 전화를 받았다.아빠가 오랫동안 불치병으로 고통 받다 세상을 떠났다고. 무슨 정신으로 버스를 탔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나는 아빠의 장례식장으로 한걸음에 달려갔다. 환하게 웃고 있는 아빠의 영정 사진을 보았다. 아빠 친구가 자세한 내막을 들려주었다.아빠는 엄마를 사랑해서 결혼했고, 그토록 바라는 딸을 낳았다. 하나 본인의 병을 안 순간 앞으로 닥칠 불행을 직감했다고. 아빠는 엄마와 내가 병으로 고통받는 자신을 보면서어떻게 행복할 수 있겠느냐며 지레 겁을 먹고 냉정하게 우리를 버리는 것처럼 상황을 만들어 도망쳤다.아빠는 먼 땅으로 숨어들었다. 언제 끝날지 모르는 고통을 견디며 오직 돈 모으는 데 전념했다. 남은 삶을 우리에게 바치기로 했다. 아빠는 생의 마지막이 다가오는 걸 직감하고작별 인사를 하러 한국에 돌아와 나를 찾은 것이다.나는 오열하며 엄마에게 이 사실을 알렸다. 엄마는 정신을 잃고 구급차에 실려 갔다. 병실에서 눈을 뜬 엄마는 소리 없이 울었다. 오랜 시간 쌓인 원망과 미움, 그럼에도 그리워한마음과 함께하지 못한 미안함으로.나는 대학생이 되어 아빠의 숨결이 남아 있을 듯한 이곳을 찾았다. 아빠와 함께한 두달은 너무 짧지만, 여전히 아빠의 온기를 기억한다. 아내와 자식을 향한 그 뜨거운 사랑을고스란히 느껴 본다.이혜정 님(가명) ㅣ 호주에서
이달의 좋은생각
[햇살마루] 양치기 소년
2019.09.05   조회수 : 491    댓글 : 0개
지난해 가을 아침 어머니에게서 전화가 걸려 왔다. 아침 여덟 시가 막 넘은 이른 시각이었다. “아버지가 좀 이상하시네.” 어머니는 대뜸 아버지 얘기부터 꺼냈다. “무슨 일 있어요?” “숟가락 드는 게 불편하다고, 아침 식사를 안 하겠다고 하셔.” “그게 무슨 말이에요? 숟가락을 왜 못 들어요?” 나로서는 이해가 안 되는 말이었다.“아버지 또 반찬 투정 하시는 거 아니에요?” 통화 중 불쑥 떠오른 생각이었다. 아버지는 입에 안 맞는 음식이 앞에 있으면 숟가락을 내려놓을 만큼 입맛이 까다로워 그런 생각이 드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나는 아버지가 지난달 내과에서 받은 위내시경과 혈액 검사에서 특별한 문제가 없지 않았느냐고 말했다. 일흔 넘은 아버지가 마흔 넘은 딸자식보다 건강한 것 같더라는 농담도 보탰다.“건강 염려증일 수도 있어요.” 그 말도 지나치지 않다고 생각했다. 아버지는 평소 건강 염려증이 있는 편이었다. 그즈음에는 오른쪽 귀가 들리지 않는다고 야단을 부리다 이비인후과에 간 적도 있었다. 의사는 귀에 아무 이상이 없고 귀 청소를 안 해 준 탓이라는말로 그냥 돌려보냈다. 그와 비슷한 일이 몇 번 반복되자 아버지의 말이 이솝우화에서 “늑대가 나타났다!”를 거듭 외친 양치기 소년의 말처럼 진짜로 들리지가 않았다.그런데 전화를 끊고 나서 조금 찜찜한 생각이 들었다. 혹시라는 생각에 지인인 의사에게 문자 메시지를 보냈다. 벌써 병원에 출근해 있다는 그는 곧장 전화를 걸어왔다. “아버지 모시고 바로 응급실로 가!” 나는 전화를 끊자마자 세수만 하고 대문을 나섰다. 응급실에 가기 위해 기다리던 아버지는 양복에 가죽 구두 차림이었다. “아버지, 그렇게 입고 가면 어느 응급실에서 받아 주겠어요? 다들 엄살인 줄 알지.” 아버지는 대학 병원 응급실에 구급차로 실려 간 것이 아니라 멀쩡히 걸어 들어갔다. 나는 응급실 접수처에 등록을 하면서도 ‘설마 무슨 일 있겠어, 검사나 한번 해 보는 거지.’ 하는 마음이었다.하지만 그런 여유는 오래 가지 않았다. 아버지가 응급실 침대를 차지하고 환자복으로 갈아입은 지 오래 지나지 않아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게 된 까닭이었다. 의사는 아버지에게 뇌졸중 전조 증상이라고 말했다. 며칠 더 있다 병원에 왔으면 후유증으로 몸을 제대로 움직이지 못할 수도 있었다고.아버지는 ‘뇌혈관 집중 치료실’이라는 병동으로 옮겨졌다. 나는 양복과 구두를 넣은 비닐 백을 들고 울먹이며 아버지의 침대를 따랐다. 술, 담배는커녕 짜고 매운 음식도 피해 온 아버지가, 건강 염려증이라고 가족들에게 놀림받기도한 아버지가 뇌졸중이라니 믿기지 않았다. 아버지 머릿속 뇌혈관이 70퍼센트 이상 막혔다는 말을 들은 뒤로는 아버지가 아니라 내가 숟가락을 들 수 없었다. 평소 아버지의 말을 흘려들은 나를 자책하지 않을 수 없는 시간이었다. “여기 밥이 아주 맛있어.” 어쩐 일인지 아버지는 병원 밥이 더없이 맛있다고 말했다. 깨끗이 비운 환자용 식판을 보면 마음이 한결 놓였다. 집밥보다 맛있을 리 없을 텐데, 초조해하는 딸의 걱정을 덜어 주려는 배려였는지 모른다는 생각이 나중에야 들었다. 아버지 나름의 ‘하얀 거짓말’이었을 거라는.단풍이 지기 전, 아버지는 퇴원을 했다. 이전의 일상으로 돌아간 뒤에도 아버지는 아침저녁으로 혈압을 잰다든가 하는 건강 염려증을 완전히 버리지는 못했다. 엄살 섞인 얘기도 종종 했다. 그러나 나는 이전처럼 아버지에게 불평하지 않았다. 우화 속 양치기 소년이 심심해서가 아니라 어쩌면 외로워서, 관심을 더 가져 달라고 늑대가 온다고 외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매일 알약 한 줌씩과 함께 아버지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있을 듯했다. 나는 이제 아버지가 무슨 말을 하든 귀담아 들을 준비가 되어 있다.오현종 님 ㅣ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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