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생각 카테고리

[오늘의 만남] 완벽한 여름날
2018.06.05   조회수 : 2,624    댓글 : 2개

최근에 한 회, 한 회 아껴 보는 프로그램이 있다. 바로 〈러브 유어 가든: 힐링의 정원〉. 방치된 정원을 새롭게 꾸며 주는 내용으로, 2000년 엠비시 대표 프로그램인 〈러브 하우스〉와 똑 닮았다. 바뀐 정원을 보고 울먹이며 감동하는 출연자들의 얼굴 클로즈업까지.

 

출연자 대부분은 가족 중에 아프거나 몸이 불편한 사람이 있고, 그를 전적으로 돌보는 헌신적인 이가 있다. 바깥출입이 자유롭지 못해 집 안에서 지내는 이들이 수목과 관목, 각종 꽃과 풀로 채워진 멋진 정원을 감격한 얼굴로 바라본다. 그 장면을 마주할 때면, 감동을 연출하는 편집과 구성의 뻔한 수법을 알고도 눈물이 줄줄 흘러내린다.

 

오늘 점심을 먹으며 본 에피소드는 닉슨 가족의 얘기였다. 영국 헤리퍼드에 사는 리앤은 아로마 요법 마사지사로 일하며 살았는데, 마흔셋에 루게릭병을 진단받는다. 원예사 프랜시스는 근육이 위축되고 마비를 겪는 리앤이 좋아할만한 식물을 떠올리며 시골 허브 정원을 방문한다. 다양한 식물이 가득한 허브밭을 보는 프랜시스. “정말 아름다워.”를 연발하는 그에게 주인은 몇 가지 허브를 추천한다. 마음을 달래고 긴장을 풀어 주는 ‘라벤더’, 잎과 꽃이 각각 다른 향을 내고 소화 불량과 수면 장애에 좋은 ‘레몬 버베나’, 활기를 주고 불안증 치료에 효과적인 ‘버거못’. 프랜시스가 ‘버거못’ 향기를 맡으며 홍차와 꽃향기가 떠오른다고 하자 주인이 답한다. “향기만으로도 희망을 안기는 거예요. 여름 같죠?” “네, 맞아요. 정확해요. 완벽한 여름날요.” 

 

눈물을 닦고 작업하러 카페로 나섰다. 모처럼 맑은 날씨가 아까워 씩씩하게 걸었다. 카페에서 홍차를 시켰다. 그러고 보니 어제 동네를 걷다가 한 가게 앞에서 화분 가득 핀 ‘구문초’, ‘로즈 제라늄’의 진하고 톡 쏘는 향기를 맡았다. 여름밤의 열기를 잠시 잊게 하는 강한 향기. 모기를 쫓는다며 화원 앞에 내놓고 파는, 흔하지만 강인한 허브다.

 

지난달에 분양받은 세 평 남짓한 텃밭에 구문초와 각종 허브를 심어야겠다. 여름을 향기롭고 편안하게 보내기 위해. 허브로 채운 정원에서 완벽한 여름날을 보낼 수 있으리라.

 

안난초 님 | 만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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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2)

s오뚜기s
2018.06.29
꽃향기가 주는 자연 치유 힐링이
아닐까 싶습니다.
기분 좋은 시간 이였습니다.^^
간난아이
2018.07.02
삭제
꽃 좋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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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8.08   조회수 : 632    댓글 : 1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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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가 두 돌 무렵 친정 엄마가 입원했다. 엄마 성격이 깐깐하기도 했으나 간병인을 둘 형편도 아니었다. 할 수 없이 내가 오전 열 시부터 오후 여섯 시까지,미혼인 언니가 저녁부터 다음 날 아침까지 엄마를 돌보기로 했다.병원은 우리 집에서 한 시간 거리. 아이와 지하철을 타고 오간 지 육 개월 즈음이었다. 아이가 감기 기운이 있는지 오전부터 칭얼댔다. “장모님도 웬만하면간병인을 쓰시지, 고집도 참. 애도 당신도 고생이잖아.” 남편은 소홀해지는 살림과 육아에 화를 내며 출근했다. 엄마도 미안한지 투정 아닌 투정을 부렸다.“이제 혼자서 움직이는데 귀찮게 자꾸 오고 그려!” “알았어, 내일부터 안 올 테니까 언니한테 병 수발 다 들라고 해!”불편한 마음으로 지하철에 몸을 실었다. 오후의 지하철은 한산했다. 영등포역에서 한 할머니가 짐수레를 끌고 우리 옆자리에 앉았다. “아기가 참 예쁘네,몇 살이누?” 백발의 고운 할머니는 박꽃처럼 환하게 웃었다. “아……. 이제 두돌 지났어요.” 엄마 때문에 지친 나는 건성으로 답했다. “근데 뭔 일 있어? 애기 엄마 얼굴이 슬퍼 보이네.” “친정 엄마가 아프셔서 병원에 다녀오는 길이에요.” 참았던 눈물이 그렁그렁 맺혔다.“나는 영등포에서 나물을 팔아. 오늘은 날도 덥고 해서 일찍 파장했어. 돈안 받을 테니 집에 가서 청양 고추 숭숭 썰어 넣고 된장찌개 끓여 먹어.” 할머니가 건넨 봉지에는 호박과 청양 고추 한 움큼이 들었다. 낡은 수레에 가득한,팔지 못한 채소들이 눈에 밟혀 한사코 거절했으나 할머니는 막무가내였다.얼마라도 드리려고 고민하는 찰나, 옆에 앉은 아주머니가 말했다. “할머니,호박잎 맛있어 보이는데 얼마예요? 우리 영감이 좋아하는데 잘됐네.” 그러자맞은편 아주머니도 얘기했다. “그 청양 고추랑 오이 섞어서 이천 원어치만 주세요.” 그렇게 반짝 장이 섰고 할머니의 채소는 금세 동났다. “내가 오늘 복 있는 애기 엄마 만나서 횡재했네. 참말로 고마워.”그로부터 석 달 후 엄마는 건강히 퇴원했다. 나는 지금도 할머니 말대로 내가 복덩이여서 친정 엄마도 고비를 잘 넘기고, 우리 가족도 화목하게 산다고믿는다. “할머니, 고맙습니다. 건강히 지내세요.”김택현 님 | 경기도 시흥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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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이 탄다. 우연히 들은 말 한마디에 어젯밤 잠을 자는 둥 마는 둥 뒤척였다. 머리가 아팠다.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어 이부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부엌으로 가서 주전자에 물을올렸다. ‘커피를 타서 산에 오르자.’ 하고 마음먹었다. 노란 커피 믹스 하나를 꺼내 들고 잠시 고민했다.‘오랜만에 냉커피를 만들어 볼까? 아니면 평소처럼 따뜻하게 마실까?’결국 보온병에 뜨거운 커피를 담았다. 산 정상에서 맛볼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마음이가벼워지는 듯했다.2년 전, 아버지와 의견이 맞지 않아 큰소리를 내며 다투었다. 무작정 집을 나와 동네를정처 없이 걸었다.그때 동네 뒷산이 시야에 들어왔다. 일찍 집에 가긴 싫은데 갈 곳도, 돈도 없었다. 산이나 타야겠다 작정했다.운동과 친하지 않아서일까, 가쁜 숨을 몰아쉬며 힘겹게 정상에 올랐다. 이마에 송골송골 맺힌 땀을 상쾌한 산바람으로 식히며 앉아 있었다.어디선가 감미로운 향기가 났다. 둘러보니 아주머니 두 분이 머리를 맞대고 커피를 타는 중이었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물과 갈색 커피가 한 컵에 섞이는 모습이 좋아 보였다. 나도 모르게 빤히 쳐다봤다.낌새를 알아차린 아주머니가 내게 물었다.“아가씨도 한 잔 타 줘요? 먹고 싶은 눈치인데. 호호.”뜻밖의 권유에 나는 손사래를 쳤다. 하지만 코끝을 자극하는 커피의 진한 향내와 환하게 웃으며 권하는 아주머니의 청에 못 이겨 고개를 끄덕거렸다. 커피 한잔을 마시며 산의풍경을 바라보자니 들끓던 마음이 어느새 고요해졌다. 아버지와 어쩌다 대립했을까 차분히 생각했다. 결국은 내 문제였다. 아까는 이해하지 못한 상황이 받아들여졌다. 산 덕분일까, 커피 덕분일까, 둘 다일까.그날 집으로 가서 아버지에게 잘못을 빌었다. 그러곤 가게에 가서 커피 한 상자를 샀다.나만의 마음 치유법은 그렇게 시작됐다.상처를 받거나 속이 상하면 커피를 타서 산에 오른다. 이 마법 같은 주문은 여전히 강력한 힘을 발휘한다.김현숙 님 | 경남 진주시
이달의 좋은생각
[햇살마루] 각자의 산사, 하나의 연등
2018.08.08   조회수 : 927    댓글 : 1개
혼자 통영에 간 적이 있다.게스트 하우스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다음 날엔 언제나 그랬듯 무작정 걸었다. 나는 심각하게 방향 감각이 부족해 모르는 길에선 모든 걸 운에 맡기는 편이다. 그 길이 나를 데려가는 곳의 유의미함 정도는 그저 내 운의 능력이거나 한계인 셈이다. 걷다 보니 산이 나왔고 등산로가 시작됐다. 등산로는 두 갈래로 나뉘었는데 주사위를 던지는 마음으로 나는 오른쪽을 택했다. 삼십 분 정도 산길을오르니 아주 작은 산사가 나타났다. 약수라도 마실 겸 절 안으로 들어가자 허공에 둥둥 떠 있는 색색의 연등이 보였다. 늦봄의 초파일 무렵 내걸린 뒤 미처 수거되지 않은 연등들이었을 것이다. 연등에는 가족 건강이나 시험 합격, 사랑과 결혼의 결실 같은 누군가의 염원이 연의 꼬리 같은 종이에 적혀 매달려 있었다. 나는 바람의 방향대로 하늑거리는 그 염원들을 올려다보는 게 좋았다.대웅전으로 옮겨 가자 중년 여성 두 명이 목탁 소리에 맞춰 절하는 모습이 보였다.대웅전 바깥에 서서 나는, 절대자 앞에서 가장 낮은 자세로 엎드려 절하는사람들의 염원에 대해 생각했다. 아마도 다른 누군가를 위한 간절한 마음이 배어 있을 염원…….절을 나와 다시 걸었다. 산길을 내려오면서 불현듯 가슴 한쪽이 아파 왔다. 내삶이란 게 고작 안온한 실내에서 건너다본 창밖의 풍경에 지나지 않다는 생각 때문이었을 것이다. 소설가로 살며 그 풍경을 최대한 섬세하게 그리고 예의를 갖춘문장으로 표현하려고 애써 왔지만 어쩌면 그 문장은 본질적으로 표면만을 훑은가짜 심연인지도 몰랐다. 나의 염원은 연등이 된 적 없었고, 내가 다른 한 사람을위해 기도한 기억은 너무도 먼 과거에 멈춰있었다. 나는 다치고 싶지 않았고, 다치지 않기 위해 세상과 사람들에게 거리를 두며 살아왔다는 걸 부정할 수 없었다. 낯선 도시의작은 산사에서 나는 녹슬었으나 거짓은 없는 거울을 들여다본 셈이다.K(케이)시에 다녀오고 두 계절이 지난 뒤H(에이치)를 알게 됐다.H는 아침에 일어나서, 그리고 잠들기 전에 내게 안부 메시지를 보내왔다. 무엇을 먹는지, 어디에서 누구를 만나는지 알려 주고내 끼니를 묻기도 했다. 나는 살아 있다는 것에 대해 자주 생각했고 하루에 한 번 이상은큰 소리로 웃었다.H에게 편지를 쓰고 싶어졌다. 그 바람이너무 간절해서 소설을 위한 문장은 도무지떠올릴 수 없을 정도였다.이제는 오롯이 H의 것이 된, H만을 위해쓴 문장은 삭제한 그 편지를 H의 허락을 받아 이 지면에 남긴다.어느 해 가을엔가가 본 적 없는 산길을 혼자 걸었습니다.걷다 보니 작은 산사가 나왔죠.그토록 작은 산사에도물빛 허공엔 연등이 내걸려 있었습니다.누군가,너무도 구체적인 삶을 사는 사람,사람들의 염원이 담긴해지고 때 탄 연등들수없이 물려주고 물려받은아기의 배내옷처럼생명의 빛내 몫의 지구가 회전을 하여하늘과 땅의 위치가 뒤바뀐다면연등은 물 위를 떠다니는꽃잎처럼 보일까요.이 세계의 유일한 실재내 염원은 한 번도연등이 되어 보지 못했습니다.세상의 표면만을 앓은 대가인 듯행복인지 불행인지왜 웃고 우는지그런 것을 곰곰이 헤아리지 않고도내 몫의 지구는 무탈하게 생활했고나는 그 안에서내가 감당할 수 있을 만큼만물이 되는 하늘에 발을 담그곤 했습니다.희생을 각오하는 절박한 염원이란 늘 이기적이었고아침과 밤마다 인사를 해 주고늘 끼니를 묻는친구의 현현,자주 위아래 구분 없이 굴러다니는 내 방 앞에도달한 선물늘 당신의 행복을 빕니다. 비록가장 아프게 무너지는 순간이길 위에 있더라도언젠가는 도달할각자의 산사하나의 연등다가올 모든 순간에 대해낮은 자세로나는 당신의 행복을 빕니다.조해진 님 |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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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만남] 파릇파릇 행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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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뜰, 좀 하네!” 양상추 작업장에서 일하는 김종혁과 작업반장 이태호, 격투기 선수 출신 김진홍과 재첩 잡는 어부 김태우. 덩치로 보나 말발로 보나 선배 같은 신입 넷이서 똘똘 뭉쳤다. 겨울 비닐하우스에서 작업하다 꽁꽁 언 손으로 야구공을 쥐었고, 전국으로 배송할 재첩 국을 펄펄 끓이다가 야구장으로 달려왔다. 몸무게 백 킬로가 넘는 진홍은 쌀 도정을 하다가 손바닥에 허연쌀가루가 묻은 채로 공을 잡았다.보청기를 끼고도 잘 듣지 못하는 종혁은 눈이 좋다. 운동 신경이 둔해 아직야구 방망이를 들 실력은 못 돼도, ‘오늘의 경기’를 한 장면도 놓치지 않고 깨알같이 기록한다. 누가 시킨 게 아니라 좋아서 했다는 기록에 투수도, 삼루수도,유격수도 긴장한다. 눈치코치 없는 종혁 덕에 우리는 자주 볼 빨개지는 무안함을 경험한다. 그래도 다 맞는 말, 감독 대신 하는 말 같기도 하고 단장의 속을 시원하게 긁기도 하고.이종 격투기를 했다는 거구 진홍은 야구단에 오자마자 포수를 한다. 보호장비를 쓰고, 쪼그리고 앉았다 일어나기를 두어 시간 하면서도 “뭐, 이것쯤이야.” 하며 큰 눈으로 웃기만 한다. 시원하게 이기고 있는 경기엔 신입에게도 타격의 기회가 주어진다. 겨울 내내 양상추밭에서, 섬진강에서, 정미소에서 이순간만을 위해 타격 연습을 한 신입들. 물먹고도 행진, 파릇파릇 행진, 아삭아삭 행진.진홍의 등장에 상대 팀은 비상이다. 멀리멀리 홈런 칠까 싶어 “외야로, 외야로.” 하며 수비 강화. 9번 타자인데도 4번 타자처럼 상대 팀이 긴장하는 이유는저벅저벅 걸음만으로도 롯데의 이대호 선수를 연상케 하기 때문이다. 첫 스윙에 실력을 들키면 “안으로, 안으로.” 하며 수비는 다시 제자리.사회인 야구단 ‘어쭈구리.’ 신입생이 있어 더 생생하고 싱싱하다. 이기거나 진지한 것도 좋지만 처음처럼 모르고 서투르면 어때. 한 잎 한 잎 모여 단단하고맛있게 자라는 양상추처럼, 작지만 야무진 동그라미를 그리는 야구공처럼 우리도 잘할 수 있을 텐데.“형, 형, 우리 좀 해요!”석민재 님 | 시인, 어쭈구리 야구단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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