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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좋은생각

[햇살 마루] 의자 버리기

우리는 그 의자를 겨울에 버렸다. 신혼 가구를 마련할 때같이 온 네모난 화장대 스툴(등받이와 팔걸이가 없는 작은 의자)이었다. 다리 한쪽이 삐걱거린 게 몇 년 전부터 였는지 기억나지 않지만 내가 잠깐씩 앉기에는 문제 될 것이 없었다. 하지만 아이가 높은 곳에 있는 것을 꺼내려고 의자를 딛고 올라서는 걸 본 날 나는 의자를 버려야겠다고 생각했다.

 

의자 폐기 비용은 이천 원이었다. 경비실에서 구입한 동그랗고 작은 납부필증 스티커를 의자 한쪽에 붙이고 아이와 함께 엘리베이터를 탔다. 엄청 무거운 것을 협동해서 든 것처럼 아이가 의자 다리 한쪽을 잡고는 신이 난 얼굴로 앞서 걸었다. 우리는 의류 수거함 옆에 의자를 조심스레 내려놓고는 너무 추워서 어쩔 수 없다는 듯 다시 안으로 후다닥 뛰어 들어왔다.

 

다음 날부터 한파가 이어졌다. 배수관 동파로 물이 역류할 수 있으니 세탁기 사용을 자제하라는 안내 방송이 계속됐다. 베란다 유리창으로 여러 모양의 성에가 피어났다. 고층이라 바람이 거셌다. 아이한테 패딩 점퍼를 입히고 문을 열어 환기를 시키다가 나는 베란다 창문에 붙어 섰다. 저만치 아래로 경비실 건물이 작은 독채처럼 내려다보였다. 경비실 건너에는 벚나무가 있었고(꽃이 피는 4월의 며칠을 빼고는 그게 벚나무라는 걸 일 년 내내 잊고 살지만) 나무 옆으로 음식물 쓰레기통, 그 옆으로 초록색 의류 수거함, 그 옆으로 우리 집 의자가 갈색 점처럼 놓여있었다.

 

화장대 의자에 앉았던 시간이 얼마나 될까. 직장 다닐 땐 출근 시간에 쫓겨 늘 서서 화장을 했다. 아이를 낳은 뒤에는 주로 물티슈와 체온계 같은 것들이 올려져 있었다. 의자를 밀고 다니며 걸음마 하던 아이는 좀 자라자 거기에 인형들을 올려놓고 섬 놀이를 했다. 집에 손님들이 와서 식탁 의자가 모자랄 땐 보조 의자로 썼다. ‘아직도 안 가져갔네.’ 생각하면서 나는 베란다 창문을 닫고 들어와 인터넷 쇼핑몰에서 비슷하게 생긴 의자를 검색했다. 

 

다음 날 아이와 외출했다 돌아오다가 나는 의자가 아직도 그 자리에 놓여 있는 것을 보았다. 아이가 “우리 의자다!” 외치고는 달려가서 앉았다 일어났다 했다. 내놓을 때는 몰랐는데 수거함 옆에 덩그러니 놓인 의자를 보니 아이가 언젠가 붙여 놓은 디즈니 공주 스티커가 다리께에서 반짝이고 있었다. 

 

다음 날엔 눈이 내렸다. 나는 베란다 창문에 붙어 서서 네모난 의자 위로 쌓이는 눈을 내려다보았다. 같은 동에 사는 수십 명의 사람이 매일 우리 집 의자를 쳐다보면서 지나다닌다고 생각하자 기분이 이상했다. 눈이 올 때만이라도 잠시 들여놓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눈이 그친 오후에 앞을 지나다가 아이는 역시나 “우리 의자다!”를 외치며 달려갔다. 그러고는 의자에 쌓인 눈 위에 글자를 써넣었다. “수거차가 이번 주는 쉬나보다.” 하는 얘기를 나누며 아이와 엘리베이터를 탔다. 다음 날에 환기를 시키면서는 ‘오늘도 안 가져갔구나, 아직이구나.’ 하고 의자를 오래 확인했다.

 

날은 계속 추웠다. 다음 날 저녁, 음식물 쓰레기를 버리러 나갔다가 나는 의류 수거함 옆에 한참을 서 있었다. 우리 집 의자가 놓였던 자리가 텅 비어 있었다. ‘신호라도 주고 가지.’ ‘아이한테는 뭐라고 말하지.’ 하는 생각들이 지나갔다. 가로등에 비친 내 그림자를 보면서 휴대 전화를 꺼내 의자가 있었던 자리를 찍었다. 주문한 의자는 금세 도착했다. 아이는 우리 의자는 잊은 듯 새 의자에 인형들을 올려놓고 다시 섬 놀이를 했다.

 

환기할 때마다 베란다 창에 붙어 서서 의류 수거함 쪽을 멍하니 내려다보는 습관은 의자를 버린 그해 겨울에 생겼다. 봄이 온 뒤에도 나는 의자를 내놓았던 그 주의 사진들을 종종 열어 보았다. 손만 대도 깨질 것처럼 하얗게 언 창문이나 며칠을 내리 분리해 놓은 세탁기 호스. 섬이 없어 육지로 나와 놀던 호랑이 인형들. 눈을이고 있는 벚나무 가지와 지난 시간들을 모아서 붙박아 놓은 듯한 갈색 점. 점을 덮은 눈. 눈 위로 아이의 손가락이 지나간 자국, 엄마 아빠 사랑해요, 덤처럼 그려 넣은 하트 하나.

 

최은미 님 |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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