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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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좋은생각

[오늘의 만남] 시간은 기다리지 않는다

작년 여름의 일이다. 약속이 있어 버스를 타고 시내에 가는 길이었다. 버스는 중랑천을 지나 외대 역을 향했다. 바깥에는 뜨거운 햇빛이 쏟아지고 버스 안은 냉기가 제대로 돌지 않아 후덥지근했다.

 

맨 뒷좌석에 앉은 나는 지하철로 갈아타기 위해 버스에서 내리려 일어섰다. 중간쯤에서 한 여자도 급히 일어섰다. 그녀는 위아래 보랏빛 여름 등산복을 입고 있었다. 앞 좌석 손잡이를 잡고 일어서려다 빈자리에 앉기 위해 다가온 다른 승객과 몸이 부딪쳤다. 그 승객은 얼굴을 잠시 찌푸렸다. 그녀는 버스가 흔들려 몸이 비틀대면서도 뒷문 쪽 기둥을 오른손으로만 부여잡았다. 왼팔은 직각으로 구부러진 채 옆구리에 단단히 붙어 있었다. 옆에서 보니 입이 미세하게 뒤틀려 있었다. 나는 그녀와 눈을 마주치지 않으려 고개를 살짝 돌렸다. 흰 티셔츠와 군청색 반바지를 입은 키 큰 청년이 뒷문 앞에서 멀거니 버스 노선도를 보고 서 있었다.

 

버스가 정거장에 도착하자 뒷문이 열렸다. 청년이 내리고 여자가 내리고 내가 내렸다. 그녀는 왼쪽 다리도 불편한지 발을 살짝 끌었다. 그녀는 펴지지 않는 왼팔을 옆구리에 붙이고 빠르게 인도에 올라섰다. 그때 청년이 한마디 했다. “엄마, 왜 그렇게 빨리 가? 천천히 좀 가요.”

 

나는 그 둘이 모자지간이라는 것을 상상도 못했기에 멈칫했다. 그녀가 그렇게 빨리 걸어간 것은 아들에게 방해가 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녀는 대답도 하지 않고 지붕이 맞닿아 그늘진 골목으로 들어섰다. 청년도 뒤를 따랐다. 나는 그들과 헤어지고 지하철역으로 가는 동안 북받쳐 오르는 눈물을 참으려 애썼다. 어머니에게 퉁명스레 말하는 그에게서 내 모습을 봤기 때문이다.

 

시간은 우리를 기다려 주지 않지만 우리는 그것을 종종 망각한다. 그 망각을 뚫고 자신과 부모의 시간이 엇갈려 흘러감을 깨닫는 순간, 그 거리는 우리를 한없이 슬프게 한다. 내가 무슨 수를 쓴다 한들 그 시간을 따라잡을 수 없는 것이다. 나는 지하철이 오기 전까지 울음을 막기 위해 주먹 쥔 손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지하철이 다가오는 것을 알리는 종소리가 내 귓가를 때렸다.

 

신철규 님 |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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