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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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좋은생각

[특집] 사소한 것을 극복해 나가는 사람들

오늘 식탁에는 우리 가족이 제일 좋아하는 삼겹살이 올랐다. 나는 상추에 고기 한 점을 올려 아버지 입에 넣어 드렸다. 이렇게 사소한 일이 행복하고 감격스러워 순간 울컥했다. 

 

내가 초등학생 때 아버지는 설암에 걸렸다. 마른기침과 쉰 목소리, 혀에 돋은 좁쌀. 아버지는 이런 증상을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차도가 없자 어머니에게 등 떠밀려 간 동네 병원에서 대학 병원으로 가라는 소견서를 받았다. 그리고 설암 진단이 내려졌다. 암도 두려운데 ‘혀에 생긴 암’이라니. 게다가 병은 많이 진행된 상태였다. 아버지에게는 두 가지 선택이 있었다. 수술할 것인가, 말 것인가. 수술하지 않으면 전이되어 남은 시간은 길어야 십 개월이라고 했다. 하지만 그 수술조차 국내에서 단 한 번 시행되어 성공 여부를 확답할 수 없었다. 혀는 3분의 1만 보존할 수 있다고 했다. 한쪽 턱과 볼을 절개하고, 전이가 의심스러운 기관지도 동시 개복 수술을 해야 했다. 허벅지 살을 볼에 이식하고 목에 구멍도 뚫어야 했다. 듣는 것만으로도 끔찍했다. 그러니 쉽게 결정할 수가 없었다.

 

아버지는 운이 좋아 수술에 성공하더라도 불편한 몸으로 엄마와 내게 짐만 될 거라고 생각했단다. 의사는 그 마음 이해한다며 아버지와 같은 수술을 한 첫 번째이자 유일한 환자를 만나게 해 주었다. 아버지 마음을 움직인 건 뜻밖에도 그의 아내가 건 전화였다.

 

“가족을 위해 용기 내세요. 우리는 그이가 살아 있는 것만으로도 고맙습니다.”

아버지가 수술을 결심하자 모든 것은 빠르게 진행되었다. 아버지는 수술실로 들어가기 전 “나중에 보자, 우리 딸.” 하고 말했다. 그리고 반나절이 지나 그 문에서 다시 나왔다.

 

아버지는 한동안 중환자실에 있었다. 나는 할머니 집에 머물며 아버지를 볼 날만 손꼽아 기다렸다. 한 달 뒤 아버지를 보러 가기 전, 절대 울지 않겠다고 몇 번이나 다짐했다.

 

병실에는 아버지가 아닌 다른 사람이 있었다. 나를 향해 벙긋벙긋 입을 벌려도 바람 소리만 났다. 애써 눈물을 삼켰다. 다행히 수술은 잘됐지만 오랫동안 병원 생활을 했다. 퇴원하고도 그 기간만큼 방사선 치료를 받았다. 아버지는 미음만 먹으면서 그 힘든 시간을 버텨 냈다. 그리고 녹음기를 사서 “아, 야, 어…….” 하며 아이가 처음 말을 배우듯 연습했다. 매일 저녁 베란다에 나가 녹음기와 씨름하며 점점 긴 단어와 문장을 익혔다.

 

언젠가 거울을 보던 아버지가 “수술 부위에 다시 혓바늘이 돋았네.”라고 말했다. 가족 모두 혼비백산해 병원을 찾았다. 의사가 핀셋으로 꺼내 보여 준 건 어제 먹은 된장국에 든 팽이버섯. 그제야 우리 가족은 안도하며 웃었다.

 

때론 이렇게 가슴을 쓸어내리지만, 매일 사소한 것에서 행복을 경험한다. 밥을 먹고, 말하고, 외출하고, 남들에겐 당연한 걸 해내기 위해 노력하는 아버지를 사랑하고 존경한다. 혹시 비슷한 상황에서 수술을 고민하는 분이 있다면 용기 내라고 말하고 싶다. 당신이 어떤 모습이든 사랑할 가족이 있으니 걱정하지 말라고.

 

구민정 님 | 경남 김해시 

제13회 '생활문예대상' 대상 - 사소한 것을 극복해 나가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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