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생각

장바구니0

이달의 좋은생각

[햇살 마루] 내가 본 최고의 엄마

야생의 초식 동물들은 새끼를 낳으면 그들이 두 다리로 일어서서 젖을 찾아 먹도록 응원한다. 일어나지 못한다고 해서 부축하거나 몸을 숙여 젖을 물리는 경우는 별로 없다. 육식 동물들은 새끼들이 젖을 떼면 직접 사냥할 수 있도록 작은 동물을 잡아다 놓고 훈련을 시킨다. 조류도 새끼들의 날개가 여물 때까지만 돌보다가 독립을 시키는데 이때 날지 못하는 새끼에게 매우 냉정하다.

 

동물만 그러한가. 옛날 부모들은 아이들을 강하게 키우려고 노력했다. 동물의 세계와 똑같았다. 어디 부모뿐인가, 마을 사람들도 함께 키워 주었다. 잘못을 보면 꾸짖어 아이들을 단단하게 키우는 데 한몫을 했다. 세상이 많이 변했다. 요즘 부모들은 아이들을 어화둥둥 품에 안고 키운다. 그것을 사랑이라고 착각하면서.

 

나는 초등학교 교사로 삼십팔 년간 근무하다 명예퇴직을 했다. 삼십팔 년이 만만한 세월인가? 퇴직한 지 어느덧 구 년째에 접어들지만 생각과 행동은 아직도 학교 울타리를 넘지 못하고 있다. 식당에서 뛰는 아이를 붙들고 ‘얘야, 먼지 나니까 뛰지 마라. 그러는 것 아니다.’공공장소에서 큰 소리로 떠드는 아이를 보면 ‘여기 있는 다른 사람들을 생각해서 예의를 지켜야지. 그러지 마렴.’ 하고 가르치고 싶어 입이 근질근질하고 온몸이 비틀린다. 그러나 인내심을 가지고 참는다.

 

처음부터 이렇게 비겁했던 건 아니다. 퇴직하고 금방은 사명감을 가지고 애들을 가르쳤다. 그랬더니 부모들이 야단이었다. 

“웬 참견입니까. 우리 아이 기죽이지 마세요.” 

마을 사람들이 함께 키운 아이들은 묵은 전설이 되었다. 그래서 나도 바뀌고 말았다.

 

식당에 아이들이 있으면 멀리 자리 잡고 앉았다. 공공장소에서 애들이 떠들면 외면하고 그들이 갈 때까지 기다렸다. 이런 답답한 세태를 나만 느꼈겠는가? 어떤 사람은 우리나라 앞날이 캄캄하다고 한탄한다. 그러면 나는 절대 그렇지 않다고 반박한다. 내가 이렇게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이유는 한 엄마 때문이다. 내가 만난 최고의 엄마.

 

몇 년 전 일이다. 케이티엑스(KTX)를 탔는데 통로를 사이에 두고 젊은 엄마와 어린 아들 둘이 앉아 있었다. 엄마도 책을 읽고 네다섯 살쯤 된 아이들도 책을 읽는 중이었다. 그림책을 금방 다 읽은 아이들은 몸을 비틀었다. 나는 그 순간 ‘아, 조용히 여행하기는 틀렸구나.’ 하고 조마조마했다. 큰아이가 화장실을 가겠다고 했다. 엄마는 다녀오라고 했다. 큰아이가 가자 작은아이도 따라갔다. 이쯤에서 나는 그 엄마를 유심히 바라보게 되었다. 다른 엄마들 같으면 큰아이부터 화장실에 데리고 왔다 갔다 했을 텐데 그녀는 무심히 책만 읽었다.

 

화장실에 다녀온 두 아이는 몸을 더욱 비틀었다. 큰아이가 또다시 화장실에 다녀오겠다고 하자 엄마가 책에서 눈을 떼더니 엄하게 말했다.

“방금 다녀왔잖아.”

“오줌 마렵단 말이에요.”

작은아이도 덩달아 화장실에 가고 싶다고 했다. 그러자 엄마는 탁자에 신문지를 펼치더니 이렇게 말하는 게 아닌가.

“너희 운동화 잠깐 벗어 봐.”

“…….”

아이들은 운동화를 벗어 신문지에 올려놓았다. 끈이 달린 운동화였다. 엄마가 운동화 두 켤레의 끈을 모조리 풀었다.

“자, 아까처럼 운동화 끈을 한번 꿰어 볼까?”

 

나는 하마터면 박수를 칠 뻔했다. 두 아이는 열심히 운동화 끈을 꿰기 시작했고 엄마는 다시 책을 읽었다. 아이들 운동화는 작아서 아무래도 끈을 꿰기가 더 어렵다. 하지만 두 아이는 집중해서 끈을 꿰고 잘못 꿰면 다시 풀어 나갔다. 그 모습이 퍽 즐거워 보였다. 내가 만난 가장 지혜로운 엄마였다. 책 읽는 엄마의 모습을 보여 준 것만도 훌륭한 교육이다. 기차 안에서 조용하도록 기지를 발휘한 건 또 어떤가. 아이들이 흥미를 가질 만한 놀이를 만들어 심심할 틈 없게 해 주었다. 운동화 끈을 꿰면서 아이들의 소근육도 자극되니 그처럼 좋은 일이 없다.

 

내릴 무렵 엄마는 신문지를 치우고 탁자를 닦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때 본 엄마의 지혜는 시간이 흐른 지금도 내 가슴속에 감동으로 남아 있다.

우리나라 오천만 명의 인구 중에서 지혜로운 엄마가 어디 그녀뿐이겠는가? 우리가 몰라서 그렇지 곳곳에 그녀 같은 엄마가 많을 거라고 나는 믿는다.

 

소중애 님 | 동화 작가 

 

    


고객문의

  • 정기구독02 - 337 - 0332
  • 다량문의02 - 330 - 03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