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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살 마루] 게으름과 집요함의 대결
2018.01.04   조회수 : 648    댓글 : 2개

신랑은 게으르다. ‘내일 할 수 있는 일을 왜 오늘 하는가?’가 그의 태도다. 게으르다는 나의 평가를 확인시켜 주기 위해 수많은 사례를 열거할 수 있지만 굳이 세상에 대놓고 자랑할 거리는 되지 못하므로 생략하기로 한다. 여느 부부처럼 나는 그의 게으른 태도를 바꿔 보려고 무던히도 싸우다 번번이 장렬하게 실패했다.  

 

지난해 초, 신랑의 게으름에 집요하게 맞서는 이를 만났는데 A(에이) 보험 회사의 K(케이) 사원이었다. 그의 집요함은 마치 날카로운 창과 같아 신랑의 게으름 방패를 수도 없이 찔렀다. 그는 나처럼 쉬이 나가떨어지지 않았다.  

 

K 사원의 집요한 덫에 덜컥 물린 건 나였다. 신랑의 보험을 들어야 한다는 사명감으로 그의 영업 전화에 긍정적인 반응을 한 것이 시작이었다. 당시 신랑은 보험료가 연체되어 새로 가입하는 편이 나은 지경에 이르렀다. 하지만 앞서 언급했듯이 신랑은 게을렀다. K 사원이 수없이 전화해도 만나지 않았고, 내가 아무리 설득해도 넘어오지 않았다. 그의 대답은 한결같았다. “나중에.” 어쩔 수 없이 가입 제안서를 받고 이해도 되지 않는 설명을 들어야 하는 것은 오롯이 나의 몫이었다. 집에 가져온 가입 제안서는 텔레비전 리모컨처럼 방에서 굴러다니기만 할뿐, 신랑의 손까지 가지 못했다. 그래도 K 사원은 포기하지 않았다. 그의 노력은 눈물겨웠고 가열했고 존경스러웠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의 노력이 뜨거워질수록 신랑은 여전한데 나만 점점 괴로워졌다. 신랑이 빨리 보험에 가입하기를 K 사원만큼이나 열망하기에 이르렀다. 나는 봄여름 내내 신랑을 열심히 겁주고 또 구슬렸다.

 

그 정성이 신랑의 마음에 닿은 걸까? 팔월의 마지막 날, 신랑과 K 사원의 만남이 이루어졌다. 이날이 결전의 날이 된 건, 보험 회사는 6개월 단위로 나이를 측정하기 때문에 9월부터 보험료가 10퍼센트 인상된다는 K 사원의 조언과 나의 닦달 때문이었다. 신랑과 나는 그와 마주 앉아 두어 시간 동안 설명을 들었다. 신랑은 힘들어했고 질문에만 대답하길 요구했고 본론에만 집중하길 원했지만, K 사원은 극도로 친절했고 사설이 길었고 잡다한 정보가 많았다. 하지만 나는 오늘로 이 모든 여정을 끝낼 수 있다는 생각에 다소 들떠 있었다. 그의 긴 설명이 끝났을 때, 신랑의 대답은 간단했다. “생각해 보겠습니다.” 젠장! 6개월을 생각했는데, 또 생각을 한다니. 아들이라면 머리라도 쥐어박고 싶었다.

 

“자기야, 그냥 가입해.” “뭘 그냥 가입해? 20년이나 내야 하는데. 잘 알아보고 해야지.” 어이가 없었다. 퍽이나 알아보겠다. 내가 보험 얘기를 하면 갑자기 “모기가 들어왔나? 또 왱왱댄다.”라며 농으로만 받아치던 사람이.

 

“내일이면 10퍼센트 인상된다잖아. 나이도 있는데 보험료만 더 오르지, 빨리 가입할수록 좋은 거야.” “솔직히 이 보험은 보장 내용이 나랑 안 맞아.” K 사원과 나의 공로를 무너뜨리는 한 방. 하지만 K 사원은 끝까지 부드러움을 잃지 않았다.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고 꼭연락 달라고 부탁한 후 돌아섰다. 그의 뒷모습이 쓸쓸했다. 그리고 난 한없이 허무했다. 그동안 뭘 위해 공들인건가? 신랑의 게으름을 잘알면서 잠시 과소평가한 건아니었나?

 

신랑은 카페를 나오면서 여유롭게 얘기했다. “어휴, 내게 별로 필요한 보장도 아닌데 왜 그렇게 들라고 했어? 이제 연락 오면 딱 잘라서 말해.” 더 이상 대거리를 하고 싶은 마음도 없었다. 난 그저 마음속으로 소리쳤다. “그래, 당신이 이겼다. 좋겠다,게을러서. 좋겠다, 여유로워서.”

 

그렇게 신랑이 이기는 걸로 게임은 종료된 줄 알았다. 적어도 가을까지는. 10월의 마지막 날, 뜸하던 K 사원에게서 다시 전화가 오기 시작했다. 결전의 날 이후 완곡하게 신랑의 뜻을 전했기에 K 사원이 포기한 줄로 굳게 믿었다. 하지만 2차전의 포성을 알리는 그의 목소리는 들떠 있었다. 내년에 새로 출시될 보험 내용이 기가 막히다며, 신랑이 여름에 보험을 안 든 게 오히려 다행인 듯싶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나도 모르게 탄성이 새어 나왔다. “아아.” K 사원은 다시 일어선 거다. 그의 집요함을 잠시 얕보았다. 그는 더욱 단련되었는지 전화를 끊은 후, 바로 바로 보험 상품들을 문자 메시지로 보냈다. 나는 반복되는 진동음을 들으며 혼잣말을 했다. “유 윈(You Win, 당신이 이겼다)!”

 

2차전의 서막이 밝았지만 그 둘은 다시 만나지 않을지도 모른다. 대결이 끝나지 않는 이상, 이 게으름과 집요함의 대결에서 누가 이길지 모를 일이다. 단지 신랑은 게으름에서 이겼고 K 사원은 집요함에서 이겼는데 나만 실컷 두들겨 맞고 녹다운되었다. 신랑은 같은 말만 되풀이한다. 자기가 알아서 한다고. K 사원은 계속 전화한다. 신랑과 얘기해 보았느냐고.

 

하여 난 새해를 맞으며 결심한다. 내 일이 아닌 일에 끼어들지 않겠다. 함부로 신랑의 태도를 바꾸려는 만용은 부리지 않겠다. 그건 내 일이 아니야(It’s not my business)!

 

이미경 님 | 극작가

 


 

댓글 (2)

유지호
2018.0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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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성을 바꾼다는 것이 만용님을 알지만,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는게 많은 인내를 필요로 합니다. 저도 올 한해 여유를 가지고 사람들을 바라보고자 다짐해 봅니다. 글 잘 읽고 갑니다.
coms333
2018.01.06
다른 사람의 성격을 개조(?)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닌가 봅니다. 주변에 저도 정반대의 성격을 가진 친구가 있는데 신기하게도 서로 터치 안하니까 친구로서 더 오래가네요. 글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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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좋은생각
[햇살 마루] 곁을 준 사람
2018.01.08   조회수 : 857    댓글 : 1개
이제 다섯 살이 되는 딸아이는 잠들기 전에 종종 책을 들고 내 방으로 와서는 읽어 달라 한다. 어느 날 함께 책을 읽는데 폭풍우와 번개가 나왔다. 아이가 번개를 무서워하기에 나는 무서워할 필요가 없다며 달랬다. 번개가 치는 날이면 불꽃놀이를 보듯 아빠와 함께 보자고 했다. 그러자 아이가 겁먹고 쓸쓸한 얼굴로 내게 물었다. “그때 아빠가 없으면 어떡해?” 나는 아이를 꼭 껴안았다.아버지는 내가 중학생일 무렵 트럭 행상을 시작했다. 워낙 소농이었던 터라 농사라고 할 것도 없었지만 그나마 유일했던 두어 마지기의 논을 팔아 버린 뒤 1톤 중고 트럭을 구입했다.트럭 행상이 만만할 리가 없었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새벽부터 늦은 밤까지 트럭을 몰고 이 마을 저 마을을 떠돌았지만, 농사를 짓던 때보다 살림이 나아지기는커녕 외려 기우는 듯했다. 아버지의 실패를 증명이라도 하듯 집 안 곳곳에 팔지 못한 물건만 쌓여 갔다. 옷, 그릇, 신발 따위가 쌓이는 건 그럭저럭 견딜 만했다. 이 모든 실패에도 교훈을 얻지 못한 아버지는 트럭 짐칸에 닭장을 짜고 닭을 팔러 다녔다. 그 닭의 대부분은 우리 집 닭장에서 늙어 갈 수밖에 없었다. 다음으로 아버지는 트럭 짐칸에서 닭장을 헐어 내고 커다란 함지박에 닭 내장을 싣고 다녔다. 가스통에 주물 버너를 연결해 솥까지 얹었다. 이 장사가 시원찮았던 건 우리 식구에게 재앙이라고도 할 수 있었다. 남은 닭 내장을 처분할 사람은 우리뿐이었기에 하루 세 끼를 닭 내장 볶음으로 때웠다. 얼마 못 가 닭이라는 말만 들어도 구역질이 날 지경이 되고 말았다.그렇지 않아도 사춘기를 지나는 터라 무척 신경질적이었던 나는 기울어 가는 집안 형편이 한심하다 못해 불쑥불쑥 화가 치밀곤 했다. 이러다가 정말 집안이 꼴깍 몰락하는 게 아닌가 싶었다. 두어 번 어머니를 대신해 아버지의 조수 노릇을 하며 트럭 행상을 따라다닌 적이 있었기에 아버지가 장사에는 영 젬병이라는 걸 잘 알았다. 그러나 아버지는 트럭을 처분하고 오롯이 농사만 짓던 시절로 되돌아갈 생각은 없어 보였다. 아버지는 어떻게든 식구를 먹여 살려야했기에 실패를 거듭해도 부단하게 새로운 상품을 물색했다.어느 해 초겨울, 감기에 걸린 어머니를 대신해 아버지를 따라나서야 했다. 아버지가 김장철 대목을 노리고 젓갈을 다루기로 마음먹은 날이었다. 깨어나 보니 이제 막 자정을 넘긴 참이었고 바깥은 옴팡지게도 추웠다. 조수석에 오른 나는 꾸벅꾸벅 졸면서도 아버지가 졸음을 몰아내려는 듯 이따금 손바닥으로 눈두덩을 문지르는 걸 보았다. 두어 시간을 달려 여수 수산 시장에 도착했을 때에도 여전히 어둡고 차가운 새벽이었다. 아버지가 경매로 젓갈을 구입하는 동안 나는 조수석에 그대로 남아 달달 떨면서 자다 깨다를 되풀이했다.어느새 희부옇게 먼동이 터 왔고 트럭 짐칸에 여러 종류의 젓갈 상자가 그득 쌓였다. 그때부터 장사는 시작인 셈이었다. 여수에서 집까지 돌아가는 동안 우리는 국도 변 모든 마을에 들러 젓갈을 팔았다. 마을 회관에 트럭을 세우면 아낙들이 나와 젓갈을 살펴보며 흥정을 했고, 거래가 이뤄지면 아버지와 나는 젓갈 상자를 어깨에 지고 그 집 부엌까지 옮겨다 주었다. 젓갈 장사는 제법 성공적이어서 오후 무렵에는 몇 상자밖에 남지 않았다. 아버지와 나는 이미 젓갈 냄새에 흠뻑 젖었다.어느 마을에서 눈 밝은 아주머니 한 분이 물었다. “오메, 아저씨! 손가락은 어찌된 거라우?” 나는 퍼뜩 정신이 들었고 곁눈질로 아버지의 표정을 살폈다. 아버지의 목소리는 의외로 흔흔했다. “탈곡기에 먹혔어라우.” 혀를 차던 아주머니는 나를 힐끔 보았다. “아들이어라?” “예, 아들이어라.” “아따, 야무지고 똑똑허게 생겼다. 든든허시겄어라.” 그 말치레에 대답하지는 않았으나 아버지의 얼굴은 오후의 식은 햇살 아래서도 유난히 해사했다.겨울 해는 짧았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은 어두웠으나 아버지는 트럭 짐칸이 텅텅 비었으므로 만선의 기쁨을 안고 귀항하는 어부처럼 흥겨워했다. 나는 귓가에 맴도는 아주머니와 아버지의 목소리를 곱씹었다. 문득 그날 새벽 아버지가 경매로 젓갈을 구매하는 동안 조수석에 혼자 남아 자다 깨다를 되풀이하면서도, 어둠에 잠겼던 바다가 기지개를 켜며 부풀어 오르는 걸 보았음을 깨달았다. 운전석에 올라타던 아버지에게서 이미 물씬 밴 젓갈 냄새를 맡았던 것도 깨달았다. 잠든 나를 깨우지 않기 위해 홀로 트럭 짐칸에 그 많은 젓갈 상자를 실었던 아버지,젓갈 냄새를 조금이라도 털어 버리기 위해 차가운 바깥에서 한동안 바람을 맞으며 기다렸던 아버지, 그러면서 조수석 차창으로 잠든 나를 들여다보았을 아버지가 선연히 떠올랐다.내가 잠든 동안에도 나를 지켜보던 누군가는 아버지일 수밖에 없었고, 나는 비몽사몽간에 아버지와 시선을 맞추고는 알 수 없는 안도감을 느끼며 다시 잠 속으로 미끄러져 들어간 거였다.나는 고개를 돌려 아버지의 옆얼굴을 보았다. 아버지는 멀리 떠나는 중이었다. 탈곡기에 손가락을 잃은 뒤 천천히 조금씩 거기에서 멀어지는 중이었다. 돌아가고 싶지 않아서가 아니라 무섭고 쓸쓸해서 다시 갈 수가 없는 거였다. 다시는 손가락을 잃고 싶지 않아서였을 것이다. 아버지는 당신이 떠나온 그곳, 오롯이 농사만 짓던 시절에 대한 두려움과 그리움을 품은 채 당신이 잘할 수 없는 일임에도 불구하고 트럭 행상이라는 미지의 세월로 끈질기게 항해해 가는 중이었다.손홍규 님 | 소설가
이달의 좋은생각
[오늘의 만남] 오천 원이면 충분해
2018.01.04   조회수 : 835    댓글 : 1개
갑자기 사위가 어두워지더니 비가 쏟아졌다. 마침 아이가 학교를 마칠 시간이었고, 나는 서둘러 우산을 챙겨 데리러 갔다. 아이는 학교 정문과 가장 가까운 건물 처마 밑에서 오들오들 떨고 있었다.“미안해, 아빠가 좀 늦었지?” “괜찮아.” 아이는 뾰로통한 표정을 애써 감추며 내가 건넨 우산을 펼쳤다. 우리는 학교 앞 핫도그 가게를 지날 때까지 아무말이 없었다. 가게 앞에는 우산을 쓴 아이들이 어느 때보다 공손하게 자신의 핫도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마침내 아이는 군침을 삼키며 말했다.“핫도그 맛있겠다.”기분도 풀어 줄 겸 하나 사 줄까 하다 용돈으로 먹으면 되지 않느냐고 물었다. 아이는 이번 주에 용돈을 하나도 안 썼지만, 남은 게 없다고 했다. “그게 무슨 말이야? 하나도 안 썼다며?” “개똥이(가명)가 컵라면이 먹고 싶은데 돈이 없다면서 빌려 달라고 했어.” “컵라면이 얼마나 한다고. 빌려주고도 남았을 거 아니야?” “천 원짜리가 없어서 오천 원짜리 그냥 줬지.” “뭐? 그냥 줬다고?” “어, 안 갚아도 된다고 했어. 나는 어차피 다음 주에 용돈 또 받을 거잖아.”나는 말문이 막혔다. 아이는 대체 뭐가 문제냐는 표정이었다.“그래도 그렇지. 컵라면만 사 주지 왜 오천 원을 통째로 줘?” “나는 컵라면이 안 먹고 싶었고 천 원짜리도 없었으니까.” “네 말도 맞는데, 용돈이 남으면 모았다가 네가 갖고 싶은 걸 살 수도 있잖아.” “난 갖고 싶은 게 없는데?” “나중에 생길지도 모르잖아.” “그건 나중 일이잖아.”더는 할 말이 없었다. 아이의 용돈은 일주일에 오천 원인데, 하나도 안 써서 다음 주로 고스란히 이월되거나 아니면 하루 만에 다 쓰곤 했다. 친구들한테 컵라면이나 아이스크림 따위를 사 주거나, 문방구 앞 뽑기로 탕진하거나. 아이는 아직 용돈을 규모 있게 쓰는 법을 모른다. 나는 말했다.“그래, 잘했다. 근데 너 용돈 안 부족해?” 아이는 세상을 다 가진 표정으로 말했다. “괜찮아. 일주일에 오천 원이면 충분해.” 어느새 비는 그쳤고, 아이는 용돈 받아서 핫도그를 사 먹겠다고 했다.권용득 님 | 만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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