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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살 마루] 게으름과 집요함의 대결
2018.01.04   조회수 : 1,329    댓글 : 3개

신랑은 게으르다. ‘내일 할 수 있는 일을 왜 오늘 하는가?’가 그의 태도다. 게으르다는 나의 평가를 확인시켜 주기 위해 수많은 사례를 열거할 수 있지만 굳이 세상에 대놓고 자랑할 거리는 되지 못하므로 생략하기로 한다. 여느 부부처럼 나는 그의 게으른 태도를 바꿔 보려고 무던히도 싸우다 번번이 장렬하게 실패했다.  

 

지난해 초, 신랑의 게으름에 집요하게 맞서는 이를 만났는데 A(에이) 보험 회사의 K(케이) 사원이었다. 그의 집요함은 마치 날카로운 창과 같아 신랑의 게으름 방패를 수도 없이 찔렀다. 그는 나처럼 쉬이 나가떨어지지 않았다.  

 

K 사원의 집요한 덫에 덜컥 물린 건 나였다. 신랑의 보험을 들어야 한다는 사명감으로 그의 영업 전화에 긍정적인 반응을 한 것이 시작이었다. 당시 신랑은 보험료가 연체되어 새로 가입하는 편이 나은 지경에 이르렀다. 하지만 앞서 언급했듯이 신랑은 게을렀다. K 사원이 수없이 전화해도 만나지 않았고, 내가 아무리 설득해도 넘어오지 않았다. 그의 대답은 한결같았다. “나중에.” 어쩔 수 없이 가입 제안서를 받고 이해도 되지 않는 설명을 들어야 하는 것은 오롯이 나의 몫이었다. 집에 가져온 가입 제안서는 텔레비전 리모컨처럼 방에서 굴러다니기만 할뿐, 신랑의 손까지 가지 못했다. 그래도 K 사원은 포기하지 않았다. 그의 노력은 눈물겨웠고 가열했고 존경스러웠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의 노력이 뜨거워질수록 신랑은 여전한데 나만 점점 괴로워졌다. 신랑이 빨리 보험에 가입하기를 K 사원만큼이나 열망하기에 이르렀다. 나는 봄여름 내내 신랑을 열심히 겁주고 또 구슬렸다.

 

그 정성이 신랑의 마음에 닿은 걸까? 팔월의 마지막 날, 신랑과 K 사원의 만남이 이루어졌다. 이날이 결전의 날이 된 건, 보험 회사는 6개월 단위로 나이를 측정하기 때문에 9월부터 보험료가 10퍼센트 인상된다는 K 사원의 조언과 나의 닦달 때문이었다. 신랑과 나는 그와 마주 앉아 두어 시간 동안 설명을 들었다. 신랑은 힘들어했고 질문에만 대답하길 요구했고 본론에만 집중하길 원했지만, K 사원은 극도로 친절했고 사설이 길었고 잡다한 정보가 많았다. 하지만 나는 오늘로 이 모든 여정을 끝낼 수 있다는 생각에 다소 들떠 있었다. 그의 긴 설명이 끝났을 때, 신랑의 대답은 간단했다. “생각해 보겠습니다.” 젠장! 6개월을 생각했는데, 또 생각을 한다니. 아들이라면 머리라도 쥐어박고 싶었다.

 

“자기야, 그냥 가입해.” “뭘 그냥 가입해? 20년이나 내야 하는데. 잘 알아보고 해야지.” 어이가 없었다. 퍽이나 알아보겠다. 내가 보험 얘기를 하면 갑자기 “모기가 들어왔나? 또 왱왱댄다.”라며 농으로만 받아치던 사람이.

 

“내일이면 10퍼센트 인상된다잖아. 나이도 있는데 보험료만 더 오르지, 빨리 가입할수록 좋은 거야.” “솔직히 이 보험은 보장 내용이 나랑 안 맞아.” K 사원과 나의 공로를 무너뜨리는 한 방. 하지만 K 사원은 끝까지 부드러움을 잃지 않았다.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고 꼭연락 달라고 부탁한 후 돌아섰다. 그의 뒷모습이 쓸쓸했다. 그리고 난 한없이 허무했다. 그동안 뭘 위해 공들인건가? 신랑의 게으름을 잘알면서 잠시 과소평가한 건아니었나?

 

신랑은 카페를 나오면서 여유롭게 얘기했다. “어휴, 내게 별로 필요한 보장도 아닌데 왜 그렇게 들라고 했어? 이제 연락 오면 딱 잘라서 말해.” 더 이상 대거리를 하고 싶은 마음도 없었다. 난 그저 마음속으로 소리쳤다. “그래, 당신이 이겼다. 좋겠다,게을러서. 좋겠다, 여유로워서.”

 

그렇게 신랑이 이기는 걸로 게임은 종료된 줄 알았다. 적어도 가을까지는. 10월의 마지막 날, 뜸하던 K 사원에게서 다시 전화가 오기 시작했다. 결전의 날 이후 완곡하게 신랑의 뜻을 전했기에 K 사원이 포기한 줄로 굳게 믿었다. 하지만 2차전의 포성을 알리는 그의 목소리는 들떠 있었다. 내년에 새로 출시될 보험 내용이 기가 막히다며, 신랑이 여름에 보험을 안 든 게 오히려 다행인 듯싶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나도 모르게 탄성이 새어 나왔다. “아아.” K 사원은 다시 일어선 거다. 그의 집요함을 잠시 얕보았다. 그는 더욱 단련되었는지 전화를 끊은 후, 바로 바로 보험 상품들을 문자 메시지로 보냈다. 나는 반복되는 진동음을 들으며 혼잣말을 했다. “유 윈(You Win, 당신이 이겼다)!”

 

2차전의 서막이 밝았지만 그 둘은 다시 만나지 않을지도 모른다. 대결이 끝나지 않는 이상, 이 게으름과 집요함의 대결에서 누가 이길지 모를 일이다. 단지 신랑은 게으름에서 이겼고 K 사원은 집요함에서 이겼는데 나만 실컷 두들겨 맞고 녹다운되었다. 신랑은 같은 말만 되풀이한다. 자기가 알아서 한다고. K 사원은 계속 전화한다. 신랑과 얘기해 보았느냐고.

 

하여 난 새해를 맞으며 결심한다. 내 일이 아닌 일에 끼어들지 않겠다. 함부로 신랑의 태도를 바꾸려는 만용은 부리지 않겠다. 그건 내 일이 아니야(It’s not my business)!

 

이미경 님 | 극작가

 


 

댓글 (3)

유지호
2018.01.06
삭제
천성을 바꾼다는 것이 만용님을 알지만,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는게 많은 인내를 필요로 합니다. 저도 올 한해 여유를 가지고 사람들을 바라보고자 다짐해 봅니다. 글 잘 읽고 갑니다.
coms333
2018.01.06
다른 사람의 성격을 개조(?)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닌가 봅니다. 주변에 저도 정반대의 성격을 가진 친구가 있는데 신기하게도 서로 터치 안하니까 친구로서 더 오래가네요. 글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홍종호
2018.01.31
삭제
사람은 고쳐 쓰는게 아닌가봅니다.. 저도 마찬가지로 너무나 게으릅니다..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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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좋은생각
[햇살 마루] 이름 모를 직원의 친절
2018.04.06   조회수 : 1,185    댓글 : 0개
뭔가 허전하다는 걸 깨달은 건 페루 리마 공항의 출국 심사대 앞에서였다. 뭐지? 갸웃거리며 호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지갑! 여권과 탑승권을 대조하는 직원에게 말했다.“제가 지갑을 잃어버렸네요. 다시 가 봐야 할 것 같아요.”“그래요? 빨리 다녀오세요.”직원에게서 여권과 탑승권을 돌려받자마자 걸음을 재촉했다.검색대를 거치며 바구니에 지갑을 꺼내 놓고 그 위에 노트북을 얹었다. 스캐너를 통과한 바구니에서 옷과 배낭, 노트북만 챙긴 것이다. 다행히 내가 거친 검색대를 기억해 거기에 서 있는 직원에게 물었다.“제가 지갑을 두고 왔네요.”“어떤 사람이 집어 가는 걸 보았어요.”직원은 침착하면서도 민첩했다. 탑승권을 보여 달라더니 시간을 확인하고, 옆의 직원을 불러 자기 자리를 맡겼다. 근처에 있던 경비원과 함께 “시시 티브이를확인해 보겠다.”라며 벽 쪽의 의자를 가리켰다. “저기 앉아서 기다리세요.”신속한 대응이 미더웠다. 의자에 앉아 지갑에 뭐가 들었더라, 점검했다. 에콰도르 신분증은 복사해 코팅한 거다. 여기 친구가 “신분증 잃어버리면 복잡해진다.”라고 일러 줘 원본은 집에 뒀다. 현금도 얼마 없고, 에콰도르 은행 현금 카드……. 조목조목 짚다가, 문득 이번 여행을 두고 ‘오버’라던 Y(와이)의 말이 떠올라 그 와중에도 허탈한 웃음이 새어 나왔다.“언니, 이건 오버 한 거야!”숙소로 찾아온 Y가 말했다.페루의 수도 리마에 사는 Y는 내가 머무는 에콰도르로 와서 일주일을 함께 보낸 적 있다. 그녀가 리마에 다녀가라 할 적에도 나는 “일을 어느 정도 마치면 그때나.” 하고 사양했다. 그런 내가 후배를 데려다주겠다며 선뜻 리마에 왔으니 Y가그렇게 말할 만했다.남미 여행차 내가 사는 곳에 들른 후배 덕분에 갈라파고스와 정글 관광을 했다. 뜻밖의 선물 같은 시간이었다.후배의 다음 여정은 리마로 가서 동행인을 만나 남미를 함께 여행하는 거였다.그런데 후배가 난감해했다. 동행인을 리마의 버스 터미널에서 만나기로 했는데,그가 자신이 어느 터미널로 올지 모르니 나중에 알려 주겠다고 했단다. 리마에는시외버스 터미널이 여러 군데다.후배는 밤늦게야 리마에 도착할 예정이었다. 동양 여자 혼자 남미에서 밤길을?Y가 잘 아는 택시 기사를 공항에 보내겠다고 했는데도 걱정스러웠다. 그래서 내가 따라나섰다. 내 마음 편하자고,후배를 데려다줄 겸 Y도 만날 겸급히 떠난 여행이었다.후배가 예약해 둔 비행기는 내항공편보다 20분 일찍 출발했다.후배는 “공항에서 기다릴게요.” 하고 먼저 떠났다. 한데 내가 리마 공항에 도착했을 때 후배는 없었다.전광판을 보니 그 비행기가 지연되고 있었다. 후배는 밤 11시가 넘어서야 출국장 게이트로 나왔다. 우리는 Y가 보내준 기사의 차를 타고 밤길을 달려 숙소에 안전하게 도착할 수 있었다. ‘오버’의 보람이 있었다.다음 날은 후배랑 둘이 시내를 구경했다. 뜻밖의 복병이 나타났다. 어지럼증.걷다가도 머릿속이 띵하며 아찔해졌다. 해발 고도 약 2,500미터인 곳에서 살다가바닷가인 리마로 온 후유증이었다.그다음 날, Y는 시내 관광을 시켜 주겠다며 숙소로 찾아왔고 나는 말없이 수긍했다. 리마 공항에서 ‘오버’의 효과를 보았으니까. 혼자 시간을 보내고 싶다는후배를 남겨 둔 채 Y의 차에 올랐다. 유명하다는 식당에 가서 세비체(해산물을 회처럼 얇게 잘라 레몬즙에 재워 차갑게 먹는 음식)를 먹고, 한국의 강남 비슷하다는 곳에서 커피도 마셨다. 한국 식품점에서 장을 보고 인접한 한국 음식점에서 Y가 김밥도 사 주었다. 저녁에 후배랑 먹으라면서.다음 날에도 Y는 아침 일찍 차를 갖고 와서 후배를 버스 터미널에, 나를 공항에 데려다주겠다고 했다. 우리는 후배의 동행인이 알려 준 터미널로 갔다. 거기서동행인을 만난 후배와 작별하고 Y의 차로 공항에 도착했다. 한데 여행 막바지에이런 사태가 벌어진 거다.그 많은 사람 중에서 어떻게 찾을까 싶었는데 직원과 경비원이 한 남자를 데리고 나타났다. 그의 손에는 내 지갑이 들려 있었다. 직원에게 확인해 보니 모든 게그대로였다. 집으로 돌아와 리마 공항 홈페이지 고객 센터에 ‘이름 모를 직원의친절’에 대해 고마움을 담은 글을 올렸다. 그의 신속한 대응이 없었더라면, 어떻게 집까지 올 수 있었을까.이혜경 님 | 소설가
이달의 좋은생각
[오늘의 만남] 기철이와 나
2018.03.09   조회수 : 1,723    댓글 : 1개
그리스어로 ‘가면’이란 말에서 나온 ‘페르소나’는 ‘외적 인격’ 또는 ‘가면을 쓴 인격’을 뜻한다. 영화계에서는 ‘감독의 영화 세계를 대변하는 분신같은 배우’를 지칭할 때 자주 쓴다.만화 속에도 작가의 페르소나가 있다. 1960~70년대를 배경으로 연재한 《검정 고무신》은 책 권수에비례해 등장인물도 세기 힘들 정도로 많다. 그 수많은 인물 중 나의 분신 같은 캐릭터를 한 명만 들라 하면 주저 없이 “기철이.”라고 말할 것이다.삼 남매 중 장남인 기철이는 부족한 점이 참 많다. 공부도 못한다. 경주, 다혜 등 여자 친구가 넘치는 동생 기영이에 비해 숫기 없는 기철이는 여자아이들로부터 외면당하기 일쑤다. 보통 첫째 이름을 호칭 앞에 두는 것에 반해 기철이네 부모님은 서로를 기영이 엄마, 기영이 아빠라고 부른다. 어쩐지 소외받는느낌이다.기철이는 어릴 적 나의 모습 그대로다. 부모님은 지금은 구로 디지털 단지로바뀐 구로 공단에서 동생을 키우며 벽돌 공장을 했고, 나는 부천에서 할머니와 살았다. 꽤 여러 해 그런 생활을 해서인지 같이 산 뒤에도 어색함은 오래갔다. 부모님 호칭 앞엔 늘 동생 이름이 붙었고 지금도 여전하다.국민학교 시절, 희선이를 괴롭히는 것으로 좋아하는 마음을 표현한 기철이.돌아가신 아버지가 미국에 있다고 믿는 희선이에게 “너의 아버지는 하늘나라에 있어.”라고 과격하게 말한다.이 사건으로 기철이를 나쁜 아이라고 생각하는 독자도 있다. 하지만 오해다.기철이는 실직한 아버지를 돕기 위해 신문 배달을 하고, 환등기 살 돈으로 아픈 동생에게 비싼 바나나를 사다 주는 아이다.국민학교 실과 시간에 처음 만든 햄버거를 차마 먹을 수 없어 수업 끝날 때까지 곱게 싸 두었다가 동생에게 갖다준 어린 날의 나처럼 기철이도 동생을 사랑한다. “기철아, 나는 네 마음을 안다. 약한 마음을 숨기고 싶어 애쓰는 것도말이야!”이우영 님 | 만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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