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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GAZINE] <오늘의 만남> 기억을 지키는 일

작성일2026년 07월 14일

 


 

나는 망가진 책을 수선하거나, 종이를 엮어 새로운 책을 만든다. 한국에서는 비교적 생소한 이 직업을 택한 건 우연한 기회였다. 미국 유학 당시 학교 도서관에서 일반 서적과 희귀 서적을 복원, 수선하는 일을 한 게 시작이었다. 일을 배울수록 그 매력에 빠져들어 그곳에서 삼 년을 더 보냈고, 지금은 한국에서 독립된 작업실을 운영한다.

기술적인 면에서 책 수선은 종이에 붙은 테이프를 깔끔하게 제거하거나 찢어진 부분을 붙이는 일부터 책 벌레를 없애는 일, 망가진 제본을 튼튼한 형태로 돌려놓는 일, 원래의 모습을 버리고 새롭게 탈바꿈시키는 일까지 그 범위가 넓다.

망가진 책을 고치는 것 외에도 오랫동안 모은 편지지나 메모처럼 다양한 종이류를 책의 형태로 엮는 작업도 한다.

그렇다면 사람들은 어떤 책을, 무슨 이유로 의뢰하는 걸까? 이제는 절판되어 구하기 힘든 서적이라면 시간과 비용을 들여 맡기는 이유를 쉽게 납득할 수 있다. 그러나 수선 비용보다 훨씬 저렴한 가격으로 똑같은 책을 살 수 있는 경우 그 이유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수없이 넘겨 보며 유년 시절을 함께한 단짝 같은 책, 가족에게 대대로 물려주고 싶은 책, 소중한 이에게 선물하고 싶은 책, 특별한 기억이 있는 책 등 그 이유는 다양하다.

자신만의 기억과 흔적이 고스란히 담긴 책은 세상에 단 한 권뿐이라서 아무리 똑같더라도 새 것으로 그 가치를 대체할 수 없다.

책을 수선하는 일은 생각보다 많은 시간과 체력을 필요로 한다. 게다가 대중적이지 않은 영역이라 직업을 유지하는 데 어려움도 있다.

하지만 소중한 단 한 권의 책을 오랫동안 간직하고 싶은 마음을 위해 실과 바늘로 끊어진 제본을 섬세하게 잇고, 망치로 망가진 책등을 아름답게 다듬고, 찢어진 종이를 한 장 한 장 붙이고, 떨어진 덮개를 튼튼하게 고정시킨다.

누군가의 기억을 지키는 일이라고 생각하면 힘이 난다. 그 힘으로 이 일이 사라지지 않고 꾸준히 존재할 수 있도록 지켜 간다.

 

저자 | 재영님 / 재영 책 수선 대표

사진제공 ㅣ gettyim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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