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GAZINE] <오늘의 만남> 길을 내는 편지
작성일2026년 06월 16일

삼청동과 덕수궁 돌담길에 세워진 노란 ‘온기 우편함’에는 고민 편지가 끊이지 않는다. 사람들이 가까운 이에게도 마음을 터놓지 못하고 사는 걸 알 수 있다. 글쓴이의 마음을 읽으며 답장을 쓰다 보면 손끝에도 심장이 달린 느낌이다. 사람들이 고민을 손 편지에라도 털어놓는 것이 다행이다.
삶의 이야기와 솔직한 감정이 담긴 편지들……. 어쩌면 각자의 고민을 해결하는 정답을 바라기보다 공감과 격려에 허기져서인지도 모른다. 누구나 가슴에 상처 입은 어린아이를 품고 산다. 아픔과 갈등으로 뒤척일 때 누구에게라도 속을 털어놓고 싶은 것이 사람 마음이다. 온기 우편함의 편지들을 읽다 보면 공감과 다독임이 절로 일어 펜을 든다. 절망하는 이에겐 희망의 방향키가 되기를 바라는 심정으로 한 줄 한 줄 써 나간다.
이제는 편지가 소식을 전하는 수단에서 마음을 치료하는 힘이 된다는 것에 보람을 느낀다. 작년에 보호 관찰소 청소년들을 찾아갔을 때 ‘나에게 쓰는 편지’라는 주제를 주었다. 힘든 환경에 상처받고 타인도 아프게 하는 경우를 많이 보았기에 자신과 먼저 화해하는 시간을 주고 싶었다. 그중 한 학생이 쓴 편지가 기억에 남는다.
술주정이 심한 아버지를 원망하며 시작한 편지는 어느 순간 아버지의 아픈 인생을 이해하고 싶다는 내용으로 바뀌었다. 감정을 털어 낼 시간도, 공부의 기회도 없이 일만 하다가 서툰 어른이 된 아버지는 가장의 무게를 견디다 못해 술에 의지했다. 그 모습이 싫어 반항하듯 거칠게 행동한 날들을 뒤로하고 앞으로는 아버지에게 희망이 되겠다는 자신과의 약속이 담긴 내용이었다. 곪은 아픔을 조금이나마 덜어 낸 그날, 나는 고맙고 미안한 그 아버지의 심정으로 격려 편지를 써서 학생에게 건네주었다.
사람 곁에 있어도 외로워 오히려 에스엔에스(SNS)가 편한 친구 같다는 어느 학생의 편지글이 낯설지 않다. 가족끼리도 섬과 섬처럼 지낸다는 요즘, 몇 년째 편지 쓰는 일을 하면서 손 편지가 마음에 물길을 내는 매개라는 걸 확신한다. 한 통의 편지가 소외된 이에게 작은 위로가 되면 좋겠다. 누군가는 힘을 얻고 세상의 무대로 나가 당당하게 살길 응원한다.
저자 | 노기화님 / 한국 편지 가족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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