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GAZINE] <오늘의 만남> 무대 뒤 음악가
작성일2026년 05월 22일

젊은 시절 나는 꿈이 있었다. 노르웨이에서 클래식 작곡과 영화 음악을 공부하고, 귀국해 방송 음악가와 전문 편곡자로 경력을 쌓았다. 그때만 해도 마냥 잘나갈 줄 알았다. 그러나 프리랜서 작곡가로 사는 일은 쉽지 않았다. 아내의 월급만으로는 빠듯해 아버지가 준 금 목걸이를 팔아 쓰기도 했다. 작곡가라는 꿈을 지키기에 현실은 무거웠다. 의기소침해 집에 틀어박혀 있는 날이 늘었다.
그날도 거실에서 노트북으로 일거리를 찾던 중 친구에게서 오랜만에 전화가 왔다. 서울 시립 교향악단에서 악보 위원을 뽑는 공고가 났으니 지원해 보라는 거였다. 작곡가의 꿈은 잠시 접어 두고 일단 취직해야겠다는 생각에 응했다. 나중에 알았지만 경쟁률이 130 대 1이었다. 서류 심사, 면접, 정명훈 예술감독의 면접까지 거쳐 최종 합격자가 되었다. 가장 먼저 처가에 전화했다. 벌이가 변변찮은 사위 때문에 마음고생했을 텐데 내색 한번 하지 않은 분들. 많은 이의 축하를 받으며 드디어 출근했다.
음악을 전공해서 악보는 익숙했지만, 오케스트라에서 악보를 담당하는 것은 다른 차원의 일이었다. 예기치 못한 상황에 대처하느라 매 순간 긴장의 연속이었다. 해외 투어 중 연주자가 악보를 잃어버리는 바람에 다시 구하려 동분서주했고, 야외 공연 때 갑자기 바람이 불어 악보가 날아가기도 했다. 또 한국으로 와야 할 악보가 북한으로 잘못 배송되는 웃지 못할 일도 있었다.
악보 위원의 일은 대략 이렇다. 공연할 곡이 정해지면 악보를 입수한다. 국내에서도 구할 수 있지만, 국내에 없으면 해외에 주문해야 한다. 시간이 넉넉하지 않을 적에는 악보가 제때 도착하지 않을까 봐 가슴 졸이기도 한다. 악보가 오면 현 파트 활 표시나 마디 번호 기입 등 연주가 가능하도록 준비해야 한다. 그 후 연주자들에게 나누어 주고, 공연이 끝나면 회수한다. 회수한 악보는 전용 보관실에 보관하거나 해외로 돌려보낸다.
아직 생소한 이 분야에 많은 후배가 생겼으면 해서 이 년 전 ‘한국 오케스트라 사서 협회’를 설립하고 사무국장직을 맡았다. 올해로 입사 십 년 차, 비록 작곡가는 아니지만 무대 뒤 음악가로서 내 직업에 자부심을 갖고 일한다.
저자 | 김진근님 / 서울 시립 교향악단 악보 전문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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