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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GAZINE] <오늘의 만남> 첫 줄을 쓰는 용기

작성일2026년 03월 04일

 


 

“어떻게 하면 글을 솔직하게 쓸 수 있습니까?” 글쓰기책 두 권과 산문집 한 권을 낸 뒤 독자들을 만날 때마다 나오는 단골 질문이

다. 나의 솔직한 글들이 인상적이라며 비법을 알려 달라고 한다. 처음엔 당황스러웠다. ‘솔직하게’ 쓴다는 자의식 없이 썼기에 솔직하다는 평가가 어색했다. 그럼 나는 글을 어떻게 쓰지? 솔직하게보다 ‘정확하게’ 쓰려고 노력한 거 같다. 말장난 같지만 엄연한 차이가 있다.

예를 들어 두 아이 엄마로서 육아가 힘에 부친다는 내용을 글로 쓴다고 해보자. ‘아이들이고 집안일이고 뭐고 다 내팽개치고 그냥 혼자 있고 싶었다.’라고 쓴다면 솔직한 글이지만 정확한 글은 아니다. 여기에는 ‘왜’와 ‘어떻게’가 없다. 대충 뭉뚱그리기보다 늘 구체적인 상황에서 글을 시작했다. ‘내 생일에 가족 외식을 거부했다. 아무리 근사한 레스토랑에서 밥을 먹어도 열 살, 네 살 아

이들 밥을 신경 쓰다 보면 일상의 연장으로 느껴질 뿐 특별하지 않았다. 차라리 생일 선물로 혼자 외출하는 편을 택했다.’라고 쓰는 식이다.

사건과 사례 중심의 글쓰기. 뭐가 힘든지, 왜 힘든지, 정말 힘든지 차근차근 복기하면서 내 처지를 있는 그대로 그려 나갔다. 그 과정이 간단하지는 않았다. ‘이렇게 쓰면 너무 나쁜 엄마처럼 보이지 않을까?’ ‘남들도 애 키우는데 혼자 유난 떤다고 욕하지 않을까?’ ‘평소에 엄마로서 희생하는 모습은 가려지는게 아닌가?’ 이런 목소리가 불쑥불쑥 들려와 손을 멈칫거린다.

나는 이를 ‘내면의 검열관’이라고 부른다. 글쓰기의 가장 큰 걸림돌은 소재의 빈곤도 문장력의 부족도 아닌 바로 이것이다. 검열관으로 인해 글이 생생함을 잃고 진부함의 가면을 쓴다. 이것과 맞서기 위해선 용기 그리고 욕심이 필요하다. 용기는 ‘남에게 보여지는 나’가 아닌 ‘있는 그대로의 나’를 인정하는 노력이고, 욕심은 남들도 쓰는 빤한 글이 아닌 나만의 고유한 글을 쓰겠다는 다짐이다.

글쓰기 수업을 하면서도 자주 느낀다. 좋은 글은 어김없이 ‘용기의 산물’이다. 한 학인은 아버지가 평생 막노동을 했지만 자신을 부잣집 막내딸로 보는 사람들에게 차마 사실을 말하지 못하고 아버지 직업을 건설회사 대표라고 둘러댔다고 한다. 마음에 걸렸단다. 그런데 아버지가 매일 첫차 타고 일하러 나가도 가난한 건 사회 구조의 문제지 아버지 잘못은 아니었으며, 근면함을 물려준 아버지 덕에 자신이 잘 살고 있으니 그런 아버지가 자랑스럽다는 내용이었다.

우리는 그 글 덕분에 직업의 귀천은 누가 정하는지, 왜 열심히 일해도 가난한지, 아버지 뭐하시느냐고 묻는 게 어째서 무례한 일인지 등에 대해 이야기 나누었다. 이후 그 학인은 아버지에 관한 글을 여러 차례 썼고 아버지 칠순 생신에 읽어 드렸다고 한다. 

아버지의 일과 삶을 편견 어린 사회적 시선으로 보는 데서 벗어나 있는 그대로 정확하게 바라보고 의미를 부여하는 걸 글쓰기가 도운 것이다.

한 사람이 용기 내어 쓴 글은 독자를 끌어당긴다. 그리고 용기는 전염된다. 사람은 누구나 결핍의 존재다. 신이 아니기에 완전하지 않고 사는 동안 상실과 고통을 경험한다. 부모의 죽음이나 이별을 겪기도 하고, 경제적 몰락에 내몰리기도 하고, 열심히 노력해도 대가가 없을 때가 많으며, 애인에게 갑작스러운 이별을 통보받기도 하고, 학교나 직장에서 동료의 괴롭힘으로 마음고생을 하기도 한다. 이보다 더 좋은 글감은 없다. 우리는 고통에 대해 쓸 때 그것에 저항하는 게 아니라 의미 있게 ‘수락하는 법’을 배울 수 있다.

내 경우엔 그랬다. 아무리 힘들고 속상한 일도 글로 쓰다 보면 견딜 만해졌다. 현실에서 눈 돌리지 말고 있는 그대로 쓰면 복잡한 마음이 정리됐다. 번뇌가 찾아올 때마다 글을 쓴다고 했더니 누가 물었다. 그건 감정의 배설이 아니냐고. 배설이 아니라 응시다. 감정을 쏟아 내는 게 아니라 사실을 기록하기. 가식과 허세의 가면을 벗고 자신을 마주하다 보면 ‘본래적 자아’를 만나는 보상이 따른다.

“거짓말은 대화에서보다 글에서 더 거슬리는 법.”이라고 안톤 체호프는 말했다. 모든 작가가 평생 천착한 것은 자신을 속이도록 강요하는 불의한 세상에 맞서 진짜 자기 자신을 찾아가는 일이었다. 글을 쓰는 동안 누구나 삶의 철학자, 내면의 수호자가 될 수 있다. 첫 줄을 쓰는 용기를 내어보자.

 

글 | 은유 작가

사진 |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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