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GAZINE] <오늘의 만남> 여자 친구의 시디
작성일2026년 02월 27일

여자 친구 동생의 차를 얻어 탔다. 그녀는 언니가 옛날에 만든 거라며 오래된 시디 한 장을 틀어 줬다. 자매가 함께 자라면서 비슷한 음악을 듣곤 했단다. 곡들은 시대가 다소 들쑥날쑥했다. 여자 친구가 자신이 좋아하는 곡을 모아 컴퓨터로 직접 구운 시디였다. 오랜만에 듣는 듀스의〈 여름 안에서〉는 추운 날씨에도 달콤했다. 노래들을 고르고, 시디가 구워지길 기다리는 어릴 적 여자 친구의 모습을 상상해 보았다.
듣다 보니 에스이에스의 노래가 나왔다. 다정하고 안타까운 R&B(알앤비) 발라드 〈Tell Me(텔 미)〉라는 곡이었다. 조금 의외였다. 나는 〈꿈을 모아서〉나 〈Dreams Come True(드림스 컴 트루)〉 같은 곡을 더 좋아했다. 평소 서로 취향차이를 발견하곤 해도, 이를 옛날 노래로 확인하는 재미는 남달랐다.
“이런 노래를 좋아했군요.” 왠지 웃음이 나왔다. 동생은 “이건 확실히 언니 취향이에요. 전 R&B는 별로 안 좋아했거든요.”라고 선을 그었다. 힙합이 더 좋았단다. 대체로 비슷한 음악을 들었다고는 해도 역시 달랐다. 두 사람은 실시간으로 차이를 느꼈을 테고, 나는 낡은 시디 덕에 지금 알게 된 것뿐.
어느 시기에 어떤 노래들을 좋아했는지 기록을 남기는 건 나쁘지 않은 일이다. 같은 시기, 같은 아티스트의 노래를 듣더라도 서로 다른 이유로 다른 노래를 좋아하게 마련이니. 대중음악이 그 시대를 증언한다고들 하지만, 한 사람 한 사람 따져 보면 전부 다른 얼굴을 가진 시대‘들’이다. 어른이 되어 만난 사이에는 그런 과거의 간극을 확인할 기회가 많지 않다.
이야기를 전해 들은 여자 친구는 ‘흑역사’를 들켰다고 낯간지러워했다. 그러곤 “그 노래는 내 취향이야. 동생은 R&B를 안 좋아해.”라고 말했다. 취향은 달라도 의견 조율은 잘하는 자매다.
나는 그녀에게 동생이 헤어질 때 그 시디를 내게 주려다 깜빡했다고 하더라고 전했다. 그녀는 “그걸 왜 줘?”라며 웃었다. 동생에게 시디를 없애라 하진 않을까 걱정되기도 했다. 집에 돌아온 나는 ‘어릴 적에 구웠던 시디들이 남아 있지 않을까?’ 하고 시디 장을 둘러보았다. 나의 민망한 과거를 들키지 않도록 잘 숨겨 두어야겠다고 생각하며.
저자 | 미묘님 / 대중 음악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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