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생각

장바구니0

[MAGAZINE] <오늘의 만남> 지각 산행

작성일2026년 02월 19일

 

아침 안개가 걷히지 않은 토요일 일곱 시, 사직단 정문에 여고생이 하나둘 모인다. 우리 반 학생들이다. 다섯 번 이상 지각하면 토요일 아침에 담임과 인왕산을 올라야 한다.

학급에서 자체적으로 정한 등교 시각은 일곱 시 사십오 분. 그 시각을 지키지 못한 벌로 산행하는 아이들이 토요일 일곱 시에 나온다. 놀랍지 않은가. 그나마 봄가을은 늦은 편이다. 여름엔 해가 일찍 떠서 여섯 시에 집합하기도 한다. 마지막 양심을 지키기라도 하듯 아이들은 이 지각 산행만큼은 늦지 않는다.

아, 물론 이날까지 늦게 나타나는 녀석들이 있는데 그땐 그냥 넘어가지 않는다. 정색하고 야단치면 녀석들은 잔뜩 움츠러들고 때론 눈물까지 흘린다. 이내 장난이었음을 알리고 함께 깔깔거린다.

손에 생수병 하나씩 쥐고 산을 오른다. 성곽길을 오르며 무학 대사, 국사당, 선바위 등 내가 학창 시절 들은 이야기를 해 준다. 시원한 바람이 이마에 맺힌 땀을 식히면 아이들의 눈은 더욱 초롱초롱해진다.

비가 오는 날엔 인왕산 바위가 미끄러워 하늘 공원, 노을 공원에 가기도 한다. 그래도 아이들은 인왕산을 가장 좋아한다. 성곽을 더듬으며 걷는 맛, 바위를 타고 정상에 오르는 전율을 알기 때문이다. 눈 아래로 펼쳐지는 도심 전경을 보곤 감탄을 내뱉는다. 범바위에 걸터앉아 경복궁과 옛 한양 도성 마을을 내려다볼 땐 마치 신선이 된 듯하다.

“선생님도 여기 누워 보세요. 정말 시원하고 편해요!”

인왕산의 정기를 온몸으로 빨아들이려는 듯 바위에 대(大)자로 눕는 아이들도 있다. 자연을 저렇게 원시적으로 느낄 줄 아는 아이들이 또 있을까.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보면 평소 교실에선 나누지 못했던 고민거리를 술술 털어놓는다. 녹음과 단풍 속에서 자연스레 상담이 이루어진다. 이런 뿌듯함과 즐거움 때문에 ‘지각자 산행’을 팔 년째 내려놓지 못한다.

“자, 다들 수고 많았다! 우리 순대 국밥이나 한 그릇씩 먹고 갈까?”

나는 어느덧 지갑을 연다. 아이들은 환호성을 지르며 뛰듯이 발걸음을 옮긴다. 내가 참으로 좋아하는 토요일 아침이다.

 

저자 | 이효정님 / 배화 여자 고등학교 교사

사진제공 ㅣ gettyimage

 


고객문의

  • 정기구독02 - 337 - 0332
  • 다량문의02 - 330 - 03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