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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GAZINE] <오늘의 만남> 내 목소리를 좋아하는 법

작성일2025년 11월 03일

 

낭독회가 끝나고 한 분이 수줍게 사인을 청했다. 내가 진행하는 음악 프로그램 애청자라며, 자신을 시각 장애인 도서관 낭독 봉사자라고 소개했다. 나도 낭독 봉사에 참여한 적이 있다며 반갑게 인사했다. “읽고 말하기가 직업인 저도 많이 부담스러웠어요. 안 힘드셨나요?” 그는 오 년째 봉사 중인데, 처음엔 그저 읽는 데만 급급해 도서관에 누가 되는 건 아닌지 고민이 많았다고 했다. 한 해 두 해 읽다 보니 낭독에 눈을 떴다고. 나는 맞장구쳤다. “맞아요. 무엇이든 한 가지를 오래 하다 보면 저절로 알게 되는 게 분명 있지요. 깨달음을 얻으셨습니다.”

그는 웃으며 말을 이었다. 소심한 편이라 처음엔 혼자 할 수 있는 봉사여서 시작했단다. 본인 목소리도 마음에 안 들고, 읽다가 자주 틀려서 녹음이 끝나면 힘이 쭉 빠졌다고. 한데 어느 날부터인가 낭독을 즐기는 자신을 발견했다고 한다. “무얼 읽든 상관없이 좋더라고요. 조용히 혼자 읽고 있노라면 몸과 마음이 편안해지는 게, 불공드리고 난 뒤에 찾아오는 평온함이랄까요.” 나는 사인 아래 글귀로 답했다. “나라는 악기를 오래 연주하길 바랍니다.”

우리는 대부분 낭독을 제대로 배운 적도, 즐겨 본 일도 없다. 단지 학창 시절 타의에 의해 긴장 속에서 교과서를 읽었을 뿐이니 좋은 기억으로 남았을 리 없다. 

틀리지 않고 낭랑하게 읽어 내는 것이 낭독의 전부가 아니다. 목소리가 좋지 않아도, 발음이 나빠도 내가 만난 봉사자처럼 뜻밖의 즐거움과 평안함을 얻을 수 있다. 그것을 알려 주는 사람도, 하려는 사람도 드물어 안타깝다. 

낭독은 성우나 아나운서처럼 전문적으로 목을 쓰는 사람만의 일이 아니다. 자신의 몸을 악기로 쓰는 일이고, 누구나 즐길 수 있다. 몸을 울려 세포 하나하나에 좋은 기운을 전하며, 글에 생명을 주는 일이다. 음표로만 남는 악보보다 서툰 실력으로나마 연주된 악보가 더 의미 있다. 

남들과 다른 새로운 취미를 시작하고 싶다면 혼자 하는 낭독을 권한다. 내가 나에게 주는 위로의 힘은 생각보다 크다는 걸 알 것이다. 어쩌면 생애 처음으로 스스로의 목소리를 알고, 좋아하게 되는 자신을 발견할지도 모른다.

 

이상협 님 | 아나운서

사진 출처 |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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