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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GAZINE] <과학의 눈> 최고의 탄생석

작성일2025년 10월 22일


 

아름다운 빛을 내는 희귀한 돌을 보석이라 한다. 오래전부터 사람들은 광택이 나는 예쁜 돌에 신비한 힘이 깃들었다고 생각했다. 로마인들은 토파즈(황옥)를 넣은 포도주로 눈을 씻으면 시력이 좋아진다고 믿었고, 인도인들은 토파즈에 악귀를 쫓아내는 탁월한 힘이 있다고 여겼다. 사실일까?

보석을 가공해서 파는 사람들은 이런 심리를 이용해 탄생석을 정했다. 보석마다 덕담을 달아 갖고 싶은 마음이 들게 유도한 것. 예를 들어 11월 탄생석은 토파즈로, 건강과 희망이라는 의미가 있다. 11월에 태어난 사람들은 건강을 지키고 희망차게 살길 바라는 마음으로 이 보석을 산다.

토파즈는 자연산 무기물로 이루어진 광물이다. 황옥이라는 이름이 말해 주듯 주황빛이 도는 황갈색 토파즈를 최고로 친다. 보석 상점에서는 파란색 토파즈를 많이 파는데, 이는 무색 토파즈에 고에너지 빔을 쏴서 파란빛이 돌도록 인공 처리를 한 것이다. 자연 상태에서 파란 토파즈가 나올 확률은 아주 희박하다.

토파즈, 루비, 사파이어 같은 광물의 고향은 깊은 땅속이다. 수십 킬로미터 이상 파 내려가야 닿을 수 있는 그곳은 2,000도는 넘지 않으나 1,000도는 확실히 넘을 만큼 매우 뜨겁다. 누구라도 이곳에서는 지표에서부터 1제곱센티미터당 수 톤의 압력을 견뎌야 한다. 당연히 빛도, 신선한 공기도없다.

규소, 알루미늄, 수소는 고독한 땅속에서 무섭게 조여 오는 압력을 견디며 규산염을 이루어 분자층을 한 겹 만든다. 이 원소들은 손톱 하나 들어갈 틈 없는 곳에서도 귀신같이 빈틈을 찾아 비집고 들어가 자리를 차지한 뒤 다른 원소가 오기를 기다린다.

이와 같은 일은 아주 느리게 이루어지지만 다행히 시간은 충분히 있다. 느린 것은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시간만 충분하다면 아무리 느려도 끝을 볼 수 있으니!

규산염은 좌우로 정렬하고 위아래로 결합해 세력을 넓히면서 단단한 광물이 된다.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작았던 광물은 주변보다 더욱 단단해져 둘레에 있던 암석을 밀어붙이며 크기를 키운다. 힘이 붙은 광물은 주변에 규소와 알루미늄이 있는 한, 또 시간이 주어지는 한 얼마든지 크게 자랄 수 있다.

그러나 지구는 얌전한 바윗덩어리가 아니다. 땅은 땅대로 화산이나 지진을 일으켜 지구 속에 차 있는 열을 밖으로 빼내야 한다. 그 결과 땅은 갈라지거나 휘어지거나 뒤집어지거나 꺼진다. 광물들은 이런 천재지변으로 인해 느닷없이 밖으로 밀려 나온다. 지진으로 땅이 갈라져 우연히 드러나거나, 화산이 폭발할 때 용암에 딸려 나오기도 한다.

누가 언제 빛과 공기를 만날지는 아무도 모른다. 광물에게 그런 시간은 늘 갑자기 다가온다. 어떤 광물은 오랜 시간에 걸쳐 크게 자라 바깥세상을 보는 반면 어떤 것은 성장기를 충분히 갖지 못해 조각인 채로 나온다.

사람들은 이렇게 나온 광물을 주워 갈고 닦아서 보석을 만드는데, 당연히 큰 원석을 좋아한다. 원래 덩어리가 커야 깎아 낸 후에도 큰 보석을 손에 넣을 수 있기 때문이다.

분자층을 한 겹씩 쌓아 올릴 시간이 충분했던 광물은 땅에서도 환영받는다. 채 자라지 못하고 햇빛을 본 광물은 다시 고향으로 돌아가기 전에는 더 성장하지 못한다. 마음대로 돌아갈 수도 없다.

인간이 광물에 신비한 힘이 있다고 믿는 것은 지난한 성장 과정을 느껴서인지도 모른다. 이런 성장 과정이 광물에만 의미가 있을까? 찬란한 빛을 내는 최고의 탄생석이 태어나려면 다 자랄 때까지 인내하고 기다려야 한다. 이는 광물에도 인간에게도 모두 통한다.

남에게 또 나에게 시간을 주고 기다리자. 11월 최고의 탄생석은 11월에 태어난 모든 사람이니까.

저자 | 이지유 / 작가

사진제공 ㅣ gettyim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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