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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GAZINE] <오늘의 만남> 꽃 같은 날

작성일2025년 09월 24일


 

예전에 지방에 오갈 일이 있을 때 영등포역을 주로 이용했다. 근처에 직장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날도 대전에서 기차를 타고 와 영등포역에서 내렸다.

머리가 하얀 할머니가 같은 기차에서 내렸다. 양손에 무거워 보이는 보따리를 하나씩 들고 있었다. 플랫폼을 걸어가는데 다섯 걸음 정도 가다가 짐을 내려놓고 쉬고, 또 몇 걸음 가다 쉬고 하는 것이 꽤 무거운 모양이었다. 

내가 다가갔다.

“제가 좀 들어 드릴게요. 이거 뭐예요?”

보따리는 내가 들기에도 버거울 만큼 무거웠다. 하나는 된장, 하나는 고추장이라고 했다.

“딸이 해 준 거야. 이거 미안해서 어쩌지?”

할머니는 표를 받는 출구로 누가 마중을 나오기로 했으니 거기까지만 들어다 주면 된다고 했다.

나는 할머니를 앞세우고 양쪽에 된장, 고추장 보따리를 든 채 역 출구까지 갔다. 과연 할머니를 마중 나온 사람이 있기는 했다. 할머니보다 훨씬 나이 들어 보이는, 머리가 하얗고 지팡이를 짚은 할아버지였다. 걸음걸이마저 불편해보였다.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얼싸안듯 서로 반가워했다.

“아이고, 고생했네. 잘 다녀왔소?”

“고생은 뭘. 많이 기다렸어요?”

얼마 만인지는 몰라도 그렇게나 반가워하는 모습에, 마중 나올 사람이 있다며 할아버지의 능력(?)을 믿어 의심치 않는 할머니 마음에 웃음이 났다.

할아버지가 보따리를 달라고 손을 내밀었지만 나는 다시 된장과 고추장을 양손에 들고 택시 타는 곳까지 데려다 주었다. 두 어르신은 에스컬레이터를 타면서도 서로 “조심해요.” “꼭 붙들어요.” 하면서 손을 잡았다.

할아버지, 할머니를 택시에 태우고 보따리도 실었다. 택시가 떠나는데 차창 너머 할머니가 내게 손을 흔들었다. 나도 택시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세상이 꽃 같았다.


저자 임선경 / 소설가

사진제공 ㅣ gettyim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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