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GAZINE] <오늘의 만남> 참외는 둥글다
작성일2025년 08월 27일
어김없이 참외가 배달되었다. 벌써 몇 해째 계속되는 일이다. 여기에는 민망한 사연이 있다. 몇 해 전, 결혼식 주례를 섰다가 하객으로 온 제자를 만났다. 호걸 스타일인 남학생으로 미혼이었다. 오랜만에 만나 왜 결혼 안 하느냐고 채근할 수도 없는 일. 으레 하는 인사를 건넸다. “어디 근무하니?” “예, 성주에 있습니다. 참외가 많이 나오는.”
정신없어서 그랬는지 이상한 말이 튀어나왔다. “요새 참외는 언제가 제철이야?” 제자는 대뜸 “네, 알겠습니다.”라고 답했다. 그땐 그게 무슨 말인지 몰랐다. 그 뒤로 제자는 참외 수확 철만 되면 참외를 보내왔다. 졸지에 참외를 보내라고 압력을 넣은 이상한 선생이 되고 만 셈이다.
이 이상함을 만회하려면 참외를 부지런히 나누는 수밖에 없었다. 오는 사람마다 깎아 대접하며 사연도 함께 전했다. 대학원 수업에서도 참외를 내놓았다. 한데 한 학생의 표정이 영 눈에 밟혔다. ‘이걸 누구와 같이 먹으면 참 좋을 텐데.’ 하는 표정이었다. 벌써 몇 차례 그 학생의 연로한 시어머니가 간식을 만들어 보내 주어 잘 먹은 기억이 났다. 수업이 끝나고 학생에게 참외 세 개가 든 봉지를 내밀었다.
마침 문예 창작 전공이어서 기말 과제로 글을 내도록 했다. 그 학생이 낸 수필 제목이 “참외는 맛있다!”이다. 그날 참외 봉지를 들고 버스에 탔는데 옆에 앉은 아가씨가 그랬단다. “어머, 참외 향기가 참 좋네요. 우리 엄마도 저도 참외 무척 좋아하는데…….” 그래서 한 개를 그 아가씨에게 주고, 나머지 두 개를 시어머니하고 남편과 나누어 먹었다는 내용이었다. 옛날에 참외 농사를 지어 마을 잔치를 베푼 아버지며, 늦게 심어 덜 익은 참외로 장아찌를 만들어 준 이웃 할머니 이야기까지 소담스레 담겨 있었다.
우리 아버지도 말했다. “제철에 한 번씩은 푹 먹어야지.” 아홉 식구가 먹을만큼 커다란 참외 자루를 어깨에 메고 들어선 아버지 모습이 선하다. 지난 주 그 제자를 만나 술을 한잔 사면서 이제는 보내지 말라고 일렀다. 참외가 벌써 몇 바퀴를 굴러 세상을 휘돌았으니 보내나 안 보내나 참외 향이 그득할 터다. 참외는 둥글다!
저자 | 이강엽님 / 대구 교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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