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GAZINE] <오늘의 만남> 소설 처방
작성일2025년 08월 20일

많은 책에서 이야기에는 치유의 힘이 있다고 얘기한다. 내가 이를 체감한 것은 ‘소설 처방’으로 한 의뢰인을 만났을 때다. 소설 처방은 누군가의 이야기를 듣고 그것을 짧은 소설로 풀어 내는 서비스다. 일 년여 동안 작가들과 전국을 다니며 오백여 명을 만나 다양한 이야기를 듣고 소설을 썼다. 그중 부산 행사에서 만난 한 어머니가 기억에 남는다.
“딸이 6개월 전 가출했어요.” 첫마디를 듣는 순간 머리가 멍해졌다. 나 역시 두 아이의 엄마이기에 그분이 겪은 상심과 아픔이 고스란히 다가왔다.
열여덟 살 맏딸은 엄마의 간섭이 싫고 자유롭게 살고 싶다며 가출을 선언했단다. 의뢰인은 셋째를 낳고 산후 우울증으로 감정 기복이 심한 상태였다. 그때문에 맏딸이 가출한 것이 아닌가 하고 자책했다. 처음에는 너무 힘들었지만 이제는 울지 않고 딸을 기다릴 수 있다고.
“얼마 전에 딸이 집에 들러 싹 청소하고 밥까지 해 놓고 갔더라고요. 다음에 딸이 집에 들르면 꼭 전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어요. 이제는 너를 믿는다고. 네가 누군데, 내 딸인데, 너의 당당한 독립을 응원한다고. 딸은 가출이 아니라 독립한 건데, 제가 딸을 믿지 못한 거였더라고요.” 의뢰인은 자신의 마음을 담은 소설을 딸이 읽었으면 한다고 했다. 나는 허구 없이 의뢰인 이야기 그대로를 글로 담아냈다. 다만 소설 마지막에 딸이 엄마에게 쓰는 편지를 추가했다.
“엄마, 집 청소하고 밥해 놓고 가요. 끼니 잘 챙겨 드세요. 나가서 내 돈 벌어 밥 먹어 보니까 엄마가 해 준 밥이 고맙더라. 나 너무 걱정 말아요. 엄마가 그렇게 잔소리하지 않아도 알아서 할 만한 나이 됐어요. 엄마 딸을 믿어 주면 좋겠어요. 또 들를게요.”
어머니는 소설을 품에 안고 돌아갔다. 그 뒷모습을 보며 무거운 책임감과 동시에 뿌듯함을 느꼈다. ‘짧은 글로 할 수 있는 재미있는 시도라고만 생각한 소설 처방이 누군가에게는 큰 위로가 될 수 있구나.’
앞으로 소설 처방을 어떻게 더 발전시켜 나갈지 고심 중이다. 하나 이 믿음만은 분명하다. 이야기에는 치유의 힘이 있다. 그리고 우리는 이를 믿는 작가들과 더 멋진 세상을 만들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저자 | 김수량님 / 에버바이트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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