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GAZINE] <오늘의 만남> 마음의 오르막길
작성일2025년 08월 08일

사람은 처한 상황에 따라 같은 현상이라도 다르게 느낀다. 좋아하는 사람의 얼굴은 예쁘지만, 경쟁자의 인상은 표독스럽고 날카롭다. 내가 두려워하는 상사의 덩치는 크고, 농담 던지는 게 가능한 친구의 어깨는 좁다. 자신에게 주어진 상황이 버겁다 싶을 땐 평소 잘 걷던 길도 멀고 힘들기 마련이다.
내게도 매일 걷는 길이 구만리 가시밭길로 변한 날이 있었다. 발목을 접질려 난생처음 깁스를 했다. 눈을 감고도 다닐 그 길에서 나를 넘어뜨린 건 돌부리가 아니라 그 사람의 이별 통보였다. 예상한 일인데도 땅이 꺼지듯 마음이 내려앉았다. 그냥 주저앉았으면 안 다쳤을 일을, 아무렇지 않은 척하려다 애먼 발목을 다치고 말았다.
이 경험에 착안해 내 강의를 수강하는 대학생을 대상으로 간단한 실험을 했다. 마음 상태에 따라 상황을 느끼고 판단하는 것이 어떻게 달라지는지 알아보기 위한 실험.
강의실이 있는 건물은 캠퍼스 오르막길 끝에 있었다. 수강생은 한 명도 빠짐없이 그 길을 올라와야 했다. 오르막길이 얼마나 멀고 가파르게 느껴지는지 평가해 보도록 했다. ‘완만하고 걸을 만하다: 1점’부터 ‘너무 가파르고 힘들다: 7점’까지로 점수를 매겼다. 또 근래 기분과 현재 연애 사업 형편 등을 물었다. 연구 결과는 간명했다. 최근에 마음이 외롭고 힘들수록 오르막길은 가팔랐고, 기쁘고 행복할수록 가뿐했다.
결과를 면밀히 분석하다 조금 더 재미있는 현상을 발견했다. 이별한 시기와 오르막길의 경사가 상관있었다. 연인과 헤어진 지 얼마 되지 않을수록 경사는 가팔랐고, 오래될수록 완만해졌다.
이별은 사건이라기보다 사고다. 수습하고 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회복되는 사고. 시간이 흘러 마음이 정리될수록 오르막길 경사가 완만해지듯, 수습에는 시간이 필요하다. 같은 오르막길을 걸어도 가뿐한 날이 있는가 하면 돌부리도 없는데 넘어지는 날이 있다. 유독 가파르고 힘든 날도 있다. 그러나 시간과 내 마음은 그 길을 기어이 평평하고 완만하게 만들 것이다. 내 마음은 나를 위해
오늘도 일한다.
글 | 이고은님 인지 심리학자, 《마음 실험실》 저자
사진 출처 | unsplas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