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GAZINE] <오늘의 만남> 낮 선물
작성일2025년 06월 25일
수업 시작 전 한 아이가 총총거리며 다가왔다. 돌돌 말린 봉지 하나를 수줍게 내밀며 말했다.
“선물이에요! 그동안 고마웠어요.”
아이가 속한 ‘시리우스’ 팀이 천문대 수업을 졸업하는 날. 자그마치 3년 동안 함께한 아이들이었다. 헤어짐이 못내 아쉬워 졸업 선물을 준비한 나처럼 아이도 무언가를 품어 온 것이다. 그 곱고 솔방울만 한 손으로.
요즘 “코 질질 흘리고 다닐 때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이렇게 컸어?” 하는 어른들 말이 부쩍 와닿는다. 유치원 티를 막 벗을 무렵 힘겹게 옥상 관측실로 올라온 아이들이 두 계단씩 훌쩍훌쩍 오를 때 특히 그렇다. 3년이란 시간은 한없이 길게 느껴지다가도 끝과 함께 찰나로 다가온다.
“선물은 받은 자리에서 뜯어보는 게 예의래. 그래도 되지?” “네!” “우아, 선크림이네!” “네, 맞아요! 쌤, 잘 바르세요!”
순간 낯선 느낌이 들었다. 아이의 선물은 휴지 한 장이든 빵 한 조각이든 가치가 있다지만 선크림은 조금 다른 듯했다. 아이와 나는 한 번도 낮에 만난 적이 없다. 천문대 강사와 밤하늘을 배우려는 아이의 만남은 언제나 석양도 남지 않은 한밤중이었다. 그러니 아이에게 나는 ‘밤에만 만나는 선생님’일 터다.
나는 음악 선생님이 운동하는 모습을 생각해 본 적 없고, 요리사가 밥을 사먹는 일을 상상하지 못했다. 버스 기사가 승객으로 버스를 타거나 마라톤 선수가 자전거를 타는 것도 무척 어색하게 그려진다.
당연한 삶의 단편도 역할에 따라 잘 떠오르지 않는 것이다. 직업과 환경은 그 이외의 것을 쉽게 가린다.
밤을 사는 나에게 ‘낮 선물’은 무척 특별하다. 아이의 정성이 천문대에 국한된 만남을 초월하고, 쌓아 온 시간이 자연스러운 시간을 넘어선 듯해서. 별을 보여 주는 선생님에게 내민 아이의 선크림이 낯설고 고맙다. 정성은 시간과 장소를 넘어설 때 더욱 진하게 다가선다.
아무래도 아이가 두고 간 건 선크림이 아니라 관심인가 보다. 낮에도 ‘밤 선생님’을 생각한 따뜻한 마음인가 보다.
저자 | 조승현 님 / 별내 어린이 천문대 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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