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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GAZINE] <6월 호 맛보기> 신랑아, 폭싹 속았수다!

작성일2025년 05월 13일




신랑아, 폭싹 속았수다!

 

술과 담배를 안 해 돈을 허투루 쓰지 않고, 그동안 모은 카드 포인트로 내 신발을 사 주기도 하고, 양말과 면 티가 헐 때까지 입는 신랑의 소비 습관에 대한 생각이 결혼한 뒤 바뀌었다. 결혼기념일 이벤트로 선물한 현금 다발도 상황이 어려울 때 조금씩 꺼내 쓴다며 수개월이 지나도록 건들지 않는 인내심, 생필품이 조금 남아 있어도 새 것을 꺼내기 바쁜 내게 잔소리 하나 없이 본인이 다 쓰는 허용심이 있는 그. 이만하면 신랑 잘 만났다 싶었다.

결혼 전에는 돈 문제로 힘들지도 모르겠다는 나만의 시나리오를 썼다. 함께 편의점에 가면 내가 고른 상품을 유심히 살펴보고는 자기가 봐 둔 것으로 바꾸는 사람이었으니. 이에 더해 그램당 값을 계산하고 주로 1+1 상품을 골랐다. 계산으로는 공대 출신인 그를 대적할 수 없었다. 

내가 좋아하는 고기를 먹을 때도 딱 2인분만 주문했다. 항상 인원 수보다 넉넉히 시키던 내 기준에는 답답하기 그지없었다. 남기지 않을 만큼 시키고 배부르지 않을 만큼 먹는 그와의 데이트는 늘 비용과 효율성을 따져야 했기에 스트레스가 쌓였다.

감정이 극에 달한 건 비극의 빼빼로 데이 사건이다. 직원들과 나눠 먹으라고 빼빼로 기프티콘을 보냈더니 빠르게 돌아온 답장. ‘이거 환불해, 다 못 먹어. 우리 맛있는 거 먹는 데 보태자.’ 

그날 로맨틱한 감정이 없는 이 남자와 이별을 다짐했지만, 결국 지금은 한 이불을 덮고 잠들기 전 꼭 10분 이상 대화를 나누는 사이가 됐다.

어느 날 문득 신랑의 사랑을 확인해 보고 싶었다. 숨을 크게 들이마시고 세상 슬픈 얼굴로 눈물을 글썽였다. “자기야, 이제야 말하는데 나 빚이 있어….” 휴대 전화를 보던 신랑은 ‘아니라고 말해!’라고 하듯 눈을 크게 떴다. “정말? 빚 하나도 없다며… 얼마나?” 반쯤 속여 넘겼다는 쾌감에 숨을 들이마시고 다시 천천히 말하려는 순간, “1천만 원? 2천만 원? 설마 3천만 원?” 하고 물었다. 연기자를 해야 했나 보다. 때마침 또르르 눈물까지 나와 줘 성공을 예감하는 순간, 신랑이 말했다. “내 사람이니까 내가 도와야지. 2천만 원까지는 해결해 볼게. 나머지는 방법이 있겠어?” 

나는 그를 와락 안으며 “뻥이야, 뻥! 그래도 자기야, 고마워. 자기같이 아끼고 절약하는 사람이 이렇게 빨리 빚을 갚아 주겠다고 말하다니.” 신랑은 안도의 한숨과 함께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그러고는 둘이 껄껄껄 소리 내 웃었다. 우리의 앞날을 위해 바깥 활동을 하며 오늘도 아끼고 아끼는 신랑에게 박수를 보낸다. 신랑아, 폭싹 속았수다!

 

한상현 님 | 경기도 수원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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