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GAZINE] <오늘의 만남> 나눠 받은 행운
작성일2025년 06월 18일
난생처음 묵직한 필름 카메라를 목에 걸고 떠난 여행이었다. 3박 4일. 비행기표는 떠나기 하루 전날 샀다. 언젠가 아빠에게 지나가는 말로 “거기 한번 가보면 좋을 것 같아요.” 했던 여행지였다. 사실 그 말을 하면서도 가고 싶다는 생각은 조금도 하지 않았다. 솔직히 말하자면 난 여행을 싫어했다.
달갑지 않은 여행에서도 위로를 얻은 순간이 있다. 미술관에서 전시회를 보고 나온 때였다. 눈앞엔 바다가 펼쳐져 있고 날씨도 기분 좋을 정도로 추웠다. 저 멀리 다리 위엔 하늘색 코트를 입은 연인이 바다를 보고 있었다. 그 뒷모습을 향해 카메라 셔터를 눌렀다.
한산한 도로를 건너 길을 걸었다. 한 아저씨가 허리를 숙이고 클로버가 잔뜩 핀 곳을 뒤지고 있었다. 나는 서투른 그 나라 말로 아저씨에게 말을 걸었다. “네잎클로버 찾으세요?” 아저씨는 네잎클로버를 쥔 오른손을 펼쳐 보이며 말했다. “그래, 이건 저기 건너편 공원에서 찾은 것들이야.” “그렇군요.” “예쁜 걸로 골라서 하나 가져가. 겨울이라 그런지 그리 예쁘진 않지만.”
나는 이파리 하나에 작은 구멍이 난 녀석을 골라 공책 사이에 집어넣었다. 아저씨는 “이것도 가져가.” 하며 왼손을 펼쳤다. 그 안엔 이파리가 다섯 개나 되는 클로버가 하나 있었다. 머뭇거린 끝에 새끼손톱만 한 클로버를 받았다. 잠시 스친 아저씨 손이 무척 따뜻했다.
“고맙습니다.” 더는 뭐라 말을 잇지 못했다. 다만 모르는 사람에게, 나 같은 사람에게 당신이 찾은 행운을 이렇게 나눠 줘도 되는지, 그게 조금 궁금했을 뿐이었다.
여행하는 동안 길을 잃어 이리저리 떠돈 시간이 참 길었다. ‘이 여행 하지 말걸 그랬나.’ 하는 후회도 여러 번 했다. 카메라로 인해 뻐근해진 목 때문도, 쉼 없이 걷다 지친 다리 탓도 아니었다.
그 일을 계기로 여행을 좋아하게 되었다는 영화 같은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대신 여태 현상하지 않은 필름 한 통과 클로버가 남았다. 클로버는 둘 다 코팅해 소중한 사람에게 선물했다. 나도 그 마음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길 바라며.
저자 | 박하림 님 /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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