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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모두는 예비 사별자 (제8회 청년이야기대상 대상)

글 정보
이름 좋은생각 편집부
작성 일시 2024년 08월 12일 16시 53분

이사론 님

 

“여보세요, 카드 해지하려고 하는데요.”  

“네, 본인 되시나요?” 

“아니요…. 남편이 사망해서요. 배우자입니다.” 

 

서른한 살에 나는 과부가 됐다. 7년을 함께한 남편이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나자 자동차 할부금, 학자금 대출, 카드 빚, 마이너스 통장 같은 현실이 내게 몰려왔다. 

 

어디 도망가지 않고 내가 다 갚겠다는데도 세상은 내게 자꾸 자격을 증명하라고 했다. 내 입으로 남편이 사망했으며, 내가 그 사람의 배우자임을 끊임 없이 말해야 했다. 서류는 왜 이렇게 종류도 많고 이름도 어려운지. 카드를 해지하거나, 빚을 갚거나, 명의를 이전하는 과정에도 늘 수십 가지의 서류가 필요했다. 

 

그렇게 하루에도 몇 번씩 앵무새처럼 남편이 사망했음을 말하고 들으며 남은 일들을 처리해 나갔다. 남편의 기본증명서에는 ‘사망’이라는 낯선 단어가 새겨졌고, 주민등록등본에는 나와 아들만이 휑하니 남겨졌다. 

 

남편 잃은 슬픔을 온전히 느낄 새도 없이 당장 산더미처럼 쌓인 일 때문에 쭈그려 앉아 울어야 하는 현실이 비참했다. 장례를 치르고 마음을 정리하기 위해 한 달의 휴가를 냈는데 정작 그럴 시간은 허락되지 않았다. 

 

처음엔 이 모든 상황이 원망스럽기만 했다. 그러나 남편의 죽음을 수도 없이 말하고, 듣고, 보다 보니 어느새 석 달이 흘러 있었다. 슬픔은 조금씩 무뎌졌고, 그치지 않을 것 같던 눈물도 멎어 갔다. 비로소 남편의 부재를 실감했다. 

 

누군가 내게 말했다. 우리 모두는 결국 ‘예비 사별자’라고. 내가 조금 더 일찍 겪게 된 것 뿐이라고. 힘들어서 귀에 들어오지 않았던 말이 그제야 잔잔한 위로로 가슴에 와닿았다. 

 

누구나 언젠가는 겪을 사별이라는 사건이 내 삶에, 특히 서른하나라는 조금 이른 나이에 찾아온 이유는 무엇일까? 

 

남편의 죽음을 수도 없이 반복해 확인해야 했던 그때, 남편을 충분히 애도하지 못했다고 생각했다. 한데 현실을 받아들이고 나니 남편을 더 건강하게 그리워할 수 있었다. 그토록 고통스러운 실감의 과정이 필요했던 이유를 알 것 같았다. 

 

그리고 나와 같은 처지에 놓인 수많은 이들이 눈에 들어왔다. 내가 할 일이 보였다.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으로 힘든 시간을 지날 이들에게, 또는 오늘도 아픔을 겪고 있는 이들에게 내 삶이 위로로 가닿기를. 그러면 허망하게 세상을 떠난 남편의 죽음에서 조금이나마 의미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이제는 위로가 필요한 영혼을 찾아 헤매려 한다. 동정이 아닌 공감으로, 나아가 연대의 눈으로 그들을 바라볼 힘이 조금은 생긴 것 같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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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현*2024. 10. 17

    많은 생각과 비슷한 공감을 이 글 속에서 가슴 한 가득 얻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 dl********2024. 09. 18

    멋지십니다. 많이 존경합니다. 항상 어떤 일을 하시든 어디에 계시든 응원합니다. 

  • 김지*2024. 09. 06

    사론님이 아들과 함께 힘든세상일지라도 행복하게 살아가실 수 있도록 늘 응원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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