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와 아나고 (제6회 청년이야기대상 금상)
| 이름 | 좋은생각 편집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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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 일시 | 2022년 10월 05일 10시 29분 |
김도연 님
아나고는 달이 뜨지 않는 어두운 밤, 바닷물이 잔잔한 날에만 잡을 수 있는 생선이다. 수심이 깊은 곳에서만 사는 애라 썰물 때는 바다 먼 곳으로 도망갔다가 밀물 때만 돌아온다. 다른 생선들과 달리 소음에 아주 예민해서 사람 말소리를 들으면 위험을 직감하고 도망간다. 그러니 '오늘은 아무 소리도 내지 말고 가만히 있으라'며 배 위에서 아빠는 신신당부했다. 나와 동생은 입을 틀어막고 고개를 끄덕거렸다. 우리는 찌가 달린 낚싯줄을 바다 깊숙이 던져 넣고 각자 다른 곳을 보며 기다렸다. 기다리는 동안 아빠는 끊임없이 담배를 피웠다. 한 시간 두 시간이 흘러도 아나고는 바늘을 물지 않았다.
그 날 낮에 집에선 한바탕 소란이 일어났었다. 낯선 사람들이 몰려와 집 안에 있는 물건을 부수고 아빠의 멱살을 잡았다. 아빠는 종이 인형처럼 이리저리 흔들렸다. 동생과 내겐 매일 같은 시간에 보던 만화가 있었다. 만화 시작을 알리는 예고편이 뜨자마자 티비 앞에 앉았다. 만화 주제가가 신나게 흘러나오는 와중에도 소란은 멈추지 않았다. 우리는 마치 다른 공간에 있는 사람들처럼 서로를 외면하고 있었다. 하지만 티비 화면 너머로 동생과 눈이 마주쳤을 때, 저 깊은 수렁 속에서 무언가가 나를 끌어당기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동생은 갑자기 울음을 터뜨렸다.
밤이 되자 아빠는 우리를 데리고 선착장으로 갔다. 우리 집은 마을에서 가장 작은 통통배를 가지고 있었다. 모터를 켜고 얼마간 달리다가, 과부하가 오기 전에 시동을 끄고 노를 저어야 하는 배였다. 아빠는 힘차게 노를 저어 배가 앞으로 나가게 했다. 노를 젓는 아빠의 뒷모습을 바라보는데 다리 잘린 방아깨비가 꿈틀거리는 것 같았다. 그 많던 낚싯배들은 다 어디로 갔는지 바다 위에 떠 있는 건 우리가 탄 통통배뿐이었다. 달빛도 비추지 않는 밤이라 주변은 어둡고 캄캄했다. 낮에 있었던 소란이 꿈처럼 멀게 느껴졌다.
서너 시간이 흘러도 입질이 오지 않아서 기다리는 것을 포기했다. 아빠는 아나고가 우리 오는 걸 알고 이사를 간 것 같다고 말했다. 낚싯줄을 끌어 올리고 그동안 잡힌 잔챙이들은 다시 물로 돌려보냈다. 동생은 지루함을 느끼고 배 갑판에 드러누웠다. 그때, 하늘 위로 비행기가 반짝거리며 지나갔다. 동생은 비행기를 가리키면서 저건 어딜 향해 가는 비행기냐고 물었다. 아빠는 잠시 뜸을 들이다가 중국이라고 대답했다. 그리고 우리가 비행기를 찾아 되 물을 때마다 계속 중국이라고만 했다. 아빠에겐 특이한 습관이 있었다. 아빠는 본인이 아는 것에 대해서 우리에게 설명해주는 걸 좋아했다. 그럴 때마다 아빠의 얼굴은 정말 뿌듯해 보였다. 그게 사실인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우리는 아빠의 말이라면 곧이곧대로 믿었다.
아빠의 말이 대부분 거짓이라는 걸 그 후로 몇 년이 지나서야 깨달았다. 아나고는 달 없는 밤에만 활동하는 생선이 아닐뿐더러, 갯바위 낚시로도 잡을 수 있었다. 중국으로 간다던 비행기는 동남아 각국으로 향하는 항로가 겹쳐져 있어서 목적지가 다양했다. 동생과 나는 이제 궁금한 것이 생겨도 아빠에게 먼저 묻지 않는다. 아빠가 어떤 말을 꺼내려고 하면, '그거 확실한 거 맞아?'라고 되묻는다. 그러면 아빠는 머쓱한 얼굴로 자리를 피한다. 그렇게 서로의 입장이 역전하는 동안 우리 집의 분위기도 차츰 바뀌었다. 누군가가 들어와 함부로 물건을 부수는 일도 없고 아빠를 내동댕이치는 일도 없으며, 갑자기 밤낚시를 가는 일도 없어졌다. 통통배는 태풍이 왔을 때 깔끔하게 부서져 버렸다.
하지만 나는 아직도 우리를 품어주었던 그 밤을 떠올리곤 한다. 고시원 월세를 내지 못해 쫓겨날 위기에 놓인 적이 있었다. 몰래 방으로 숨어드는 처지가 되었다. 총무는 내가 들어왔는지 확인하려고 새벽마다 찾아와 방문을 두드려댔다. 어떤 사람은 몰래 들어왔다가 걸려서 짐과 함께 고시원 문 앞에 버려졌다. 소란은 끝나지 않았다. 나는 사람들 틈에서 삶의 방향키를 쥐지 못하고 이리저리 떠밀려 다녔다. 늘 어디론가 도망가고 싶었다. 그럴 때마다 나는 기억 속 가장 먼 곳으로 도망을 갔다. 노를 젓는 아빠의 모습, 비행기를 올려다보는 동생의 눈, 그리고 우리 셋이 나란히 앉아 느꼈던 바다의 냄새와 공기 같은 것들.
어느새 아빠에게 노를 이어받아 젓고 있는 나의 모습이 보인다. 아빠가 힘들어하면 동생과 내가, 그 다음엔 다시 아빠가 노를 젓는다. 저 멀리 선착장이 보이기 시작한다. 우리는 멀어져가는 밤바다를 마지막으로 한 번 더 돌아본다.
나는 그곳과 작별해 다시 현실로 돌아온다. 그렇게 추억을 자맥질하고 고통이란 물살을 가르며 나아가다 보면 언젠가 내게도 배를 정박할 곳이 나타나지 않을까.
그때 나는 밤하늘에 떠다니는 비행기를 보면서 우리도 얼른 저 비행기에 탔으면 좋겠다고, 우리는 언제쯤 저 비행기에 탈 수 있냐고 물었다. 동생은 대답했다. 괜찮아. 우린 지금 바다 위를 날고 있잖아.

제 마음 속에는 대상입니다.
저희 부모님도 어업을 하시는데 똑같은 아나고를 잡으십니다.
공감되는 일과 마음아픈 작가님의 글을 울고 웃으며 읽었습니다.
작가님의 앞길은 좋은일만 가득하길 바라지만 힘든일이 생겨도 빛을 잃지 않는 작가님이 되셨으면 좋겠습니다.
정말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집에 누가 찾아와 아빠를 괴롭히고 과부화가 걸리기 전 직접 노를 젓고, 그저 지나가는 비행기 하나에도 신기해하는 그 어린날의 순수함들. 조금 힘들었을지 몰라도 그런 순수할때가 그리울때가 있죠. 그 추억속으로 잠깐 빠지게 해주셔서 글을 써주신 분께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