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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행의 기쁨]여섯 번째 사람 <KCC 이지스 프로 농구단 코치 신명호 님>

 

유튜브에서 인기를 끈 농구 영상이 있다. 한 선수가 슛을 실패하는 장면을 모아 만든 것으로, 조회 수가 사백만이 넘었다. 상대 팀 감독이 작전 타임에 그가 슛을 쏘면 막지 말고 놔두라고 지시하는 장면도 나온다. 이에 제목도 ‘신명호는 놔두라고’. 영상의 주인공은 올해 은퇴하고 지도자가 된 KCC(케이씨씨) 이지스 프로 농구단 코치 신명호 님(36세)이다. 농구 팬들은 이렇게 말한다. “상대는 신명호를 놔둬도, 신명호는 상대를 놔두지 않는다.” 그는 공격에서는 약점을 보이지만 최고의 수비력을 인정받았다. 무려 열두 시즌을 프로에서 활약하며 팀 우승도 두 번이나 했다. 그를 놔두라고 지시한 장본인인 감독 유도훈은 자신의 말이 화제가 되자, 신명호가 나오면 공격 전술을 바꿀 정도로 그는 수비에 뛰어나며, 승리하기까지의 과정을 만드는 중요한 선수였다고 밝히기도 했다.

 

그를 발탁한 이는 KCC 전 감독 허재다. 2007년 신인 드래프트에서 그가 일 라운드에 지명되자 모두 깜짝 놀랐다. “저도 놀랐어요. 잘하는 선수가 워낙 많아서 뽑히기만 하면 좋겠다는 생각이었거든요. 한데 일 라운드부터 제 이름이 불리니 기쁘기도 하고, 이래도 되나 싶기도 했어요.” 당시 허재는 그를 두고 “수비만큼은 일등이다. 뒤를 잘 받쳐 줄 거라 생각한다.”라고 했다.

 

그렇게 데뷔한 신명호는 프로 농구라는 경쟁 세계에서 십이 년이나 살아남았다. “거창한 계획이 있었다기보다는, 그저 한 시즌씩 버티려고 했어요. 제가 유명한 선수도 아니고, 일이 년 사이에 사라져도 이상할 것 없는 상황이라 언제 은퇴할지도 몰랐어요. 매년 버티다 여기까지 왔어요.” 그는 버텨 낸 비결을 팀에서 찾았다. “주위에 좋은 사람이 많았어요. 감독님도, 선수들도 단점보다 장점을 앞세워 키워 주셨어요. 그 덕에 많이 배웠고, 이만큼 할 수 있었어요.” 오래 함께 뛴 하승진은 슛이 계속 빗나가 고민하는 그에게 “형, 내가 다 잡아 줄게. 무조건 던져.”라고 말하며 용기를 북돋워 주기도 했단다. “승진이가 주변 사람들한테 힘 주는 얘기를 많이 해요. 재미도 있고. 좋은 후배이자 친구죠.”

 

그가 직접 꼽은 자신의 장점은 수비가 아니었다. “인정하는 게 제일 장점이지 않나 싶어요. 누구나 장단점이 있잖아요. 경기할 때 서로 잘하는 건 인정하고, 못하는 부분은 메워 줘야 한다고 생각해요. 못하는 걸 지적하기만 하는 건 경기 중엔 의미 없으니까요. 서로 인정해 주어야 팀플레이가 살아나죠.” ‘최고의 수비’라는 평은 과분하다고 했다. “열심히는 했는데, 대단하게 잘했다는 생각은 안 들어요. 혼자서 할 수 있는 일도 아니고, 다들 도와주신 덕에 가능했고요. 단점이 있는 선수를 잘 포장해서 이끌어 주시지 않았나 싶어요.”

 

공격력은 아쉬움으로 남았다. “극복하려고 많이 연습했어요. 하지만 경기에서 결과가 나오지 않아 스트레스도 꽤 받았죠. 트라우마로 남아서 슛을 주저하게 되고. 제가 이겨 내지 못한 거죠. 보완했다면 더 좋은 선수 생활을 할 수 있지 않았을까 싶어요. 약한 공격력이 다른 선수들한테 폐를 끼치는 거니까, 수비로 보상하려고 더 매진한 면도 있죠.”

 

농구에는 ‘식스 맨’이 있다. 경기에서 주전 선수 다섯 명에는 들지 못하나 교체되어 자주 출전하는 ‘여섯 번째 사람’을 일컫는다. 후보 선수 중 가장 기량이 뛰어나다. 주전이 체력 관리를 필요로 하거나 부상당했을 때, 감독이 경기 흐름을 바꿀 때 투입된다. “저는 식스 맨이 주된 역할이었어요. 주연이 있으면 조연도 있어야 하듯 옆에서 서포트 한 덕에 오래 뛴 듯해요.”

 

그는 식스 맨 혹은 조연이라는 역할을 이렇게 이야기했다. “식스 맨은 쉽지 않아요. 아무래도 좋지 않은 상황에 투입되는 경우가 많으니까요. 농구는 개인 스포츠가 아니기 때문에 자기가 삼사십 점을 넣어도 팀이 지면 끝이에요. 팀이 이기려면 헌신하는 플레이를 하는 선수가 필요해요. 당연히 잘하는 선수, 에이스의 비중이 크겠지만, 그런 선수 열 명 있다고 게임이 잘되는 건 아니에요. 요소마다 자기가 잘할 수 있는 플레이를 하면서 팀에 보탬이 되는 선수들이 있어요. 그들이 팀을 좌지우지하지는 않아도 승리의 원동력이 되어 준다고 생각해요. 스타플레이어가 되는 사람도 있지만 아닌 경우도 있죠. 주연을 목표로 삼는 건 좋아요. 한데 안됐다고 실망하거나 의기소침할 필요는 없는 듯해요. 평범한 게 나쁜 건 아니니까요.”

 

그가 생각하는 팀워크는 ‘조금씩의 희생’이다. “자기가 다 잘하면 좋겠죠. 하지만 그런 사람은 몇 없어요. 잘하는 게 있으면 못하는 것도 있으니 서로 보완하는 거죠. 에이스는 덜 희생하는 듯 보이지만 그렇지 않아요. 에이스는 못 넣으면 안 되잖아요. 그에 대한 스트레스와 책임감이 있을 거예요. 각자 맡은 역할에서 희생이 필요해요.” 그는 자신보다 팀을 먼저 생각하는 헌신적인 선수로도 잘 알려져 있다. “팀이 잘되어야 저도 빛을 발할 수 있죠.”

 

그는 선수 생활 동안 한 팀에서만 뛴, 흔치 않은 ‘원 클럽 맨’이다. “잘 안 보여서 오래 있지 않았나 싶어요(웃음). 하승진, 전태풍, 추승균처럼 개성 강한 선수가 여럿 있었으니까요. 가려져 있으니 잊고 지나가다, 어느 순간 보니 ‘이 정도 있었네.’ 하지 않았을까요. 다른 팀에서 제 단점이 너무 분명하니까 탐나지 않았을 수도 있고요. 팀 윗분들이 잘 봐주신 듯해요. 허재 감독님이 제 장점을 끄집어내 성장시켜 주신 게 컸고, 구단주님, 단장님도 잘할 수 있게 격려해 주셨어요.”

 

누구에게나 장점과 단점이 있다. 이를 어떻게 받아들이면 좋을지 물었다. “자기 장단점을 모를 수도 있어요.” 그 역시 대학 선수 시절에는 자신이 수비에 남달리 뛰어나다는 생각은 안 했다고 한다. 프로에서 수비가 좋다는 평가를 받으니 더 잘하고 싶었다고. “주위 사람들이 중요하지 않을까요? 이해해 주면 함께 어울리는 거죠. 인간관계는 장점을 보고 맺는 거니까요. 친해지면 단점에 대해 조언해 줄 수도 있고. 저도 그런 이들을 만났죠.”

 

그 역시 주변에 좋은 사람인 듯했다. 인터뷰에 앞서 만난 구단 관계자는 그를 아낌없이 칭찬했다. 구단에서 시설 관리나 경비 일을 하다 퇴직하는 직원들이 있는데, 기념품에 사인을 남겨 선물로 챙겨 준단다. 그에게 이에 관해 묻자 선수 전부가 참여한다며, 자신만의 호의가 아니라고 했다. 하지만 그는 그중에서도 이 일을 앞장서서 도맡고 있었다.

 

긴 선수 생활을 갈무리한 그에게 소회를 물었다. “아쉬움 반, 보람 반이에요. 수비와 공격의 균형을 맞추지 못한 아쉬움이 있고요. 프로에서 일 년 하고 갑자기 사라지는 경우도 있는데 열두 시즌을 버티고 버텨서 여기까지 왔다는 자부심은 있죠.”

 

그의 선수 생활은 이랬다. 장점은 살려 주고, 단점은 덮어 주는 사람들과 함께했다. 그렇게 십이 년을 뛰었다. 어쩌면 우리 모두의 인생에 필요한 것이다.

 

글 _ 이호성 기자, 사진 _ 최연창 153 포토 스튜디오 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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