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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좋은생각

[햇살마루] ‘엄마’라는 말

 

지난봄부터 엄마와 살기 시작했다. 엄마는 아빠가 돌아가신 뒤 혼자 지내는 걸 힘들어하는 데다 녹내장으로 한쪽 시력을 잃었다. 하루하루 쇠약해지는 엄마의 몸과 마음에 생기를 되찾아 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끝에 엄마를 모시고 살기로 한 것이다.

 

이사를 며칠 앞두고 나는 서가에서 《엄마, 사라지지 마》라는 사진집을 꺼내 들었다. 두툼한 이 사진집은 작가 한설희가 예순일곱 살이 된 2010년부터 이 년간 노모의 모습을 찍은 기록이다. 본인도 적은 나이가 아니지만 아흔이 넘은 엄마 모습에서 희미해져 가는 빛을 놓치지 않으려 딸은 수없이 셔터를 눌렀을 테다. 

 

이 사진들로 그녀는 다큐멘터리 사진가들이 신진 작가에게 주는 ‘온빛 사진상’을 받았고, 개인전을 열기도 했다. 이 사진들은 딸이 아니면 도저히 포착할 수 없는 어머니의 이미지를 잘 보여 준다.

 

불문학 전공자답게 사진에 붙인 글들도 간결하고 인상적이다. 이 사진집을 펼쳐 보며 나는 엄마의 여생을 가까이서 함께하는 것이 부담스러운 의무가 아니라 남다른 축복이자 중요한 공부라고 스스로를 다독였다. 

 

아침저녁 얼굴을 마주하고 함께 밥을 먹고 산책을 하면서 하루에도 몇 번씩 엄마, 라고 불러 본다. 그러면 내가 결혼하고 아이들을 키우며 보낸 지난 삼십 년의 시간을 훌쩍 넘어 다시 엄마의 어린 딸로 돌아온 듯한 기분이 든다. 

 

작가 한설희가 에필로그에서“ 엄마. 이렇게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는 단어가 또 있던가. 이렇게 오래도록 울림을 간직한 언어가 또 있던가.”라고 쓴 것처럼, ‘어머니’보다 ‘엄마’라는 말이 훨씬 다정해서 좋다. 누구에게나 ‘엄마’는 가장 친밀한 호칭이자, 가장 처음으로 또는 맨 마지막으로 부르게 되는 단어일 것이다.

 

얼마 전 미국에서 흑인 조지 플로이드가 경찰의 무릎에 목이 눌린 채 마지막으로 불렀던 존재도 ‘엄마’였다. 마흔여섯 살의 건장한 남자가 생의 끝에서 부른 존재가 엄마라니……. 이 말은 그가 누군가의 소중한 아들이라는 평범한 사실을 우리에게 일깨워 준다. ‘엄마’라는 말과 함께 으깨져 버린 그의 숨결은“ I can’t breathe(숨을 쉴 수 없다).”라는 구호를 통해 인종 차별 반대 운동으로 이어졌다. 그러고 보면 ‘엄마’는 가장 힘이 센 말이자 만국 공용어에 가까운 듯하다. 

 

프랑스 사상가 롤랑 바르트는 1977년 어머니가 세상을 떠난 다음 날부터 《애도 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노트를 사 등분한 쪽지에 그가 이 년 동안 써 내려간 메모에는 ‘어머니(M re, 메흐)’보다 ‘엄마(Maman, 마망)’라는 단어가 자주 등장한다.

 

“마망.”이라고 부를 때마다 그 말을 둘러싸고 피어오르는 온기와 슬픔에 바르트는 어린아이처럼 눈물을 터뜨린다. 운다.“ 나의 롤랑, 나의 롤랑.” 하고 부르던 엄마의 목소리를 떠올리면서. 그리고 “외로움=대화를 나눌 사람이 집에 없다는 것. 몇 시쯤에 돌아오겠노라고, 또는 (전화로) 지금 집에 와 있어요, 라고 말할 사람이 더는 없다는 것.”이라고 적으면서. 이렇게 극심한 슬픔은 아마도 스물두 살에 아기를 낳고 이듬해 전쟁미망인이 된 어머니에 대한 남다른 사랑과 연민에서 비롯된 것이리라.

 

다행히도 나에게는 ‘엄마’라고 부를 시간이 꽤 남아 있다. 내 입술로 ‘엄마’라고 발음할 때마다 그 말은 아직 내가 고아가 아니라는 것을, 엄마라고 부를 어떤 존재가 늙고 쇠약해진 모습으로나마 내 곁에 있다는 것을 확인시켜 준다. 손을 뻗으면 닿는 곳에 엄마의 손이 있다는 것에, 기침 소리가 들리고 웃음소리와 울음소리가 들리는 곳에 내가 있다는 것에 마음이 놓인다.

 

이따금 《엄마, 사라지지 마》의 사진들처럼 엄마의 남은 나날을 기록하고 싶은 생각이 들곤 한다. 예전에 부모님과 여행을 하면서는 사진을 많이 찍어 주었지만, 혼자 남은 엄마를 향해 셔터를 누르는 일은 조심스러웠다. 

 

진을 찍는다 해도 무슨 책을 내거나 전시를 하기 위해서는 아니다. 다만 팔순을 넘긴 엄마의 어떤 표정과 자태가 문득 아름답게 느껴질 때가 있다. 남들에게는 평범한 노인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엄마가 겪어 온 삶의 내력과 고통의 속내를 아는 나로서는 엄마의 표정 하나에도 무감하기가 어렵다. 

 

나이 든 사람이나 오래된 물건은 역시 가까이서 자세히 보아야 더 아름다운 것 같다. 여기저기 흠집 나고 빛바랬지만 긴 시간을 견뎌 내면서 생긴 그 무늬와 질감을 오늘도 가만히 쓰다듬어 본다

 

 

나희덕 님ㅣ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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