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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좋은생각

[동행의 기쁨] 내 안에 기린이 산다 <한국 비폭력 대화 교육원 대표 이윤정 님>

기린은 포유류 중 심장이 가장 크다. 오 미터에 이르는 몸 구석구석으로 혈액을 보내야 해서다. 우리는 마음을 곧잘 심장에 비유한다. “심장이 아프다.” “심장이 뛴다.” 하고, 사랑의 상징인 ‘하트’가 곧 심장이기도 하다. 

 

한국 비폭력 대화 교육원 대표 이윤정 님(54세)은 비폭력 대화에 쓰이는 언어를 ‘기린의 말’이라 부른다. “자신과 상대를 사랑으로 대하자는 의미에서 기린에 비유했어요. 어떤 상황에서든 자신을 사랑할 수 있으면 나를 해치거나, 함부로 말하지 않을 수 있어요.” 비폭력 대화는 연민으로 상대와 유대 관계를 맺고, 자신을 깊이 이해하는 데 도움 되는 대화법이다.

 

반면 ‘자칼의 말’도 있다. 거친 육식 동물인 자칼에 빗댔다. “인간에게는 자신의 고통과 결핍을 비극적으로 표현하는 재주가 있어요. 공격적이고 비난하는 말을 하거나 들었을 때 ‘내가 자칼로 말하고 있구나.’ 혹은 ‘상대가 자칼의 말을 하네. 힘들다고 외치는 거구나.’ 하고 알아차리는 거예요.”

 

그녀는 자칼의 말이 올라오는 게 ‘내가 힘들구나. 쉬어야겠다.’라는 신호라고 한다. “‘아, 자칼이구나.’ 하고 일단 멈추는 거예요. 예를 들어 지나가다 누군가랑 부딪쳤을 때 기분이 좋으면 그냥 넘어가는데, 슬프거나 힘들면 욱하거든요. 그때 멈추고 ‘내가 힘든가 보다.’ 하고 알아주는 거예요. 그리고 호흡하죠. 숨 쉰다는 건 살아 있다는 겁니다. 들이마시고 내쉬기를 세 번 반복하면서 살아 있음에 고마워하는 거예요. 그다음 아까 상황을 되짚어 봅니다. ‘뭘 봤지? 뭘 들었지?’” 비폭력 대화의 네 단계 중 첫 번째인 ‘관찰’이다. 겪은 일에 평가를 내리지 않으면서 보고 들은 그대로 말한다. 가령 “책상이 왜 이렇게 어지러워?”가 아니라 “책상에 컵이 다섯 개 있네.” “버르장머리가 없어.” 대신 “문을 쾅 닫고 나갔네.” 하는 식이다. “이것만 해도 마음이 편안해져요. 비난하고 평가하면서 감정이 격해지거든요. 관찰을 하면 다르게 보이기도 하고, 별것 아닌 듯 느껴지기도 해요.”

 

둘째 단계는 ‘느낌’이다. 자신의 느낌을 표현하는 것만으로 치유가 일어난다. “슬픈데 꾹 참다 보면 엉뚱한 데서 터져요. 그런데 ‘내가 슬퍼.’ 하고 말하는 순간 편안해져요. 특히 우리나라 중년 남성들이 정서가 억눌려 있어요. ‘사내가 어디서.’ ‘울면 지는 거야.’ 같은 말 때문에 표현할 줄 몰라요. 아들 셋 둔 아버지가 열 달쯤 수업을 받고 그러더라고요. ‘중요한 걸 깨달았어요. 저는 걱정이 돼도, 두려워도, 슬퍼도 화를 내요. 그런데 이제는 아빠가 걱정돼, 그렇게 할 때 슬퍼, 하고 말할 수 있어요.’ 자신의 느낌을 표현하고, 상대 느낌은 어떤지 묻는 게 무척 친절한 말이에요. 이 자체가 돌봄의 시작이에요.”

 

느낌은 생각과 구분해야 한다. “예를 들어 ‘무시당했다’, ‘오해받았다’는 생각이지 느낌이 아니에요. 느낌을 찾기 어려울 땐 몸의 반응을 살피라고 해요. 긴장되거나 어깨가 뻣뻣해지면 마음으로 내려가 보는 거죠. 그럼 ‘슬퍼요, 걱정돼요, 힘들어요.’ 같은 느낌을 발견할 수 있어요.”

 

셋째 단계는 ‘욕구’다. “느낌의 원인이 욕구예요. 보통은 ‘너 때문에 화났어.’ ‘넌 날 피곤하게 해.’ 하면서 내 느낌을 상대 탓으로 돌리는데, 그렇지 않아요. 내가 원하는 게 있거든요. 그게 충족되면 기쁘고 신나고 뭉클한 느낌이 들고, 충족되지 않으면 실망하고 난처하고 허탈하죠. 일반적으로는 긍정적, 부정적 느낌으로 나누지만, 비폭력 대화에서는 느낌을 평가하지 않고 욕구가 충족되었을 때와 그렇지 않을 때로 구분해요. 어떤 느낌이든 환영하고 거기 머물다 보면 욕구를 만나게 되죠.” 욕구는 사람의 존엄성을 지키기 위한, 누구에게나 중요한 보편적인 가치다. “우리가 화목하게 지내면 좋겠어.” “너랑 대화 나누고 싶었어.”처럼 이야기할 수 있다.

 

넷째 단계는 ‘부탁’이다. 부탁에는 두 종류가 있다. 첫 번째는 ‘연결 부탁’. “네 생각은 어때?” 하며 상대를 대화에 초대한다. 두 번째로 ‘행동 부탁’은 나의 욕구를 충족할 수 있는 행동을 부탁하는 것이다. “문 닫아 줄래?” “힘든 점을 말해 줄 수 있을까?”처럼 이야기한다. 그녀는 부탁이 ‘상대를 향한 배려’라고 한다. “부탁할 때는 자세하고 명확하게 해야 해요. 또 원하지 않는 것보다는 원하는 것을 말하고, 강요가 아닌 권유형으로 말하는 게 좋죠. 그래야 상대가 들어줄 가능성이 높아져요. 혹은 명료하게 거절할 수 있고요. 상대의 거절을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해요. 내 느낌을 표현하고, 거기에 공감하면서 평온함을 되찾으면 상대가 거절하는 이유를 헤아릴 여유가 생겨요.”

 

매 순간 네 단계를 실천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그녀는 이렇게 격려한다. “습관이 잘 변하지 않아요. 자칼의 말이 올라올 때 그걸 의식하고 멈추기만 해도 큰 변화예요.”

비폭력 대화에는 두 측면이 있다. 상대를 향한 ‘솔직하게 말하기’, 상대로부터 받아들이는 ‘공감으로 듣기’. 한데 간혹 자신이 왜 상대에게 공감해 주어야 하느냐고 묻는 이들이 있단다. 그럼 그녀는 말한다. “이건 남을 위한 게 아니라, 내가 편안해지기 위한 좋은 도구예요. 내가 솔직히 말하면서 괴로움을 덜게 돼요. 또 공감은 상대가 어떤 말을 해도 나와 분리하면서 듣는 거예요. 상대가 막말을 했을 때 나에 대한 비난으로 받아들이면 힘들어지잖아요. 상대의 언행을 두고 ‘저 사람이 어떤 느낌이었을까? 원하는 게 뭘까?’ 생각하면 그때마다 내가 자극을 받지 않을 수 있어요. 내가 평화를 유지하며 지낼 수 있는 터전이 되는 거예요.”

 

그녀는 당연하다고 여기는 게 줄어들수록 화나는 일이 적어진다고 했다. 당연하다고 생각한 것에서 벗어난 일을 수용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주문 외우듯이 하라고 해요. ‘이 세상에 당연한 건 없다.’ 하고 되뇌는 거죠. ‘이건 여기 있는 게 당연해.’ 하면 다른 데 있을 때 화나요. 화내는 건 상대에게도 내게도 도움이 안 돼요. 당연한 게 없으면 외려 ‘이렇게 해 주니 고맙네.’ 싶고, 상대와 관계도 좋아져요.”

 

그녀는 ‘나를 너그럽게 여기기’가 중요하다고 했다. “세상은 너그럽지 않아요. 경제적으로 정치적으로 얽히고설켜 서로를 이용하는 일이 많죠. 보통은 자신에게 각박하게 굴면서 자기 삶에 절망하는 경우가 잦아요.

 

비폭력 대화 강의를 십오 년 정도 하면서 사람들을 만나 아픔을 이야기 나누고 제가 내린 결론은, 인간의 삶에 일어나지 않는 일은 없다는 거예요. 드라마보다 더 극적인 일이 생겨요. 그런 면면을 들여다보면 그 사람이 살아 주는 것만도 고마워요. 다른 사람의 삶에 경외감까지 들더라고요.

 

제가 수업 때 강조하는 게 있어요. 세상이 아무리 모질어도 자신을 너그럽게 대해 주라고요. 그럴 때 마음에 여유가 생기고, 평안해지고, 타인을 너그러이 대할 수 있어요. 내가 하는 말도 달라지고요. 그러면 다음 세상이 바뀌어요.”

 

글 _ 이호성 기자, 사진 _ 최연창 153 포토 스튜디오 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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